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이미 제 목을 조르고 있습니다

by 한종호 2016. 1. 2.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9)

 

이미 제 목을 조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祭司長)에게서 율법(律法)이, 지혜(智慧)로운 자(者)에게서 모략(謀略)이, 선지자(先知者)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注意)치 말자 하나이다”(예레미야18:18).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부분이 있다. 그것을 건드리면 그를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는 감정과 존재의 아킬레스건이 있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며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 애쓰는 사람을 ‘빨갱이’라 한다든지, 부정과 불의에 대해서 이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에게 ‘종북’이라 한다든지, 타종교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열고 존중하려는 사람에게 ‘다원주의자’라 한다든지 하는 경우이다. 복잡할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다. 그런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 말 한 마디로 누군가의 가치와 존재를 얼마든지 부정할 수가 있다.

 

이상하게도 불의한 자들은 의로운 자들의 아킬레스건을 잘 알고 있고,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위험한 순간이 찾아오면 그 아킬레스건을 건드린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칫 드러날 뻔 했던 자신의 치부를 그럴듯하게 감추고 가린다. 자신에게 쏟아지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런 것이 통하거나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분명 부정한 사회이다.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지는 주님의 말씀은 백성들의 귀에 더없이 쓴 소리였다. 가시가 돋친 거북한 말이었고, 못 들은 척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말이었다. 그런 백성들에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달콤한 소리를 들을 곳이 얼마든지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어떻게 살든 그들이 원하는 소리를 들려주었던 이른바 선복(宣福) 예언자들, 그들은 백성들이 원하는 소리만을 들려주었다.

 

괜찮다, 잘 될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버리실 리가 없다, 듣기 좋고 기분 좋고 고마운 이야기를 전하는 예언자들은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불안하고 찜찜하던 차에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백성들의 걸음과 마음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이들을 향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었다.

 

그들에 비해 예레미야는 배척을 당한다. 미움을 받는다. 노골적으로 침을 뱉고 욕을 하는 이들이 왜 없었을까? 네가 무슨 예언자냐는 소리를 한두 번 들었을까? 그럴 때마다 느꼈을 예레미야의 고독과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이 된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기들 맘에 드는 말만 골라 듣던 백성들의 완악함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아예 예레미야를 없애자 한다. 예레미야를 죽이자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없어도 얼마든지 주님 말씀을 전해줄 제사장과 선지자가 있으니 아예 말씀의 근원을 없애자고 한다. 그런데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없애기 위한 방법이 기가 막히다.

 

백성이 나를 두고 이르기를 “이제 예레미야를 죽일 계획을 세우자. 이 사람이 없어도 우리에게는 율법을 가르쳐 줄 제사장이 있고, 지혜를 가르쳐 줄 현자가 있으며, 말씀을 전하여 줄 예언자가 있다. 그러니 어서 우리의 혀로 그를 헐뜯자.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무시하여 버리자” 합니다. <새번역>

 

“그 말을 듣고 이 백성은 수군거립니다. ‘예레미야를 없애야겠는데 무슨 좋은 계책이 없을까? 이 사람이 없어도 법을 가르쳐줄 사제가 있고 정책을 세울 현자가 있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줄 예언자가 있다. 그러니 이자를 그가 한 말로 때려잡자. 이자의 말마디마다 조심하여 듣자.’고 합니다.” <공동번역 개정판>

 

그들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 예레미야를 없앨 음모를 꾸미자. 그자가 없어도 언제든지 사제에게서 가르침을, 현자에게서 조언을, 예언자에게서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어서 혀로 그를 치고,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무시해버리자.” <성경>

 

“그들은 저를 잡아 족치려고 혈안입니다. 이미 제 목을 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저를 죽이기로 작정했음을,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메시지>

 

칼로 찔러야만 예언자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돌을 던지는 것만이 예언자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백성들은 참말을 전하는 예언자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모두가 예언자를 비방하고 헐뜯으면 된다.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된다. 굳이 피를 흘리지 않고도 예언자를 죽일 수 있으니 얼마나 쉽고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이미 그들의 말과 생각에는 피가 묻어 있다.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없앨 수 있는 아킬레스건을 알고 있다. 자신들의 믿음의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있음은 까마득히 모르는 채.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