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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손바닥만 한 사랑

by 한종호 2021. 7. 18.


주일 저녁예배, 오늘은 특별히 박종구 씨 가정을 위해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박종구 씨는 변정림 씨 남편인데 얼마 전 발에 심한 동상이 걸렸다. 술에 의지해 살아온 박종구 씨, 술에 취하면 고래고래 큰 소리가 작실 골짜기에 밤늦게까지 가득하다.


얼마 전 동네에 결혼식 잔치가 있던 날, 몹시 춥던 날이었는데 그날 동상이 걸렸다. 한낮에 술에 취한 채 나간 박종구 씨를 밤 11시가 되어서야 윗작실 논배미에서 발견을 했다. 마실을 갔다가 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발견을 한 것이었다.

 

 

연락을 받은 집배원 아저씨가 놀라 달려갔을 땐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짚단에 불을 놓아 한참을 녹인 다음에야 겨우 등에 업고 집으로 내려올 수가 있었는데, 그 사이 발에 심한 동상이 걸린 것이다. 이야길 듣고 찾아가 보니 발은 양쪽 모두가 퉁퉁 부은 채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딱한 사람들, 부인에, 서른 넘은 두 아들에, 아버지 쓰러져 있는 걸 알면서도 집으로 모셔올 줄 몰랐다니. 그렇게 부인은 갑상선으로, 남편은 심한 동상으로 가뜩이나 어렵고 막연한 생활이 더욱 어렵게 되었던 것이었다.

어느 분은 방송국에나 알려보지 그러냐고 했지만 아픔을 나눠야 할 이를 뛰어넘은 도움이 결코 올바른 일은 아니지 싶었다. 회의를 통해 그 가정을 위해 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사랑의 헌금을 모으기로 했다. 적더라도 정성껏 참여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저녁예배, 많지도 않은 우리는 모여 눈물 속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는 마음이 착잡하게 가라앉아 숙연하기까지 했다.


손을 내민 걸인에게 전할 돈이 없어 “미안합니다. 형제여. 아무 것도 전할 게 없군요.” 하며 걸인의 손을 잡았다는 투르게네프. 그런 투르게네프를 향하여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이제까지 그 누구에게서도 받아 보지 못한 가장 좋은 것을 선생님께 받았습니다.” 했다던 걸인. 설교 시간에 마태복음 25장과 함께 투르게네프 이야기를 했다.

그리곤 사랑의 헌금시간. 어렵긴 매한가지인 신 집사는 도무지 돈이 없어 대신 쌀을 가져왔노라며 제법 쌀이 담긴 비닐부대를 바쳤다. 안쓰러운 표정과 함께. 이식근 성도는 모르고 왔노라며 오천 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아내는 돼지를 바쳤다. 소리 돌 때 바이올린 사준다며 한 푼 두 푼 키워왔던 돼지.

 

그렇게 정성이 모인 헌금함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한다. 드린 헌금이, 헌금 속에 담긴 우리들의 작은 사랑이 어려움 당한 박종구 씨 가정을 일으키는데 도움 되게 해달라고, 우리의 부족함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우리가 드린 헌금은 모두 82,900원이었다. 누구하나 넉넉한 이 없이 어려움 속에서 드린, 어려움 속에서 어려움 나눈 거룩한 액수다. 사랑이여, 우리들의 이 작은 사랑이여, 큰 아픔 감싸기엔 손바닥만 한 작은 사랑이여.

불쑥 전하고 말 일이면 오히려 쉬운 일, 이제부터의 모든 일이 부디 의무감에서가 아니기를.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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