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76 도대체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7) 도대체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은 물이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화학물질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사람은 프랑스의 화학자인 앙투안 라부아지에였단다. 1783년 라부아지에가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크게 놀랐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대로 물이 세상을 이루는 기본적인 물질인 원소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놀란 사람은 그런 사실을 알아낸 라부아지에 자신이었다고 한다. 수소는 불을 붙이면 폭발하는 기체이고 산소 역시 불에 무섭게 타는 기체, 그러나 이 둘이 결합하면 불을 끄는 물이 된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았을 때 라부아지에는 자연의 신비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구의 70퍼.. 2019. 7. 8. 베트남 여성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의 부끄러움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베트남 여성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의 부끄러움 이라는 나라의 이름은 1970년대 세계반전 운동의 푯대였다.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맞서 오랜 항불 투쟁을 해왔던 호지명은 이미 당시 제3세계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다. 프랑스에도 굴하지 않았고, 잠시 이 나라를 점령했던 일본에도 항복하지 않았던 호지명과 그의 조국 베트남. 미국은 이 나라를 침략했지만 결국 손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1953년,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축출된 이후 베트남에서는 제네바 회의의 결과로 평화적인 선거가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프랑스가 지배했던 남베트남과, 이미 해방이 된 북베트남의 통일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렇게 해서 베트남이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국가가 되는 것을 그대로 .. 2019. 7. 8. 이제 우리 웃자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6) 이제 우리 웃자고 도대체 웃을 일이 없어, 그보다 쓸쓸한 말이 어디 있을까. 쓸쓸한 말이 어디 한둘일까만, 그보다 더 쓸쓸한 말이 무엇일지 모르겠다. 도무지 웃을 일이 없던 한 사람이 있었다. 다 늙도록 아기를 낳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생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아기가 없다는 것이 웃음을 잃어버린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이유라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숨은 이유도 있다. 내게 주셨던 주님의 약속이 소용없어지고 만 것이다. 너의 후손이 바다의 모래알처럼,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겠다고 했던 빛나는 약속이었다. 모래알은커녕, 별들은커녕 단 한 명의 자녀도 태어나지를 않았던 것이다. 기대도, 가능성도, 어쩌면 믿음까지도 닫히고 말았.. 2019. 7. 7. 밝아진 눈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5) 밝아진 눈 사고라고 했다. 주물공장에서 일하다가 입은 사고라 했다. 사고를 직감하고 현장으로 달려갈 때 하필이면 뜨거운 주물이 눈으로 튀었다는 것이다. 한창 젊은 나이에, 한순간에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자 상실감일까. 단지 두 눈의 시력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빼앗기는, 자칫 영혼의 시력까지 빼앗아가는 난폭하고 거친 상실이었을 것이다. 연합성회를 앞두고 후배 목사는 그 교우에게 참석을 권하며 강사에 대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고 한다. 시를 쓰는 목사라고. 자신의 인생에 느닷없이 찾아온 절망을 문학적인 관심으로 이겨내려는 그에게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집회에 별 관심이 없었던 그가 참석을 했.. 2019. 7. 7. 술만 퍼먹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4) 술만 퍼먹은 부산을 다녀왔다. 먼 길이지만, 다녀올 길이었다. 한 지인이 전시회를 열었다. 지인이 전시회를 연다고 불원천리 먼 길을 달려갈 입장은 아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다녀온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종이로 작품을 만드는 종이공예는 한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손이 가야 하지만 별로 티가 안 난다. 하지만 작가의 눈에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칼질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먼 길을 달려간 것은 작가의 그런 수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산고의 고통 없이 작품을 내어놓는 작가가 어디 있겠는가. 고단하면서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 그런데 딸이 아버지의 길을 이어 걷기로 했다. 아버지가 하는 작업을 눈여겨보고 그 길을 함께 걷기로.. 2019. 7. 6. 안락과 안락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3) 안락과 안락사 창문 저 밖 남의 가정은 다 안락해 보이고 창문 저 안 나의 가정은 다 안락사로 보이듯 공 서너 개가 두 손 사이에서 춤을 추는 서커스 단원처럼, 언어를 다루는 시인의 솜씨가 빼어나다. ‘창문 저 밖’과 ‘창문 저 안’이 ‘안락’과 ‘안락사’로 어울리고 있으니 말이다. 말장난이다 싶으면서도 마냥 가볍지만 않은 것은 그 속에 우리의 삶과 심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들 잘 사는데 나만, 우리만 왜 이 모양일까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다들 행복한데 나만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기막힌 순간 말이다. ‘창문 저 밖’과 ‘창문 저 안’은 다르다. ‘안락’과 ‘안락사’처럼 다르다. 그 괴리감은 우리의 마음을 창처럼 깊이 찌른다. 더는 창문 저 밖을 내다보지 않으려.. 2019. 7. 5. 천천히 켜기 천천히 끄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2) 천천히 켜기 천천히 끄기 정릉교회에서 새벽예배를 드리는 곳은 ‘중예배실’이다. 정릉교회에서 가장 큰, 그래서 주일낮예배를 드리는 곳은 ‘대예배실’이다. ‘중예배실’과 ‘대예배실’이라는 말은 상상력의 부족으로 다가온다. 적절한 이름을 생각 중이다. 새벽예배를 드리기 전, 일찍부터 기도하러 온 교우들을 위하여 제단의 불만 밝히고 회중석의 불은 밝히지 않는다. 조용히 기도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이다. 당연히 예배를 시작하는 일은 불을 밝히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불을 켜는 모습을 보면 대개가 와락 켠다. 스위치는 모두 6개, 그런데 조작에 익숙한 듯이 한꺼번에 불을 켜곤 한다. 그렇게 한꺼번에 켜면 기도를 하느라 눈을 감고 있다가도 눈이 부시고, 그 짧은 순간 눈을 찡그리게 .. 2019. 7. 4.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길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1)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길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하다가 문득 떠오른 지난 시간이 있었다. 어디서 출발을 했던 것일까, 늦은 시간 밤길을 달려 단강 인우재를 찾은 적이 있었다. 익숙한 출발지가 아니어서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목적지를 단강초등학교로 입력했다. 단강 근처만 가면 인우재야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단강에 도착을 했고, 나는 단강 초입에서 좌회전을 하여 작실마을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비게이션이 뜻밖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이 길로 계속해서 진행하시면 먼 길을 돌아오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아는 길이기에 멘트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작실로 올랐는데, 마치 안타깝다는 듯이 같은 내용을 몇 번 더 반복을 했다. 그런.. 2019. 7. 3. 간도 큰 사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80) 간도 큰 사람 창밖으로 내다보니 권사님이 일을 하고 있었다. 올 들어 가장 무덥다는 날씨, 장마가 소강상태여서 습도까지 높아 그야말로 후텁지근하기 그지없는 날씨였다. 그런데도 권사님은 교회를 찾아와 소나무 다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경위원회 일을 맡으신 뒤론 시간이 될 때마다 들러 예배당 주변을 가꾸신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 두 개를 챙겨 내려갔다. 권사님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일에 열중이었다. “잠깐 쉬었다 하세요.” 손을 멈춘 권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조경 일을 하는 권사님은 하루 일을 마친 뒤 집에 가서 땀범벅인 옷을 갈아입고 다시 교회로 달려온 것이었다. 지금이 소나무를 다듬기에는 적기라며 예배당 초입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를 다듬는 중이었다. .. 2019. 6. 30. 이전 1 ··· 177 178 179 180 181 182 183 ··· 29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