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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502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정은 한희철의 얘기마을(43)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정은 버스를 타러 신작로로 나가는데 길가 논에서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일을 하고 있었다. 반백이었던 머리가 잠깐 사이 온통 하얗게 셌고, 굽은 허리는 완전히 기역자로 꺾였다. 할아버지는 쇠스랑대로 논에 거름을 헤쳐 깔고 있었다.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는 “올해도 농사하세요?” 하고 여쭸다. 나이도 나이고, 굽은 허리도 그렇고, 이젠 아무리 간단한 농사라도 할아버지껜 벅찬 일이 되었다. 잠시 일손을 멈춘 할아버지가 대답을 했다. “올해까지만 짓고 내년에는 그만 둘 꺼유.” 할아버지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안다. 할아버진 지난해에도 그러께도 같은 대답을 했다. 아마 내년에도 같은 대답을 하실 게다. 올해까지만 짓고 내년엔 그만 두겠다고. 언젠가 취중에 ‘.. 2020. 8. 1.
허울 좋은 사랑 한희철의 얘기마을(40) 허울 좋은 사랑 “선한 목자는 양을 사랑하지.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그 양을 찾는단다.”어린이 예배 시간, 아내가 선한 목자와 양 이야기를 가지고 설교를 했다 한다. 말똥말똥 이야기를 듣던 주환이가 불쑥 묻기를 “그치만 나중에 잡아먹잖아요?” 했단다. 어린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그 이야기를 했고, 뜻밖의 이야기에 낄낄 웃었지만 솔직히 속은 불편했다. 아이들의 단순한 시선에 걸린 분명한 현실 비판. 허울 좋은 사랑의 거짓 명분도 있지. 암, 있고말고! - (1990) 2020. 7. 30.
우리 집에 왜 왔니? 한희철의 얘기마을(39) 우리 집에 왜 왔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뒤로 돌아 게시판에 머리를 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욀 때 모두들 열심히, 그러나 조심스럽게 술래 쪽으로 나아갔다. 느리기도 하고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는 술래의 술수에 그만 중심을 잃어버리고 잡혀 나가기도 한다. 그러기를 열댓 번, 술래 앞까지 무사히 나간 이가 술래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는 동안, 그동안 잡아들인 사람들의 손을 내리쳐 끊으면 모두가 “와!”하며 집으로 도망을 친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꽃을 따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무슨 꽃을 따겠니, 따겠니, 따겠니?” 두 패로 나뉘어 기다랗게 손을 잡곤 파도 밀려갔다 밀려오듯, 춤추듯 어울린다. 따지듯 점점 .. 2020. 7. 29.
자격심사 한희철의 얘기마을(38) 자격심사 -교회 세워진 지 몇 년 됐죠?-3년 됐습니다.-지금 몇 명 모입니까?-20여명 모입니다.-첨엔 몇 명 모였나요?-20여명 모였습니다. 피식 웃었다. 자격 심사, 둘러앉은 심사위원들이 3년 동안 그대로인 수치를 두고 웃었다.나도 웃으며 그랬다. -작년 한 해 동안 세 분이 이사 가고, 세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모두들 다시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며.그러면서-됐습니다. 나가세요.그렇게 자격심사가 끝났다. - (1990) 2020. 7. 28.
평화 한희철의 얘기마을(38) 평화 동네 남자들이 은경이네를 위해 한나절 나무를 같이 했습니다. 한 짐씩 경운기에 실어 날랐습니다. 반장님이 아침부터 방송으로 알리더니 어느 새 한데 모여 나무를 한 것입니다. 은경이 아버지는 지난 가을 팔을 다쳤습니다. 어둔 길 탈곡을 마치고 경운기를 타고 돌아오다가 둔덕을 지날 때 기우뚱 중심을 잃으며 기울어졌는데, 그 순간 미끄러져 내리는 탈곡기를 막다가 팔을 다쳤던 것입니다. 덕분에 은경이네는 얼마 남지 않았던 나무가 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늘 이웃들이 마실 많이 오던 집이 썰렁한 냉방인지라 여느 해처럼 사람들이 모이질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은경이네를 위해 나무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 나서니 마당엔 이내 나무로 가득했습니다. 이웃의 정이 고마운 은경이.. 2020. 7. 27.
마음 젖는 기도 한희철의 얘기마을(37) 마음 젖는 기도 “삼시 세끼 밥만 먹으면 인간인 줄 아는 저희들에게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가르쳐 주옵소서.” 김영옥 집사님의 기도에 울컥 마음이 젖다. - (1990) 2020. 7. 26.
백두산에 오르는 꿈 한희철의 얘기마을(36) 백두산에 오르는 꿈 친구와 함께 백두산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이었지만 가슴은 얼마나 뛰고 흥분되던지.오르다 말고 잠에서 깨어서도(아쉬워라!) 설레는 가슴은 한동안 계속되었다.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 기똥찬 꿈 꿨으니 꿈을 사라 했다. 거 참 신나는 일이라고 친구도 덩달아 좋아한다.언제쯤일까.먼 길 빙 돌아서가 아니라 내 나라 내 땅을 지나 백두 천지에 이를 날은.설레는 오늘 꿈이, 꿈만으로도 설레고 고마운 오늘 꿈이 정말로 가능한 그 날은. - (1989) 2020. 7. 25.
비수 하나씩은 품고 삽시다 한희철의 얘기마을(35) 비수 하나씩은 품고 삽시다 그래요, 비수 하나씩은 품고 삽시다.시퍼런 날을 남몰래 갈고 갈며뚝 뚝 눈물 떨궈 갈고 갈며가슴속 깊이 비수 하나씩은 품고 삽시다. 여린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단 한 번 쓰러짐을 위해든든한 물러섬을 위해. (1990) 2020. 7. 24.
사랑합니다, 당신의 마른 생 한희철의 얘기마을(34) 사랑합니다, 당신의 마른 생 그렇게 즐거운 모습을 전에 본 적이 없다. 대절한 관광버스 안, 좁은 의자 사이에 서서 정말 신나게들 춤을 추었다. 이음천 속장님의 셋째 아들 결혼식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빠른 템포의 노래로 가득했고, 노래에 맞춘 춤의 열기로 가득했다. 오늘은 이해해 달라고 몇몇 교우들이 맨 앞자리에 앉은 날 찾아와 미안한 듯 말했지만 이해할 게 어디 있는가, 같이 춤추지 못하는 자신이 아쉬울 뿐이지. 춤과 술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만큼 난 삶과 멀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라면 그들과 어울려 좁은 틈을 헤집고서 멋진 춤을 췄을 텐데! 종설이 아버지와 섬뜰 반장님의 멋진 춤! 엉덩이를 뒤로 빼고 한쪽 다리를 흔들어대는 준이 아.. 2020.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