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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by 한종호 2016. 1. 14.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1)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여호와여 주(主)께서 나를 권유(勸誘)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勸誘)를 받았사오며 주(主)께서 나보다 강(强)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嘲弄)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終日)토록 나를 조롱(嘲弄)하나이다 대저(大抵)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强暴)와 멸망(滅亡)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終日)토록 치욕(恥辱)과 모욕(侮辱)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宣布)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中心)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骨髓)에 사무치니 답답(沓沓)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예레미야 20:7-9).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7절) 할 때의 ‘권유’라는 말은 설득하다 혹은 유혹하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권유’(勸誘)의 ‘권’은 ‘권할 권’이고, ‘유’는 ‘꾈 유’인데, ‘꾈 유’(誘)라는 글자가 재미있다. ‘말씀 언’(言)에 ‘빼어날 수’ ‘아름다울 수’(秀)를 짝지은 글자로, 아름답고 그럴듯한 말로 상대방을 꾀어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와에게 건넨 뱀의 말이 그러했듯 대개의 유혹은 아름다운 말로 시작이 된다.

 

그런 의미를 담아 <새번역성경>은 ‘권유하시므로’라는 말을 ‘속이다’로 번역을 했다.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다니, 예레미야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주님이 자기에게 무언가를 숨겼다는 것인지, 예레미야 자신이 너무 어수룩했다는 말인지, 속임인 줄 알면서도 속이시는 분이 주님이시기에 속아 넘어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예레미야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지만 예레미야는 주님의 속임에 넘어갔다. 주님의 강함에 지고 말았다. 언감생심 주님을 이기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자신은 주님께 속은 것이었고 주님께 진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일까?

 

 

 

 

예레미야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종일 조롱했다. 성격이 괴팍한 몇몇 사람이 조롱하고, 어쩌다가 조롱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레미야라는 존재 자체가 조롱거리, 사람마다 종일토록 조롱을 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자신이 감내해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결과가 주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 아닐까? 아무리 참는다 해도 그런 것까지 참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이 아니었을까?

 

사람들로부터 싫도록 조롱을 받는 예레미야는 다짐을 한다.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말아야지,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돌아올 반응을 뻔히 알면서도 조롱을 부를 말을 더 이상은 입 밖에도 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꽁 꽁 동굴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 어느 누구도 예레미야의 마음을 바꿀 수가 없을 것처럼 보이는데, 예레미야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다짐에 다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시는 외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할 때마다 뭔가 뜨거운 것이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서부터 불처럼 솟아오르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 <새번역>

 

‘다시는 주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자. 주의 이름으로 하던 말을 이제는 그만두자.’ 하여도, 뼛속에 갇혀 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 <공동번역 개정판>

 

그러나 “이제 그만! 더 이상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으리라!” 하고 마음먹으면, 말씀이 제 뱃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며 뼛속까지 태웁니다. 참아보려고 했지만, 이제 지쳤습니다.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 <메시지>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외면하려고 하는 주님의 말씀은 자신의 심장 속에서 타올라 뼛속으로까지 타들어갔다. 외면하려 하면 할수록 외면하려는 말씀은 자기의 내부에서 뜨거운 불이 되고, 그 뜨거운 불은 더 이상은 외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도 모두 태우고 만다. 감당할 수 없는 불, 결국 예레미야는 그 뜨거운 불 앞에 더는 견디지를 못하고 항복을 하고 만다.

 

주님의 사람이란 주님께 항복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너무 쉽게, 너무 당연히, 아무런 고민이나 통증도 없이, 무얼 항복하는 줄도 모르고 백기를 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도망치려 했고, 외면하려 했던 마음까지를, 실은 주님 앞에 숨기고 싶은 그 모든 것에 대해서조차 항복을 한 사람 말이다.

 

행복과 가장 가까운 말은 항복이라 한다. 항복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예레미야에게 묻고 싶다. 항복하니 행복했냐고?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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