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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492

숨쉼 신동숙의 글밭(170) 숨쉼 숨을 쉰다들숨 날숨 들숨의 채움으로날숨의 비움으로 숨을 쉰다거칠어지지 않게 걸음마다평화의 고삐를 붙든다 날숨마다 살피어몸이 붙든 힘을 풀어 주고 날숨마다 조금씩애씀을 내려놓는다 그리하면들숨은 저절로 깊어지는 것 멈칫 길을 잃어도 좋아 늘처음처럼 숨을 쉰다한 알의 몸으로 날숨을 더 오래 느긋하게숨을 쉰다 느리고 고요한숨은 쉼이 된다 씨앗처럼먼 별처럼 내 어둡고 가난한 가슴에한 알의 하늘숨을 품으며 숨을 쉰다한 점 몸이 점점점 푸른 하늘이 된다 2020. 6. 21.
산안개 신동숙의 글밭(169) 산안개 비가 오는 날에는산안개가 보고 싶어서 밥을 먹다가먼 산을 생각합니다 설거지를 하다가산안개를 생각합니다 푸른산 머리 위에 앉은하얀 산안개가 순합니다 비가 오는 그믐밤에도흰 박꽃처럼 순합니다 하늘도 순하고산도 순하고집도 순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온 마을이 하얀 박 속입니다 2020. 6. 20.
다석, 도올, 머튼, <시편 사색>을 주워서 소꿉놀이 신동숙의 글밭(168) 다석, 도올, 머튼, 을 주워서 소꿉놀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심심해진다. 한때 바깥 일도 해보았지만, 제 스스로가 이 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사람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자본과 경제 논리로 형성된 이 사회구조 안에선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물론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이 사회 안에서 있음직한 성공에 대한 꿈을 꾸어본 적 없이, 몸만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서로가 아쉬울 것도 없는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혼자 놀기로 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종종 쪽창으로 창밖을 본다. 마당 위에 하늘을 보고, 나무도 보고, 풀꽃도 보고, 새소리에 귀가 맑아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본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이 세상은, 자연은 참! 신기.. 2020. 6. 19.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신동숙의 글밭(166)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반바지에 반팔 셔츠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학교에 갑니다. 등에는 가방을 메고 누구나 얼굴엔 마스크를 쓰고서, 학교에 가는 중·고등학생들이 유월의 푸른 잎사귀 같습니다. 교실 안에서는 제 책상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저 푸릇한 귀를 열고서 선생님들의 말씀에 잔잔히 귀를 기울이겠지요. 특히 교실에서도 온종일 쓰고 있어야 하는 마스크에,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한지 안타깝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함은 다름 아닌,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일과 거듭 새기는 일이 됩니다. 옛어른들은 머리에 새기라고 하였지만, 그보다 더 앞선 옛어른들은 마음에 새겨 자신의 참마음과 세상의 참이치를 밝히는 공부를 참공부라 하였.. 2020. 6. 12.
진실이 걸쳐 입은 자유의 옷자락 신동숙의 글밭(165) 진실이 걸쳐 입은 자유의 옷자락 마음이 양팔 벌린 저울질로 춤을 춥니다 나와 너 사이에는 언제나 현실의 강물이 흐르고 머리와 가슴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사실과 환상의 거름망을 촘촘히 거쳐 진실과 거짓이 주섬주섬 각자의 옷을 갖추어 입고 서로 먼저 길 떠날 채비를 하는 귀로의 시간 그리고 언제나 한걸음 먼저 앞세우는 건 진실 쪽이기를 가슴을 뒤덮으려는 실리와 이기의 구름을 헤치고 나아가 진실이 손잡이를 돌려 여는 새로운 문, 참된 길 진실이 걸쳐 입은 그 가볍고 홀가분한 옷섶을 스치는 자유의 바람 냄새 나아가 마음이 가는대로 행해도 법에 걸림이 없다는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참된 유산 2020. 6. 10.
풀잎 오누이 신동숙의 글밭(160) 풀잎 오누이 어린 풀잎 무등을 태워주는 듬직한 오라버니 잎 어린 풀잎 치마폭으로 감싸주는 넉넉한 누이 잎 2020. 6. 8.
사람이 사는 마을이 그리워 신동숙의 글밭(159) 사람이 사는 마을이 그리워 깊은 산 속 울리는 산새소리에 좁은 마음 속으로 푸른 하늘이 열리고 순간 속을 흐르는 개울물소리에 사람의 말소리도 맑게 씻기어 흘러간다 바위에 걸터앉은 산나무에겐 하늘도 뿌리 내리는 땅이 되고 개울물에 잠긴 돌멩이에겐 흐르는 물이 한평생 머무는 집이 된다 사람이 사는 마을은 멀어서 바위처럼 단단한 가슴에도 한 줄기 그리운 산바람이 불어오고 산은 사람이 사는 마을이 그리워 개울물로 낮게 낮게 내려간다 2020. 6. 7.
때론 거친 숨으로, 그리고 언제나 평화로운 숨으로 신동숙의 글밭(158) 때론 거친 숨으로, 그리고 언제나 평화로운 숨으로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나의 숨을 스스로 쉴 수 있다는 것은 바람의 흐름처럼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영역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숨쉬는 일에 타의적으로 침해를 받아 숨이 끊어진 타살로 이어진 일이 최근에 일어났습니다.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와 한국의 9살 남자 아이가 죽어가던 고통은 마음껏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이 끊어져 가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던 말은 "I can't breathe."였습니다. "나는 숨을 쉴 수 없다.", 계모의 학대로 9살 남자 아이의 몸이 갖힌 곳은 나중엔 더 작은 44cm·60cm의 여행 가방이었습니다. 아무도 아이.. 2020. 6. 5.
민들레 홀씨 날아서 신동숙의 글밭(157) 민들레 홀씨 날아서 민들레 홀씨 가벼웁게 날아서 골목길 보도블럭 틈새에 내려앉아 교회 예배당 새벽기도 드리러 가는 어스름 길 환하게 나를 위해 피어나는 고독한 민들레 민들레 홀씨 여유로이 날아서 명상의 집 소나무길 돌틈에 머물러 성당 아침미사 드리러 가는 고요한 길 환하게 너를 위해 피어나는 침묵의 민들레 민들레 홀씨 자유로이 날아서 오솔길 나무그늘 풀숲에 뿌리 내려 석남사 저녁예불 드리러 가는 맑은 길 환하게 우리를 위해 피어나는 사랑의 민들레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을 따라서 자유와 진리의 푸른 바람을 따라서 그 어디서든 민들레 홀씨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늘 우러러 저절로 피어나 환하게 웃음 짓는 평화로운 민들레 한 송이, 평화로운 이 땅의 말씀 2020.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