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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490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신동숙의 글밭(154)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하루의 생활이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뻐꾸기 소리에 눈을 뜨는 아침에도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로 움직이기보다는 이부자리에 그대로 앉습니다. 말로 드리는 기도보다는 침묵 속에 머무르는 고요한 시간입니다. 고요한 아침을 그렇게 맞이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앉았는 자리가 먼 동이 트는 산안개가 고요한 어느 산기슭이면 보다 더 좋겠지만, 골방에서도 가슴엔 밝은 하늘이 펼쳐집니다. 밤새 어두웠을 가슴으로 숨을 불어 넣으며 더 내려놓으며 새날 새아침을 맞이합니다. 20년 전쯤에 요가를 배우며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12가지 기본 동작을 아사나라고 하는데, 요가 수행자들의 몸수행의 방편이었던 아사나는,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이는 조화로운 몸동작인 것입니다.. 2020. 5. 26.
제자리에서 피운 꽃 신동숙의 글밭(153) 제자리에서 피운 꽃 작약, 수레국화, 양귀비, 민들레, 금계국, 개망초, 철쭉, 소나무꽃, 초록 잎사귀, 둘레에는 언제나 넉넉한 하늘 초여름 강변에 피운 꽃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쉼 없이 떠돌아 다니는 생각은 바람이 되고 집 없이 자꾸만 흐르는 마음은 강물이 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저절로 알 때 제자리에서 피운 꽃들에게서 배웁니다. 바람이 꽃이 되고 물이 꽃이 되는 길을 제자리에 머물러 머리 위에 하늘을 이고 진리의 땅에 사색의 뿌리를 내리는 들숨 날숨에 기대어 마음을 내려놓으며 명상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일상 속에 그려봅니다 상관없는 모든 아픔에까지 빗물 같은 눈물을 흘리다가 햇살 같은 웃음을 욕심 없이 짓다 보면씨앗처럼 작고 단단한 가슴이 열리어 제가 앉.. 2020. 5. 24.
가난하여서 가난함은 아니다 신동숙의 글밭(152) 가난하여서 가난함은 아니다 오늘의 가난함은 가난하여서 가난함은 아니다 하루치의 부유함 속에 씨앗처럼 품고 품은 빈 가슴의 가난함이다 풍성한 밥상 앞에서 밥알처럼 곱씹는 굶주린 배들의 가난함이다 행복의 우물 속에서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목마른 입들의 가난함이다 오늘 먹고 마신 부유함이 품은 가난함 있음이 품은 없음 모두가 잠 든 후 홀로 앉아서 없음을 알처럼 품는다 없음을 품고 품으며 침묵의 숨을 불어 넣으면 빈 가슴이 속속들이 차올라 없는 가슴을 채우는 건 있음의 부유함도 풍성함도 행복도 아니다 없음을 채우는 건 없는 듯 있는 하늘뿐이다 2020. 5. 23.
5.18에 걸려 온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재모집 전화 신동숙의 글밭(151) 5.18에 걸려 온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재모집 전화 5·18에 극동방송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에 극동방송에 전파 선교비를 후원하셨는데, 다시 하실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기 너머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편에선, 왜 하필 5·18에 전화를 하셨느냐며 못마땅한 듯 반문을 하였다. 두 자녀 이름으로 두 구좌를 후원했었다. 교회를 다니는 동안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가 자동이체가 되었으니까 4년이 넘는 기간인 것 같다. 당시에 극동방송 측으로부터 선물이 배송된 적이 있다. 책 한 권이었는데 창업자이자 현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의 자서전이다. 그 안에 전두환 대통령이 김장환 목사의 집에 방문한 일화가 나온다. 김장환 목사는 스스로의 행동을 자랑삼아 들려준다. 대통령이 내 집에 .. 2020. 5. 19.
영혼의 종소리 신동숙의 글밭(150) 영혼의 종소리 첫 번째 종소리는 네 살 때 울렸다 옆집 아저씨는 마을 뒷산에서 4시면 새벽 기도한다더라 기도가 뭐지아무도 없는 깜깜한 산에서 살아오면서간간히 들려오는 종소리 두 번째 종소리는 신약을 읽다가 울렸다 예수는 무리를 떠나 홀로 산으로 가시더라 뭐하러 가시나 아무도 없는 산에서 종소리는 빈 가슴에서 울린다 언제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는 빈 하늘이다 2020. 5. 18.
생각의 기쁨 신동숙의 글밭(149) 생각의 기쁨 모든 생명에게 친절하되 벗과 책은 가려서 사귀어라는 옛말이 언제나 길이 됩니다. 하지만 제 어린 시절에는 이러한 말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학급 문고를 만드신다며, 집에 있는 책 중에서 두 권만 가져 오라는 과제를 내주셨습니다. 제 어릴 적 살던 집에는 교과서 외에는 책이 없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동대신동 시장 입구 모퉁이에 작은 서점이 떠올랐습니다. 그 앞을 지나다니며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슬쩍 보아 오긴 했어도, 들어가 본 적은 없던 작은 서점입니다. 서점에 들어섰을 때의 막막함은 빈탕한 하늘을 대하는 듯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가늠해야 하는 순간 같기도 했습니다. 책을 고르려면 뭔가 좋은 책을 고를만한 지침.. 2020. 5. 16.
세상에 이런 글이 있구나 신동숙의 글밭(148) 세상에 이런 글이 있구나 - 허공처럼 투명한 다석 류영모 선생의 글 - 세상에 이런 글이 있구나 글쓰기에 틀이 있다면 그 틀을 초월하는 글 글에 울타리가 있다면 그 울타리가 사라지고 경계도 무색해지는 글 가령 시 한 편을 적을 때, 같은 단어를 두 번 이상 쓸 경우 필자는 긴장을 하곤 한다. 자칫 강조의 말이 강요의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머지 단어들까지도 탄력을 잃어버리거나 의미가 퇴색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같은 단어를 두 번 쓰기가 늘 조심스러운 것이다. 다석 류영모의 글에선 같은 뜻의 다양한 표현으로 '얼의 나', '얼나', '참나', '영원한 생명', '진리의 성령', '하느님 아버지'라는 단어를 써도 너무 많이 쓴다. 그것도 한 단락 안에서만 찾아 보아도 .. 2020. 5. 13.
경전이 참고서라면 교과서는 신동숙의 글밭(147) 경전이 참고서라면 교과서는 지식의 잎새가 무성해도 하늘을 다 가릴 수는 없습니다. 지혜의 잎새가 풍성해도 마음을 다 밝힐 수는 없습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의 를 읽다 보면 화두처럼 가슴에 인이 박히는 말들이 있습니다. 제 마음에도 걸림이 없는 말들입니다. 류영모 선생의 제자인 함석헌 선생이 말하기를 '"선생님의 두뇌는 천부적이지만 대단히 과학적이다." 이어서 박영호 선생이 말하는 류영모의 사상은 대단히 신비하지만 미신적인 데가 없이 허공처럼 투명하다.'(박영호, , 교양인, 104쪽) 예전에 박재순 선생의 를 감동과 놀라움으로 다 읽은 후 지금껏 남아 있는 한 가지는 허공처럼 투명한 하나님입니다. 참나, 얼나, 영원한 생명이라고도 부르고, 불교에선 불성, 참자.. 2020. 5. 12.
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신동숙의 글밭(146) 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딸아이가 영어학원에 간다며 엄마 방으로 들어옵니다. 현관문 앞에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할 때가 많은데, 구석진 방에까지 온 이유는 알고보니 용돈입니다. 읽고 있던 다석 류영모 선생의 내용 중에서 한 단락을 들려주어야겠단 마음이 실바람처럼 불었습니다. 중 3 딸아이에게 '성서조선'과 '조선어학회 사건'이라고 들어봤느냐 물으니, "어, 조선어학회는 들어봤어." 합니다. 그리고 읽고 있던 내용 중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 들어간 한국인이 일본인 간수에게 개인 교사가 되어 공부를 가르쳐줘서 승진 시험을 치르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얘기를 들려주며 지갑에서 이천 원을 꺼내 건네주는데 딸아이의 눈이 번쩍하.. 2020.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