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김기석 목사님(이하 ‘김 목사’)의 설교문 다섯 편을 읽었다. 감회가 새롭다. 17년 전 <기독교사상> 2006년 9월호에 게재한 졸고 “신앙과 문학이 만나는 자리”는 김 목사 설교 전반에 대한 해설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김 목사의 설교에서 전달되는 느낌이 전혀 색바래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 그 졸고에서 몇 대목을 여기 발췌하겠다.
“평자는 김 목사가 2005년 1년 동안 청파교회의 공동예배에서 행한 설교 50편을 정독했다. 그리고 2006년의 설교는 부분적으로 ‘설교 듣기’를 통해서 청취했다. 그의 설교 전문과 듣기는 모두 홈페이지에 올라있다. 그가 <기독교사상>에 2년 반 동안 연재한 “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는 평자가 애독하던 꼭지였다. 전체적인 느낌을 말한다면, 김 목사의 설교 한 편 한 편은 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신앙 에세이였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문학이 그의 설교 무대에 함께 올라 신명나게 한바탕 춤추며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외딴 방》의 작가 신경숙은 사춘기 시절 구로공단에서 공순이로 살아가면서도 짬짬이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대학노트에 축자적으로 받아 적으면서 소설쓰기를 공부했는데, 신학생들과 젊은 목사들도 김 목사의 설교를 반복해서 듣고 읽으면서 신앙과 삶과 설교를 공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영혼구원, 한국의 복음화, 세계선교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는 설교자들과 달리 김 목사는 일상에 목회와 설교의 중심을 두고 있다. 그에게서 일상과 유리된 신앙은 기대할 수는 없다. 흡사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이 한뜸한뜸 바느질을 하듯이 그는 일상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수놓는 사람이다.”
“모르긴 해도 김 목사는 수시로 가슴앓이를 할 것 같다. 일상에 가득 한 하나님의 은총에 가슴이 뛰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 삶과 세계를 파괴하는 괴물 앞에서 가슴이 저릴 것이다. 두 세계를 동시에 볼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진 숙명이 바로 그것이다. 괴물이 보이지 않으면 자신의 구원에 도취되어 흥겨운 노래만 부르면 되고, 은총이 보이지 않으면 머리끈 동여매고 괴물과 투쟁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두 눈 부릅뜬 채 직시하고 있는 김 목사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다 울다’ 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내면세계 에서 일어나는 이런 혼란을 눈치채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그런 아픔을 혼자의 가슴앓이로 숨겨둔 채, 오히려 의연한 태도로 이런 모순된 현실과 맞서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용맹정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낮은 자를 향한 극진한 관심과 배려이다.”
“삶의 신비를 알알이 풀어내며, 소외된 이웃과의 강력한 연대를 추구하는 설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흉내를 낼 수는 있지만 김 목사처럼 진정성과 설득력을 담아내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의 전문적인 글쓰기가 설교의 깊은 맛을 더해주고 있으니, 평자가 무슨 말을 여기서 더 보탤 수 있으랴.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가끔 생각을 한다. 저분은 왜 시인이 아니고, 문학평론가일까. 한올 거추장스러운 검불 없이 하나님 앞에서 서고자 애쓰는 참 시인인데…. 목사님, 하고 부를 때마다 하나님 앞에 알몸으로 선 그를 느끼는 청파교회 신자로서 나는 늘 행복하다.’(홈페이지)라는 소설가 이명행의 고백에 평자도 이심전심으로 동의한다. 그의 설교를 듣고 읽는 동안 내 영혼이 부쩍 맑아지고 훌쩍 자란 느낌이다. 하나님, 세상, 인간, 문학, 예술, 사랑에 대해서 한 수 가르침을 받을만한 분과 동시대에 설교자와 글쟁이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평자는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대화형 인공지능으로 알려진 챗-지피티(Chat-GPT)가 앞으로는 설교까지 맞춤형으로 제공할지 모른다. 설교자에게는 위기다. 설교자가 챗-지피티보다 훨씬 수준 떨어지는 설교에 만족하는 바보가 되든지, 챗-지피티가 제공하는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가 되든지, 완전히 창조적인 설교자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창조와 진리와 부활의 영인 성령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기에 이런 현대 기술의 발전 앞에서 주눅들 필요는 없다. 영혼의 깊이에서 말씀을 읽고 해석할 수만 있다면 대화형 인공지능이 따라올 수 없는 생명 충만한 설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김 목사의 설교를 다시 읽으면서 생명 충만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말씀 등불 밝히고》 중에서
정용섭/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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