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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502

등 뒤의 햇살 그대 등 뒤로 내리는 햇살이 따스함으로 머물도록 한 올 한 올 품안에서 머물도록 잠깐 잠깐만이라도 그대 고요하라.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비늘 같은 햇살 햇살은 거리에 널리고 바쁜 걸음에 밟히니 표정 잃은 등마다 낯선 슬픔 제 집처럼 찾아드니 그대 등 뒤로 내리는 햇살이 새근새근 고른 숨결로 머물도록 잠깐 잠깐이라도 그대 침묵하라. - 1989년 2021. 10. 14.
발아 기다려온 씨앗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박민하 성도님 네 심방을 하며 위의 성경을 읽었다. 무거운 짐, 걱정일랑 주께 맡기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말씀 중 ‘멍에’도 그랬고, ‘두 마리 소가 나란히 밭을 간다’는 농사법에 대한 얘기도 그랬다. 함께 모인 교우들이 그 말을 쉽게 이해했다. 박민하 성도님은 ‘두 마리 소’를 ‘겨릿소’로 받으셨다. ‘소나 나귀는 주인을 알아보는데 내 백성은 나를 모른다’(이사야 1:3)는 속회공과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알아보나요?” 여쭸더니 “그럼요, 주인보다 먼저 알아보고 좋아하는데요.” 허석분 할머니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늘 바라 땅 일구며, 씨 뿌리고 거두며 살아가.. 2021. 10. 13.
사막으로 가는 길 그리운 이들 마주하면 그들 마음마다엔 끝 모를 사막 펼쳐 있음을 봅니다. 선인장 가시 자라는 따가움과 별빛 쏟는 어둠, 고향 지키듯 적적한 침묵 홀로 지키는 저마다의 사막이 저마다에게 있습니다. 저마다의 사막으로 가는 길은 무엇인지요? 그리운 이들 마주하면 그걸 묻고 싶습니다. 바람 자는 언덕에 말(言)을 묻곤 사막으로 가는 길, 그걸 묻고 싶습니다. - 1989년 2021. 10. 11.
바치다 쌀이며 담배며 콩이며, 그동안 지은 농작물에 대한 수매가 있었다. 늘 그래왔던 대로 원하던 양도 아니었고 기대했던 가격에도 미치지 못했다. 잠깐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농촌에선 유일하게 만져볼 수 있는 목돈의 기회이기도 하다. 쌀 미(米)자는 원래 八과 八을 합쳐 놓은 글자, 88세를 米壽라 한다. 쌀 한 톨 먹으려면 농부의 손 여든여덟 번이 가야 한다. 농사 중 가장 많이 손 가는 게 잎담배농사라 하니, 담배는 여든여덟 번 손 가는 쌀보다도 더 손이 가는 셈이다. 재처럼 작은 씨를 모판에 심을 때부터, 몇 번이고 같은 빛깔, 같은 상태의 잎을 추리는 조리에 이르기까지 여간한 많은 품이 드는 게 아니다. 이곳에선 수매하는 일을 ‘바친다’고 한다. 잎담배 수매에 응하는 걸 ‘담배 바친다’고 한다. ‘바친다’라.. 2021. 10. 10.
고향 당신의 바라봄 속에 펼쳐지는 세계를 난 사랑합니다. 끝 간 데 없는 당신. 당신 안에 있다 해도 그게 구속 아님은 내 아직 당신의 끝 모르기 때문입니다. 봄소식 언제인가 싶게 얼음 같은 고독 흰 눈 같은 푸근함 아울러 지닌 돌아가야 할 이 있는 곳 그게 고향이라면 당신은 내 고향입니다. - 1989년 2021. 10. 9.
아릿한 기도 “우린 부족한 게 많습니다. 성미도 즉고, 헌금도 즉고, 사람도 즉고, 성도도 즉고, 믿음도 즉습니다. 불쌍히 보시고 채워 주옵소서.” 지 집사님은 늘 그렇게 기도하신다.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저희들을”이라든지 “지금은 처음 시작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라든지 사람마다의 기도엔 습관처럼 반복되는 구절이 있는데, 지집사님의 경우엔 위와 같다. 말과 마음이 하나라면 언제나 집사님은 빈말로써가 아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넉넉한 은혜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 그동안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집사님의 기도를 들을 때마다 순간적으로 지나는 아릿함을 난 아직도 어쩌지 못한다. - 1989년 2021. 10. 8.
집이 많은 서울 늦장가드는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차가 서울로 들어설 때였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며 구경하던 어린 딸 소리가 신기한 듯 소리를 쳤습니다. “어머나. 집이 많이 있다!” 빽빽이 늘어선 아파트와 빌딩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소리의 눈에도 서울은 크기만 했나 봅니다. 하기야 몇 집 옹기종기 모여 있을 뿐 대부분이 논과 밭뿐인 작은 시골에 사는 소리로선 서울이란 별천지였을 겁니다. 어린 딸의 짧은 말이 가슴엔 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 1989년 2021. 10. 7.
전기밥솥 드라이버, 펜치 등 연장을 챙겨가지고 이른 아침 작실로 올랐다. 단강리에서 제일 허름하지 싶을 아랫작실 언덕배기 박종구 씨 집엔 아무도 없었다. 벌써 일터로. 학교로 간 것이었다. 30촉 백열전등, 컴컴한 방에 불을 켰다. 두꺼운 이불이 방 아래쪽으로 그냥이고, 윗목엔 철화로가 있다. 불기가 없는 화로 위엔 커다란 까만색 냄비가 있는데, 그 위론 라면 부스러기가 둥둥 떠 있었다. 익지도 않은 채 불은 라면이었다. 올라올 때 만난 학교 가던 봉철이, 아마 그의 아침이었나 보다. 두꺼비집을 찾아 전원을 내리고 천정을 가로지르는 두개의 전선에서 선을 따 테이프로 감싸고 벽 쪽으로 끌어내려 아래쪽에 콘센트를 달았다. 다시 전원을 올렸다. 콘센트 불이 오는지 확인을 해봐야지 싶어 방안을 살폈다. 부엌, 방, 모두.. 2021. 10. 6.
까마귀 반가운 손님 부른다는 뒷동산 까치의 울음은 언제부턴가 효력을 잃어 빈 울음 되고 빈 들판 느긋한 날갯짓 까마귀 울음만 가슴으로 찾아들어 가뜩이나 흐린 생각 어지럽힌다. 수원 어딘가에서 기계를 돌린다는 부천 어디선가 차를 운전한다는 자식, 자식들. 내 여기 흙이 된다 한들 너덜만은 성해야 하는데. 빈 들판 지나 빈 가슴으로 까오까오 오늘도 까마귀 지난다. - 1989년 2021.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