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숙의 글밭490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신동숙의 글밭(127)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언젠부터인가 저의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생겼어요. 일어나서, 씻고, 먹고, 비우고, 만나고, 일을 하고, 산책을 하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놀고, 글을 쓰고, 잠을 자고, 꿈을 꾸는 등 어느 것 하나 우리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 없지만요. 그래도 이 시간을 위해서 먹고, 이 시간을 위해서 읽으며, 이 시간을 바라보고 그리워하면서 어느덧 이 시간은 저의 하루가 품은 소중한 알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그처럼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은,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이제는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겠지만, 짧더래도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요. 윤동주 시인의 다 헤아리지 못하는 별처럼, 다 헤아릴 수 없는 봄날의 .. 2020. 4. 8.
누구는 꽃비라 하고 신동숙의 글밭(126) 누구는 꽃비라 하고 누구는 꽃비라 하고 누구는 꽃눈이라 하고 누구는 눈꽃이라 해도 알겠다 알아듣겠다 귀를 열어서 하늘 가득 춤추는 자유로운 꽃바람이나 바람꽃이나 보인다 집에서도 보인다눈을 감아도 내 안에 펼쳐진 풍경이푸르른 하늘인 걸 벚님들 말 한 마디에 마음에도 꽃이 피고 지는 걸 2020. 4. 6.
애틋한 봄이다 신동숙의 글밭(125) 애틋한 봄이다 봄이구나 싶어 바라보면 마른풀이 보인다 꽃이구나 싶어 바라보면 굳은살이 보인다 봄바람은 마른풀을 달래고 봄햇살은 굳은살을 품는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어울려 꽃을 피우는 애틋한 봄이다 2020. 4. 5.
단단한 흙밭에 호미질을 하다가 신동숙의 글밭(124) 단단한 흙밭에 호미질을 하다가 이웃에 두 평 남짓 화단이 있습니다. 시멘트와 벽돌로 담을 두르고 마사토를 쏟아 부워서 만든 작은 공간입니다. 로즈마리, 라벤더, 페퍼민트, 애플민트 등 각종 허브 모종을 한 뼘 남짓 간격을 두고 심은 곳입니다. 그리고 화단의 가장 먼 둘레에는 꽃을 볼 작은 묘목 대여섯 그루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작년 여름에 만들어 두고는 하늘만 믿는 천수답처럼 알아서 크겠지 하고 무심히 겨울을 지났습니다. 문제는 애초에 쏟아 부은 마사토의 높이가 울타리보다 높다는 점입니다. 비가 뜸하다 싶은 날 호수로 마른 흙밭에 물을 주면, 흙으로 스며 드는 양보다 밖으로 흘러 내리는 양이 많아 보였습니다. 입이 짧은 딸아이를 볼 때면 애가 타는 마음 같습니다. 때때로 교만으로 .. 2020. 4. 2.
기도는 물이 흐르는 신동숙의 글밭(123) 기도는 물이 흐르는 기도는 물이 흐르는 기도는 숨이 흐르는 품으면 꿈이 되고 피우면 꽃이 되는 하늘 숨으로 하나 되어 본향으로 돌아가는 홀로 깊은 침묵의 강 쉼을 얻는 평화의 강 2020. 4. 1.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말, "제발, 꽃 보러 오지 마세요!" 신동숙의 글밭(122)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말, "제발, 꽃 보러 오지 마세요!" 봄이 오면 장사익 소리꾼의 곡조가 봄바람처럼 불어오는 듯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둘째가 세 살이 되고 엄마 품을 벗어나려던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거실에 펼쳐둔 신문을 넘기다가 하얀 목련꽃 한 송이처럼 눈에 들어온 사진이 있었습니다. 하얀 한복을 곱게 입은 장금도 명인의 하얀 춤사위. 진옥섭 연출가의 땀으로 장금도 명인의 민살풀이를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생애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글줄에 예약을 부탁했습니다. 그해 6월, 저는 그렇게 십 여 년만에 자유의 몸이 되어서 혼자서 호젓이 서울행 KTX에 올랐습니다. 6월의 서울 거리는 따사로웠습니다. 졸업 .. 2020. 3. 29.
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 신동숙의 글밭(121) 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 세상에서 불어오는 무거운 소식들로 연일 답답하고 무거운 가슴입니다. 답답하고 무거운 가슴을 내려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어설프게 안고서 주신 하루의 언저리를 서성거렸습니다. 유튜브로 법정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강의도 듣다가,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가는 곳마다 법정 스님의 저서 을 끼고 다닌 하루였습니다. 저녁밥을 먹은 후 마저 치우지도 못하고, 법정 스님의 을 챙겨서 떠들썩한 식구들의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출가를 하였습니다. 식구들로부터 떠나와서 출가를 하는 장소는 거실 쇼파가 되기도 하고 제 방이 되기도 합니다. 식구들과 함께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가 참 다르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다 챙겨주고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2020. 3. 28.
예배 금단 현상인가, 예수 따르기인가 신동숙의 글밭(120) 예배 금단 현상인가, 예수 따르기인가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말한다면 침묵을 해야 하지만, 예배당 안에서 무리하게 예배 모임을 강행하려는 일부의 교회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연일 드물게 올라오는 포스팅에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서 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현재 코로나 집단 감염 예방을 위한 공공수칙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현 시국입니다. 그런 중에 일부의 기독교 목회자와 성도들의 모습에서 예배 금단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중독과 금단 현상이란 곧 나의 신앙이 깨어 있지 못한, 졸음 운전처럼 졸음 신앙이라는 증거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종교란, 나와 이웃의 생명을 살리려, 깨어 있는 사랑이 될 때에만, 존재의 의미를 지닐.. 2020. 3. 26.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연약한 생명에게 신동숙의 글밭(119)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연약한 생명에게 한 사람의 역할이 한 가지는 아닙니다. 생활하는 환경과 만나는 사람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역할이 때론 다양한 인격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선 순한 사람이 가정에선 엄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부족한 사람이다 보니 아이들한테 목소리가 올라갔다가 이내 후회하기도 합니다. 오래전 독립운동을 하기 위에서 집을 나서던 윤봉길 의사의 바짓단을 붙들고서, "아버지 제발 가지 마세요." 매달린 것은 여섯살 난 그의 어린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던 그의 아들에게 윤봉길 의사는 무정한 아버지였겠지요. 아들이 자라고 인생을 살아가면서는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을 테지만, 한국의 독립 .. 2020.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