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못한 지게



지게를 지고 논두렁길을 걸어오는 사람, 작은 키에 독특한 걸음, 아직 거리는 멀지만 그분이 신집사님임을 안다. 당신 키보다 높은 나무를 한 짐 졌다. 좁다란 논둑길을 걷는 걸음새가 영 불안하다. “집사님!” 땅만 쳐다보고 오던 집사님이 깜짝 놀라 섰다. 이마에 알알이 땀이 맺혔다. 장갑도 없이 꺼칠한 손. “힘드시죠?” 뻔한 질문이 송구하다. 많은 말은 필요 없다. 겉치레도 그렇다. 다시 웃고 마는 집사님. “제가 한번 져 볼게요.” “안 돼요! 전도사님.” 


집사님은 놀라 막는다. 조금만 져 보겠다고 몇 번을 얘기한 끝에 지게 아래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을 수 있었다. 지게에 등을 대고 두 팔을 집어넣어 어깨띠를 양쪽 어깨에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깨끈이 어깨에 걸리질 않는다. 주르륵 팔뚝으로 내려와 엉성한 모양으로 걸릴 뿐이다. 오랫동안 지게를 안 져서 그런 거겠지 싶어 바싹 당겨 앉으며 다시 한 번 져 본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집사님이 깔깔 웃는다. 알고 보니 그 지게는 집사님의 작은 체구에 맞도록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 지게도 여느 지게보다 작았고, 어깨끈 역시 짧은 것이었다. 덩치가 큰 내게 맞을 리가 없었다.


아직 어린, 초등학교에 다니는 병관이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집사님. 남편은 오랜 병치레 끝에 지난 해 세상을 떠났고, 다 큰 자식들은 소식이 안 닿는다. 자식 약속 믿고 줄줄 비가 새는 초가지붕을 스레트로 갈았는데, 곧 갚아준다기에 그 말 믿고 빚 얻어 하긴 했는데, 세상에, 소식이 끊겨 버리다니. 빗 독촉에 못 이겨 아들 있는 서울 올라가니 셋방 집에도, 다니던 공장에도 아들은 없고 또 어디로 옮겼는지도 모른단다. 말 안 하고 옮겼단다. 모두 털어 갚고 나니 남은 게 십팔만 원. 하루 품값이 사천 원. 없는 살림에 십팔만 원은 왜 그리 큰지. 어려울 때, 지독히 어려울 때 왜 가깝던 사람들은 멀어지는 것인지. 많은 이들의 외면 속에 정말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지게를 지겠노라는 전도사의 빈말을 뒤로 하고 다시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 집사님, 문득 지게가 더욱 무겁게 보인다.

‘집사님, 사람에겐 저마다의 짐이 있나 봅니다. 다른 사람이 져 줄 수 없는, 자신만이 질 수 있는 고통이 있나 봅니다. 내가 얼마나 작아져야 당신 고통의 자리, 그 자리에 닿을 수 있는 것인지, 집사님, 오늘지지 못한 당신의 지게를 두고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얘기마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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