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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심히 썩은 것

by 한종호 2015. 12. 18.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7)

 

심히 썩은 것

 

 

만물(萬物)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腐敗)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心腸)을 살피며 폐부(肺腑)를 시험(試驗)하고 각각(各各) 그 행위(行爲)와 그 행실(行實)대로 보응(報應)하나니(예레미야 17:9-10).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를 우리 옛 어른들은 석 달 가뭄 끝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먼지를 적실 때 나는 냄새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보다 좋은 냄새가 어디 있을까 싶다.

 

가뭄이 석 달이나 지속되면 모든 것이 타들어간다. 온갖 곡식들은 벌겋게 죽어갈 것이고, 논바닥은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질 것이다. 일이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 더 타들어가는 것은 농부의 가슴이다. 거둘 것이 없으면 식구들이 먹을 것이 없고 살아갈 방도가 없다. 마른하늘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기도 이상으로 간절할 것이다.

 

예쁜 여학생이 지나가며 바람결에 남긴 비누냄새, 오솔길을 걷다가 만난 코끝을 찌르는 꽃향기, 며칠 굶은 이에게 전해진 밥 냄새, 배고파 우는 아기에게 엄마 젖 냄새, 바다에서 표류하던 이에게 어디선가 실려 온 흙냄새, 세상에 좋은 냄새가 어디 한 둘일까 마는 석 달 가뭄 끝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먼지를 적실 때 나는 냄새에 비길 바는 못 된다 싶다.

 

세상에는 그렇게 기분 좋은 냄새가 있는가 하면 역겨운 냄새도 있다. 마음을 언짢게 하여 코를 틀어막게 하는 나쁜 냄새도 얼마든지 있다.

 

 

 

 

농촌에서 목회를 할 때 마을 어른들과 즐거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쉬엄쉬엄 흙으로 집을 지었다. 설계도도 없이 마을 분들의 오랜 경험을 따라 아궁이도 놓았고, 구들도 깔았다. 마을에서 집을 헐며 버리는 재료를 모아 지은 집이었기에 지을 때부터 허름한 집이었다. 그래도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지경다지기도 했고, 진쇄받기도 했다. 그렇게 집을 다 짓고는 어리석음과 가까워지는 집이란 뜻으로 인우재라 이름을 붙였다.

 

지난해였다. 오랜만에 인우재를 찾아 냉장고 문을 열다말고 깜짝 놀랐다. 악취가 진동을 했던 것이다. 먼저 다녀간 누군가가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둔 모양인데, 아무도 없는 동안 전기 차단기가 내려가 냉장고가 작동을 하지 않아 모두가 썩고 만 것이었다.

 

냉장고 안에서 상한 음식 중에는 고기도 있었다. 고기 썩은 냄새는 유난히 지독해서 뭘로 씻고 닦아내고 쉬 지워지지가 않았다. 썩은 것들을 치우는 동안 속이 다 울렁거려 헛구역질을 여러 번 했다. 세상에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다 있구나 싶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만물(萬物)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腐敗)한 것은 마음이라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새번역>

 

사람의 마음은 천길 물속이라,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공동번역 개정판>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성경>

 

사람의 마음이란 형편없이 시커멓고 기만적이어서, 아무도 풀 수 없는 퍼즐 같다.”

<메시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부패라는 글자의 썩을 부’()이다. 이는 곳집 부’()고기 육’()을 받친 글자이다. 곳간에 오래둔 고기는 결국은 썩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공동번역 개정판>에서는 사람의 마음은 천길 물속이라고 옮겼다. 우리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거니와, 사람의 마음을 두고 천길 물속과 같다고 한다. 한길 속도 모르는데 천길 속이라면,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과 다를 것이 없겠다. 이런 사람의 마음을 두고 <메시지>에서는 아무도 풀 수 없는 퍼즐 같다고 옮겼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거짓되고 심하게 썩은 사람의 마음,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음은 눈에 보이지를 않는다. 보이지를 않다 보니 속을 들여다보려고 하지를 않는다. 얼마나 썩어 있는지를 살피려 하지를 않는다. 간혹 살핀다 해도 무시하고 만다. 다들 모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본문은 다음과 같다.

 

각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심장을 감찰하며, 각 사람의 행실과 행동에 따라 보상하는 이는 바로 나 주다.” <새번역>

 

안에서 썩어 부패한 마음을 나는 모른 척 하고, 다른 사람은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 해도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심장을 꿰뚫어 보고 폐부를 시험하신다. 마음을 꿰뚫어 보고 뱃속까지 환히 들여다보신다. 마음은 물론 마음의 동기까지도 훤히 살피시기에 주님은 누구나 그의 행실을 따라 소행대로 갚아주신다.

 

시치미를 떼고 손바닥으로 가린다고 진동하는 썩은 냄새까지 감출 수 없는 법, 심히 썩은 마음을 주님 앞에서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야 말로 심히 썩은 마음과 다를 것이 없는 마음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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