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필시 그럴 것이다. 불볕더위 아래 한 마리 벌레 같을 것이다. 지렁이나 굼벵이나 송충이가 길 위를 기어가는 것 같을 것이다. 한 마리 벌레 같은 모습으로, 한 마리 벌레 같은 심정으로 길을 걷기로 한다.


허리가 잘린 내 나라 강토, 그 아픔의 땅인 DMZ를 따라 걸어야지 했던 것은 오래 전부터 마음에 있던 생각이었다. 한 형제요 자매, 그럼에도 서로를 향해 불신과 증오의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곳, 그 아픔의 땅을 걷고 싶었다.


문득 더는 미룰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두 가지 이유가 마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할 것 같았다. 한두 살 나이를 더 먹으며 건강이 따르지 않으면, 그래서 마음뿐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목회의 길을 걸어오며 목회의 길이란 신뢰와 존중 없이는 걸을 수 없는 것이 길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대단하진 않아도 지금까지 그 길을 걸어왔다 싶다. 함께 지내는 것을 고마워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생각지 못했던 일들, 처음 겪는 일들, 마음에 들어찬 상처와 실망과 좌절은 쉽게 지워지지도 비워지지도 않았다. 무시해야지 하면서도 다시 상처가 도지고는 했다.


교육관 건축과 관련, 처음 보게 되는 민낯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이었다. 창끝처럼 마음을 찔러대는 말들도 적지가 않았다. 나는 피를 철철 흘리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내미는 손을 더는 아무렇지도 않게 잡을 자신이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나를 힘들게 했던 이들은 속 좁은 사람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또 다시 나를 괴롭혔다. 지금의 내 모습이 어릴 적 들판을 쏘다니면 언젠지 모르게 옷에 달라붙곤 하던 도깨비풀 같기도 했고, 언젠가 영상으로 본 산 미치광이라는 동물이 표범의 얼굴과 몸에 박아놓은 가시투성이 같기도 했다. 더 이상 방치하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DMZ를 따라 걸으며 기도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함광복 장로님이 반가워하며 로드맵을 작성해서 보내주었다. DMZ를 손금처럼 잘 아는 분, 우리나라에서 누구보다 그 땅을 많이 밟은 분, 열하루의 일정 속에는 혼자 그 길을 걸으려 하는 나를 위한 배려가 가득했다. 하루 걸어가야 할 거리, 묵어야 할 곳, 갈림길에서 주의해야 할 점, 때로는 맛있는 식당이 덤처럼 적혀 있었다.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하여 파주 임진각까지, 열하루가 걸리는 일정이었다. 로드맵을 전해주며 장로님은 몇 가지 당부를 덧붙였다.


* DMZ는 모든 게 불확실합니다. 오감(五感)을 작동하십시오.

* 내비게이션 개념의 거리표시입니다. 이 여정을 너무 신뢰하지 마십시오.

* 전 코스가 보건지료소를 지나갑니다. 목사님 체력을 너무 신뢰하지 마십시오.

* 길 묻는 걸 주저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간절할지는 몰라도 걸으며 기도하려고 한다. 철조망으로 허리를 두르고 있는 내 나라를 위하여, 이 땅의 교회들과 지금 섬기고 있는 성지교회를 위하여, 교육관 건축을 위하여, 내가 살아오며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내가 걸어갈 목회의 길에 대하여, 걸음걸음에 기도를 담으려 한다.


모두가 낯선 길, 혼자 걸어가야 하는 길, 어쩌면 중간 중간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동서남북 방향을 가늠하지 못해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날이 저무는데 숙소를 정하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길을 걸으며 길을 물으려 한다. 사람의 길, 믿음의 길, 도리의 길을 처음처럼 물으려 한다.


평소 걷는 일에 익숙한 것이 아니어서 이내 체력이 바닥나고, 발바닥엔 물집이 잡히고, 마음이든 몸이든 한계에 부딪치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솟구치겠지만 그 모든 상황을 마주하며 생각을 단순하게 하려고 한다.


한 마리 벌레처럼 기어가는 길, 부디 그분이 불쌍히 여기시기를 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길, 그럴수록 그분이 동행하시기를 원한다.

길에서 만나게 될 모든 한계상황들, 거기에서 그분을 구체적으로 만나기를 기대한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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