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6)


‘화’와 ‘소’



끝을 안다는 것은 위로가 된다. 얼마만큼을 견디면 주어진 시간이 끝날 지를 짐작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말로 힘든 것은 끝을 모르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보다는 때를 짐작할 수가 없다는 것, 우리를 지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은 오히려 그런 것들이다.


2995m가 아무리 길어도 끝이 있는 거지, 돌산령터널 앞에서도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터널은 만만치 않았다. 길어도 정말 길었다. 심호흡을 길게 한다 생각하면 빠져나가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가도 가도 제자리다 싶었다. 중간에 만들어놓은 차량 대피소를 몇 차례나 지나야 했다. 터널 끝 출구로 보이는 하얀 점은 커지지도 않았고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아, 내가 걸어가는 만큼 뒤로 물러서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길을 걸으니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하늘도 그랬고 나무도 그랬다.



해산을 떠나 돌산령터널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지쳤던지라 그야말로 터널 속을 터덜터덜 가고 있는데,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 내 눈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뭔가가 눈에 띄었다. 눈여겨보니 ‘화’라는 글자였다.


이게 뭐지 싶었다. 왜 이 글자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일까, 이런 것이 소위 화두(話頭)라는 것, ‘화’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뜻일까 싶었다.  


걸어오면서 드리고 있던, 태어나서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을 위해 드리던 기도를 잠시 멈추고 우연처럼 만난 글자 ‘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을 이끄시는 그 분의 인도하심일 수도 있을 터이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음속의 ‘화’였다. 내 마음속에도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분노(anger)들이 있다. 모두 거룩한 분노는 아니다. 잡다한, 어리석은 분노도 있다. 내 맘에 ‘안 드는’ 것은, 내 속이 ‘좁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주님이 말씀하신 ‘멸망의 자식’(요17:12)이 떠오르니,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和’도 떠올랐다. 하나 됨에 대해 생각했다. 같은 말을 하면서도 왜 하나가 되지 못하는 걸까, 큰 숙제처럼 다가온다. ‘和‘는 벼 화’(禾)에 ‘입 구’(口)가 합해진 글자, 곡식을 함께 경작하여 함께 먹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일까? 함께 심고, 함께 가꾸고, 함께 먹는다면 화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 중의 무엇 하나가 빠지든지, 누군가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니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겠지…. 


‘花’도 떠올랐다. 꽃처럼 산다는 것은 자신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 머잖아 진다는 것을 알기에 피어있는 순간을 절정으로 삼는 것. 남에게 보일 때가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이 될 때가 아름답다는 것. 망초가 장미 흉내를 낼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모습으로 설 때가 자연스럽다는 것….


나도 있어요, 끼어들 듯 ‘貨’도 떠올랐다. 재물에 대한 생각은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는 테르스 테겐의 시로 대신했다. 


“나그네처럼 살아야 한다/ 탁 터져서 장비 없이 빈손으로/ 많이 모은 소유는 우리 동작에 발꿈치에 무거울 뿐/ 원하거든 쓰러지도록 소유하라/ 우린 버리고 가리라/ 적은 것을 사랑하며/ 부득이한 것만을 한 손에 움켜쥐고.”


그래,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살자!

 

 

 

무시무시한 구호가 적혀 있을 것 같은 군부대 담장에도

얼마든지 따뜻한 글과 그림이 담겨 있었다.

 


‘화’에 대해 생각하며 걸은 걸음이 제법이다 싶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빛의 출구는 저 멀리 아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또 하나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가 내가 걸어갈 길을 알고 미리 앞서가면서 뭔가를 준비해 놓은 것 같았다. 하나의 숙제를 마쳤더니 또 하나의 숙제가 주어지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소’였다. 문득 짐작이 되는 것이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짐짓 물리고 다시 ‘소’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래 전 단강에서 썼던 ‘소’가 떠올랐다. 


“소는 착해요/ 불쌍하게 착해요/ 질긴 침 질질 흘려/ 논밭을 갈고/ 싫단 말 한번 없이 험한 밭 갈고/ 쉬는 시간/ 여물을 꺼내 씹고/ 혓바닥 아프게 핥아준 귀여운 새끼/ 겅중 송아지/ 어디 멀리 팔아도/ 이틀 울음뿐/ 나머진 속울음/ 그러다가 마지막 죽어 고기로 남는// 소의 두 눈엔/ 엄마가 보여요/ 껌벅이는 두 눈 속엔 엄마가 있어요” 


소의 걸음, 소의 눈매, 우직하고 미련한 소 같은 삶을 생각했다.


‘자연스레 ‘小’와 ‘少’가 떠올랐다. 작음과 적음, 작아짐과 낮아짐과 떠밀림과 잊힘을 견디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단단해져야 하는 걸까를 생각했다.


‘笑’가 떠오르는 순간, 딸 소리가 떠올랐다. 첫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이름을 ‘笑里’라 지었다. 너 사는 마을에 너로 하여 웃음 넘치기를, 그런 축복의 마음을 담았다.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시집갈 때까지 끼고 살아야지 했던 것과는 달리 소리는 지금 독일에서 지내고 있다. 독일에서 목회를 마치고 귀국을 할 때 소리가 고3, 한창 부모의 배려와 격려가 필요할 때에 동생 둘을 맡기고 귀국을 했으니 아비로서는 참 모진 선택을 한 셈이다. 두고두고 미안한 일, 아이들 보고 싶은 마음이 와락 밀려들었다.

 

 

 

혼자 길을 걷다 보면 뭔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일들을 만나고는 했다.

 


 

터널 속에서 만난 ‘화’와 ‘소’라는 글자. 짐작이 되는 것이 있었지만 끝내 ‘기’나 ‘전’이라는 글자를 만나지 못한 것을 보면 내 짐작이 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화와 ’소‘이기에 길을 걸으며 그것을 생각하라는 그 분의 뜻일 수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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