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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서 만난 듯 소탈한 시골약사 이야기

영이가 죽었다

by 한종호 2021. 10. 5.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영정 사진 속 예쁜 19살 영이가 비통에 빠진 조문객들을 환한 미소로 마주하고 있었다. 영이는 내년이면 20살이 되었을 것이고, 개나리가 필 쯤이면 풋풋한 대학 새내기가 되었을 것이다. 눈이 크고 예쁜 영이는 분명히 많은 남학생들에게 데이트 신청도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새침한 영이가 너무 좋아서 영이가 오가는 길을 서성이는 남학생도 있었을지 모른다. 내년이면 그랬을 영이가 19살을 다 살지 못한 채 죽었다. 

열흘 전 영이는 집 앞 공원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후 의사들은 가까스로 영이의 심장을 살려 냈지만 영이의 뇌를 살려내진 못했다. 영이는 뇌사상태로 일주일을 더 살았다. 영이의 간, 신장, 각막, 심장은  살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기증되었고 영이는 그렇게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났다. 영이는 몰래 모아 온 약을 먹었고 그녀의 뇌는 잠든 채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사는 것이 힘들어 죽고자 했던 영이로 인해 살고자 했던 누군가는 간절히 원했던 것을 얻었고, 다시 수많은 기회를 얻었다. 삶과 죽음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나는 영이를 세 살 때부터 알았다. 작은 얼굴, 뽀얀 피부, 커다란 눈을 가진 귀엽고 사랑스러운 예쁜 여자아이였다. 영이는 가족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영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안경을 쓰던 날, 영이의 할아버지는 안경 때문에 영이의 예쁜 눈이 가린다고 안타까워하셨다. 나는 영이 눈은 너무 예뻐서 안경 정도로는 가릴 수 없다고 말했다. 다 성장하면 렌즈를 끼어도 되고, 수술을 해도 되니 걱정 마시라고 말했었다. 


어느 누구도 영이가 열아홉 살에 스스로 자기 생을 끝내버릴 줄은 몰랐다. 우리 중 누구도 영이의 예쁜 두 눈이 다른 누군가의 눈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영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른다. 지레짐작으로 19살 영이의 죽음에 수많은 이유를 붙이는 것은 죽은 이에게도 남은 자에게도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나는 영이의 죽음에 “왜?”라고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주변의 많은 이들과 그 가족이 죽음을 맞는다. 나는 모두의 장례식에 가진 못한다. 하지만 되도록 꼭 가는 장례식이 있다. 그건 부모가 상주로 서 있는 장례식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를 만나러 가지만 매번 나는 그들에게 어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을 삼키며 그들을 꼭 안거나 손을 잡고 그들의 슬픔을 함께 할 뿐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되겠는가? 나는 그저 같이 울어 줄 뿐이다. 나보다 어린 영이의 엄마를 품에 안고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담담하게 내게 말했다.  


“영이의 심장이 살아 있던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매일 영이를 보내는 연습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 괜찮아요.” 

담담한 그녀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저 영이와 영이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위해 엄마인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이 순간을 버티고 있는 것을 안다.  장례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 영이의 방에서 영이의 물건들을 마주 할 때, 그녀의 가슴이 슬픔으로 침식될 것을 나는 짐작한다. 그녀가 그리움과 눈물로 걸어야 할 광야가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인 것을 나는 안다. 영이는 나무 아래 묻혔다. 친구들은 영이의 나무에 영이와의 추억을 걸어주었다고 했다. 엄마는 매주 토요일마다 영이의 나무를 보러 간다. 그녀는 영이를 만지듯 나무를 쓰다듬고, 영이를 돌보듯 나무를 돌보며 슬픔과 그리움을 꾸역꾸역 삼켜내고 있다. 

 

 


영이의 죽음 후 나는 ‘살고 싶지 않은 순간이나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시절에도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좌절과 절망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삶을 끝까지 걸어가는 이들의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사람과 삶의 모습이 다양하니 이 질문에 답변도 그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나는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대답을 듣고 싶어졌다. 그리고 맨 먼저 그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 

 “내면의  바닥을 이루며, 나로 하여금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을 뚜벅뚜벅 걷게 만드는 반석 같은 그 힘은 무엇인가?”     

50년을 살면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여러 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내가 가진 믿음과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내 삶에 벌어졌고, 억울하고 서러운 눈물이 세상으로부터 나를 갈라내 외딴섬처럼 나를 고립시켰다. 나는 그 모든 순간에 절망을 생각할 수 있었지만 소망을 품고자 했고, 주저앉는 대신 짚고 일어설 수 있는 지팡이를 찾고자 했다. 사는 것이 의미 없다 느껴질 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내고 싶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주저앉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내 대답의 첫 번째 이유는 나는 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업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면서 그 기업에 투자한 많은 이들이 생겨난다. 수년이 흐른 후 그 기업은 한 사람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삶이 그렇다. 엄마의 자궁에 잉태되어진 순간부터 지난 50년 동안 수많은 이들이 내 삶에 영향을 미쳤고, 자신의 것을 내게 투자했다. 시간과 물질을 주었고, 기회를 주었으며, 마음을 주었고, 생명을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내 삶에 자신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내 삶에는 창조주의 지분이 있고,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나를 품어 키운 내 부모님의 지분이 있다. 내 삶에는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며 기도의 씨를 뿌린 자매와 친구들의 지분이 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들의 지분이 있다. 그리고 내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이 내게 각자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다.     

 
나는 내 손에 절망의 칼을 쥐어 줄 수도 있고 소망의 지팡이를 잡게 할 수도 있지만,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니 내키는 대로 막살겠노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내 삶에서 나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있는 권력을 가졌지만 동시에 나는 내게 지분을 가진 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내가 내 삶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다.     


오십이 넘은 나는  늙어갈 것이고 머지않아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전보다 더  많은 질병에 노출될 것이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과 이별을 겪으며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고통과 슬픔, 허무함이 나를 흔들지도 모른다. 내 삶의 지분을 가진 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배당금을 그들에게 지불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투자를 받아야 할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든 이들에게 배당을 해야 할 시간을 살아야 한다.     

두 번째 이유이자 내면의 바닥을 이루는 반석 같은 힘은 사랑이다. 나는 사랑으로 창조되었고, 사랑 받음으로 보호받았으며 수많은 기회를 얻었다. 나는 사랑함으로 행복했고 성장했으며 삶을 배웠고 확장시켰다. 타인에게 사랑받고 타인을 사랑함으로 비로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처럼 모든 순간 나 스스로를 소중히 품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이별을 경험하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외면하거나, 새로운 관계에 마음을 열고 사랑하려는 노력을 지속하지 않는다면, 삶의 반석은 점점 약해지고 작은 충격에도 삶은 무너질 수 있다. 그러니 어떤 두려움과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하고 사랑 받음을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아야 한다. 내가 만난 수많은 존재 대부분은 오랜 세월 가까이 지켜볼수록 제각기 사랑스러운 면이 있다. 밉고 싫은 이유도 있지만 사랑스러운 이유도 많다. 그러니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주름이 늘어가고 매년 더 약해지는 언니들과 친구들을 나는 스무 살 때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니 젊음과 멀어진다 하여 사랑받지 못할 이유도 없다.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뒤얽히다 보면 삶이 날개 없이 추락하는 순간에 서로를 지켜내는 그물망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태풍에 무너질 산을 지켜내는 칡넝쿨처럼 좋은 사람들과 얼키설키 뒤얽히며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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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님은 사별 3년 차로 10살에 아버지를, 20살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날에 잃었다. 그리고 47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녀는 47살에 또다시 찾아온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 좌절과 희망이 담긴 글을 써서 사별 카페에 공유했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희망이 담긴 글은 사별 카페의 많은 사별자들에게 공감의 위로와 더불어 희망과 도전을 주었다. 얼마전 사별 카페에서 만난 네 분과 함께 사별 이야기를 담은책 <나는 사별하였다>를 출간하였다. 이제는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사는 날 동안 봄바람의 꽃잎 처럼 삶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화성에서 작은 시골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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