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저를 몰라보셔도 괜찮아요”


오늘은 장애인 목욕봉사가 있는 날인데 아침부터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뭄 후 오랜만에 보는 봄비이니 단비인 것은 확실한데 혼자서 우산을 받쳐 들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단비도 씁쓸한 불편함이 될 수 있다. 목욕탕으로 이동하려니 횡단보도 앞에 휠체어를 잡고 계신 팔십이 넘은 어머니와 육십이 넘은 아들이 우산을 받쳐 든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익히 알던 분들인지라 나는 얼른 늙은 어머니대신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어머니는 봉사하러 온 고등학생의 우산을 같이 쓰고 목욕탕으로 따라오셨고 나는 아들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밀고 봄비 속을 앞서 걸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과 밀어주는 사람이 빗속을 함께 걸으면 한사람은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나는 15분동안 비를 맞았지만 어머니는 20년 세월 아들을 위해 여러 번 비를 맞으며 걸었겠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61세 아들은 마흔 살에 뺑소니 교통사고로 뇌와 척추를 다쳤고, 오랫동안 의식불명이었다가 겨우 깨어났는데 다시 아기가 되어 어머니 품으로 돌아왔다. 치료를 위해 자신이 가진 전 재산과 남은 인생을 쏟아 부은 어머니는 이제 85세 허리 굽은 가난한 노인이 되었지만, 환갑의 아들은 여전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로 살고 있다.

오랫동안 어머니는 아들을 남탕으로 보내고 나면, 본인은 여탕에 들어 오셔서 다른 장애인분들이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아들을 목욕시켜 주셔서 감사하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돕고 싶으셨던게다. 목욕봉사는 항상 봉사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하신 일은 목욕봉사팀에서 딱 필요한 도움이었다. 몇 년 전부터는 팔순이 넘은 어머니도 같이 목욕봉사를 받으시라고 권해드렸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거절하셨다. ‘내가 너무 늙어서 이제는 아들을 목욕시킬 수가 없었는데 우리 아들 목욕시켜 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하다고, 나까지 신세질 수 없다’고 말하셨다. 그래도 우리는 어머니를 뵐 때마다 거듭 권해드렸고 어머니는 1년 전부터 목욕탕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목욕봉사를 받기 시작하셨다.  

 


목욕탕에서 내 인기는 연예인 못지 않다. 머리에 타월을 두른 벌거숭이로 이만한 인기를 누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내가 또 해내고 만다. 왜 인기가 좋냐고? 몸매가 비결이냐고? 묻는다면, 물론 난 잦은 산행으로 다져진 근육의 날씬한 몸을 가졌다고 말할수 있다. 하지만 내 인기의 비결은 따로 있다. 이 일도 십 년 넘게 하다보니 나름 요령을 터득해서인지 나는 때를 아프지 않으면서도 아주 시원하게 잘 민다. 한 번 나한테 때를 밀어보신 분들은 내 목욕 서비스를 다시 받길 원하셔서 선착순 대기 번호를 부여할 정도다. 그러니 이날만큼은 팬서비스 차원에서라도 나는 무대위 가수처럼 뜨거운 땀방울을 닦아가며 때를 민다.  

오늘은 세 분의 때를 밀어드렸는데 그 중 한 분으로 어머니의 때도 밀어 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 85세 어머니는 아주 작고 말랐다. 근육이 다 빠져버린 거죽만 남은 마른 몸의 때를 밀어 드리면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마른 몸의 어디에서 아들과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나오는지  의문스러웠다. 어머니와 나는 때를 밀면서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었는데 그 대화가 내 마음에 묵직한 울림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목욕을 받으면서도 “내가 이런 귀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너무 감사하다”고 하셔서 나는 어머니의 볼에 내 볼을 맞댄 채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세요. 천국에 가시면 하나님이 이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을거예요.” 

어머니는 “내가 글도 모르는 바보라 하나님 말씀을 읽지 못해서 항상 아버지께 죄인이야. 그래도 ‘아버지는 내 마음 아시죠’하며 기도를 하고 또 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목사님 말씀 들은 거 마음에 잘 새겨 기억하고 또 기도하는거 밖에 없다”라고 고백하셨다.


난 어머님의 고백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목사님의 설교에 너무 쉽게 비평의 칼날을 들이대며 취향대로 골라 듣는 나는 설교 한편을 어머니의 반만큼이라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었던가?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원 없이 성경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 적이 있던가?  내가 누린 배움의 기회와 지식에 대해 나는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어머니는 “때밀어 주느라 힘들어서 어쩌냐! 내가 때가 많을 것인데... 내가 집사님을 너무 고생시키고 있네”라고 말하시며 자꾸 미안해 하셨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 지금 제가 때 밀어드리는 거 아니예요. 지금 ... ”하고 다음 말을 하려는데 어머니가 나보다 먼저 다음 말을 이으셨다.

“지금 나 때밀어 주는 거 하나님이 하고 계신거 알아요. 그분이 자꾸 나를 살게 해.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으면 나는 진작에 어찌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분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어.”라고 고백하셨다. 난 그 순각 울컥 목이 메이면서 왈칵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어머니의 마른 몸의 때를 밀어드리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었다. 


“주님, 지금 제 몸을 당신께 내 드릴테니 지금 이 순간 주께서 12제자들의 발을 닦으신 날처럼 여기 제 앞에 앉아계신 어머니의 마른 몸을 닦아주세요. 제자들은 발만 닦으셨지만 어머니는 온 몸을 닦아주시고 이분의 마음도 닦아주시고 눈물도 닦아주세요.” 

어머니가 나에게 “지금 나 때밀어 주는거 하나님이 하시는거 알아요.”라고 말하시는 순간 나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 주님이 계신 것을 느꼈다. 주님이 여자 목욕탕에 앉아 오늘 어머니의 몸을 닦으시고, 어머니와 나의 눈물을 닦으시는 것을 느꼈다. 목욕탕의 수증기와 얼굴에서 흘러 내리는 땀 때문에 눈물을 감출 수 있어서, 나는 어머니의 때를 밀면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어머니는 목욕을 마치시면서 자신이 기억을 자꾸 놓쳐서 다음 주에 교회에서 나를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귓가에 대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저를 몰라보셔도 괜찮아요. 제가 어머니를 알아볼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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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님은 사별 3년 차로 10살에 아버지를, 20살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날에 잃었다. 그리고 47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녀는 47살에 또다시 찾아온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 좌절과 희망이 담긴 글을 써서 사별 카페에 공유했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희망이 담긴 글은 사별 카페의 많은 사별자들에게 공감의 위로와 더불어 희망과 도전을 주었다. 얼마전 사별 카페에서 만난 네 분과 함께 사별 이야기를 담은책 <나는 사별하였다>를 출간하였다. 이제는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사는 날 동안 봄바람의 꽃잎 처럼 삶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화성에서 작은 시골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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