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컷 멀미를 하며

 



보건소장이 써준 소견서를 읽고 이리저리 부어오른 목을 살펴 본 의사는 너무 늦게 왔노라고 쉽게 말했다. 접수, 대기, 그토록 한참을 기다려 만났는데도 대답은 간단했다. 환자 먼저 나가 있으라고 한 후 나눈 이야기는 어두운 내용이었다. 방법은 수술뿐, 수술도 장담할 수는 없겠노라는 것이었다. 약으로서 치료나 병의 악화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수술을 하면 얼마나 들까요? 의료보호카드가 있는데요.”
“글쎄요 그걸 제가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진찰비가 20-30만원, 수술비는 50-60만원 정도 될 겁니다.”


머릿속에 얼핏 100만원의 숫자가 지난다.


“중요한건 돈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을 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결정일 거요. 돈이야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소.”
“실은 저희들에겐 돈도 문제가 됩니다.”


왠지 눈물겨웠다. 의사는 문제가 안 된다는 돈이 우리에겐 눈앞의 문제 아닌가.


“다른 처방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의사의 말은 단호했다. 젊은 전도사양반, 당신이 하는 일이 혹 객기 아니요 싶은, 왠지 내겐 의사의 말과 태도가 그렇게 비쳐졌다.


“더 늦기 전에 신청하십시오. 수술이 밀려있어 지금 신청해도 3주 후에나 가능할 겁니다.”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힘없이 병원을 빠져 나왔다.

변정림 씨는 광철 씨 어머니다. 지난해부터 가끔씩 교회에 나오는 우리 교우다. 변정림 씨는 갑상선으로 불쑥 목이 부어있는데 오육 년 됐다고 기억할 뿐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했는지 본인은 물론 분명하게 기억하는 이가 없다. 가끔씩 보건소에서 약 타다 먹고, 가끔씩 교회에 나와 기도도 하며 목이 부었다 내렸다 했는데, 이젠 제법 부어오른 목이 가라앉을 줄 모른다.

안타까워 할 뿐 가족도, 친척도 어느 누구도 병원에 함께 갈 생각을 못했다. 모두 여섯 식구가 사는 위태한 오두막집, 가보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외면하고 싶은 현실, 그럴 순 없어 찾아갔던 병원. 어두운 이야기만 듣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 실컷 멀미를 하며.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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