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작실속 속회, 유치화 청년 집에서 모이는 날이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해져야 일손을 놓고 집에 돌아오는 사람들, 그제야 씻고 저녁 먹고 하면 어느덧 시간은 저만큼이다. 일찍 모이자고 약속했으면서도 밤 10시가 넘어서야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치화 씨가 주변에 모임을 알리러 나간 사이 치화 씨 어머니가 툇마루에 촛불 하나 밝히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아직 유치화 청년 집에는 전기가 없다. 오랫동안 비어 있어 전기가 끊긴 집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둘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사는 내력은 길고도 슬프다. 삶이란 저리도 기구하고 질긴 거구나 싶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며 흔들리는 촛불 앞에 둘러 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불에 관한 이야기였다.

 

“옛날엔 등잔불 아래서도 명주 올이 잘 보였는데.”

“기름 있기 전엔 산에 가 산초라는 열매를 땄지요. 그 열매를 짜 그 기름으로 불을 켰어요.”

“그러고 보니 동네에 전기 들어 온지 이제 막 10여년이 됐네요.”

 

흐린 불을 핑계 삼아 공과 책을 덮고 그날 예배는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잘 아는 찬송을 두 곡 부르고 ‘가난하지만’이라는 말씀을 나눴다. 웬일인지 예배를 드리는 동안 마음은 어느 때보다 넉넉했다. 가난하더라도 넉넉하고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위엔 온통 개구리 울음소리, 푸른빛의 군무, 반딧불이 나는 밤이었다.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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