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자살(自殺)’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2)

 

‘기도의 자살(自殺)’

- 전집 4권 『성서 연구』 「주기도의 연구」 -

 

 

우리나라 교인들처럼 기도를 많이 하는 경우도 드물 거다. 물론 일찍이 사도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지만, 적어도 시간을 따로 내고 특정 공간에 모여 함께 하는 기도로만 보자면 단연코 한국 기독신자들이 최고다. 거의 모든 교회가 하고 있는 새벽기도회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전통이거니와 금요철야기도회, 봄·가을로 진행되는 ‘특새’(특별새벽기도회)까지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기도회는 우리나라 교인들에게 교회부흥과 영성훈련의 집중적 시간으로 여겨진다. 그뿐인가? 수험생 부모들의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기도회, 청년들의 배우자를 찾기 위한 기도회…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기도회가 존재한다. 그야말로 영성 충만한 신앙심이다. 개인적 기도만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구국기도회는 또 얼마나 잦은가? 중보의 힘이야 성서도 증언하는 바이고, 회중이 함께 모여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행위야 지극히 ‘성서적’이지만, 요즘 행해지는 구국기도회의 기도제목들을 들어보면 의아하다. 도대체 누구의 뜻이 이 땅에 도래해야하는 건지… 유대-기독교 신앙이 강조해온 기도의 방향성이 완전히 뒤집혔다.

                                      일러스트/고은비

 

이런 마당에, 주기도문을 풀이하면서 기독 신앙이 말하는 기도의 정수를 소개한 김교신의 「주기도의 연구」는 우리가 한 번 더 주목해 보아야할 내용이지 싶다. 기도를 “종교의 맥박”이라고 보았던 김교신은, 성서 안의 모든 기도 중에서 원문 57자로 이루어진 예수의 기도가 “구신약 66권이 전하는 기독교의 전체 즉 우주 경륜의 대진리”가 포함된 기도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그의 통찰력은 우리가 주문처럼 생각 없이 반복하는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를 풀이하는 부분이다.

 

‘거룩하여지옵소서, 이름이, 당신의’라는 일구(一句)는 전혀 간접으로 소원을 진술한 것이 되었다. 지극히 신성하신 하나님 자신에 관한 일인 때문이다. 또한 그 의미하는 바가 사람의 힘으로써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이 직접 자신으로써 거룩함을 나타내심도 아니요, 하나님이 인류와 만물을 통하여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을 일컫는 것이므로 간접으로 소원을 진술케 된 것이다.

 

어린 시절 유난히 질문이 많았던 나는 주기도문에서 이 부분이 항상 궁금했다. 이미 ‘거룩하신’ 여호와는 왜 굳이 신자들의 입을 통해 당신이 거룩한 존재임을 자꾸 확인받으려 하시는 걸까? 우리가 매주일 주기도문을 외우지 않으면 여호와는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분인가? 머리가 크고 신학을 전공하면서, 특히 본회퍼의 『행위와 존재』를 읽으며 나는 내 질문의 답을 찾아갔다. 그럼 그렇지. 그 답을, 김교신도 같은 맥락에서 언급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은 인류의 숭경(崇敬)을 기다리지 않고라도 본래 거룩한 것”이지만, 피조물인 우리는 그의 거룩함을 오직 “그 만드신 만물로 보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거룩하여지옵소서’라는 말은 hagiastheto, be hallowed 즉 holy(거룩)하게 하는 뜻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고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돌리는 것 혹은 토기일지라도 제단용으로 성별한 때에 거룩한 것이 된다. 즉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질에 의당히 돌려야 할 존경과 숭배를 가지고 지성하신 하나님께 대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거룩하여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은 우리가 무엇을 ‘거룩하다’고 여기면서 성별하는지, 무엇이 ‘하나님의 것’ 즉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공평하게 골고루 누려야하는 은혜의 부분인지를 깨닫고 이를 구별하며 매일 삶으로 살아낼 때 비로소 이 땅에서 드러나는 거다. 주일 예배, 새벽기도회 열심히 나와서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나의 욕망 목록들을 나열하는 것은, 적어도 ‘거룩’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개인 기도를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라고, 김교신도 말했다. 다만 남들 다 자는 시간에, 혹은 남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시간에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 하나로 기도회나 기도하는 신자가 경건해지고 하나님께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어떤 기도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게 하는 기도일까?

 

… 썩어지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대신하는 일이 없이 만물 창조하신 주를 창조함을 받는 만물보다 더 경배할 줄 알게 되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여 상응한 숭경을 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소이(所以)의 하나요, 둘째로는 유대 사람과 기독자가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위기 19:2, 베드로전서 1:15)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몸으로 산제사를 드려”(로마서 12:1) 하나님을 거룩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나시는 것이 된다.

 

내 욕망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는 아무리 간절하여도 그건 (막스 베버의 표현을 빌자면) ‘마술적’이다. 구약시대 예언자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을 꿰뚫은 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강조했다. 우리 기도의 방향은 아래에서 위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라고.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기도의 정수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에게서 나타났다. 김교신도 언급하듯이 예수는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 영화롭게 하였나이다.”(요한복음 12:28)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뜻을 나나 내 공동체의 이기적 욕망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그 이름이 영광되게 드러나실 수 있도록 몸으로, 삶으로 드리는 기도! 하여 김교신은 ‘기도는 결국 자살행위’라는 고백에 동의한다.

 

기도하는 자 자신의 뜻을 이루자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는 것이니 이런 모순은 다시없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는 주기도의 이 절구를 칭하여 ‘기도의 자살(自殺)’이라고 하였다. 바른 말이었다. 기도는 자의를 달성하려 하는 것인데 도리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옵기를 기도하고 있으니, 모순이라면 생물이 자살하는 것 이하의 모순일 수는 없다. … 나의 의지를 하나님께 관철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나의 소원이 하나님 뜻에 합치하옵거든…이다. 이 일을 가장 명료하게 가르치신 것은 주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이다. “할 만하시거든 이때를 면하게 하여 달라 하여 이르되 ‘아바 아버지여, 능치 못하신 것이 없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떠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마옵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14:35-36)라고 하여 삼각산 같은 우뚝한 소원을 진개(陳開)하는 동시에 양초가 여름날 염열(炎熱)에 무르녹아진 것 같은 유순(柔順)이 거기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에게 생명을 내어 놓으셨을 때에 그 만물이 누리도록 허락하셨던 하나님의 숨을 지켜내는 것, 힘세고 부유하고 영악한 이들이 ‘하나님의 것’을 독점하려 할 때에 이를 몸으로 삶으로 막아내는 삶, ‘산제사’와도 같은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히여김을 받으신다는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 구절을 쉽게 읊조릴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은 내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일이면 예배순서 어디쯤에서 주께서 가르쳐주신 저 기도는 방방곡곡 울려 퍼질 거다. 그 기도가 우리에게는 결단과 각오의 선언이기를… 이기적이고 나약한 내 힘으로는 도저히 못하니 ‘여름의 뜨거운 날에 양초가 녹듯’ 그렇게 그리스도에 힘입어 하나님의 뜻에 내 뜻과 의지가 녹아들어가기를 기도한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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