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크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한 말이다. 옛사람들은 북극성을 가리켜 ‘거기소’(居其所)라 했다. 늘 그 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변함없이 그곳에 있기에 항해자들은 북극성을 보며 자기 위치를 가늠했다. 먼 바다로 나갔다가도 때가 되면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떼, 장거리 비행을 하면서도 가야 할 곳을 잊지 않는 철새들, 꿀이 있는 곳으로 정확히 날아가는 벌들은 어떻게 길을 찾는 것일까? 운전자들은 GPS의 도움으로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길을 잃기 일쑤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왜 왔는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시간의 강물 위를 떠돌고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찾아야 할 뿐 아무도 제시해줄 수 없다.
기도는 간절히 바라는 바를 하나님께 청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마땅히 걸어야 할 삶의 길을 하나님께 여쭙는 일이기도 하다. 하늘에 길을 조회할 때 중력처럼 우리를 아래로 잡아당기는 욕망의 인력이 느슨해진다. 자아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욕망의 문법이 충돌하는 일상 속에서 바장이다보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아득히 깨닫곤 한다. 날마다, 순간마다 하늘에 길을 묻지 않으면 표류할 수밖에 없다. 기도는 우리 삶 전체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권태와 열정, 우리 마음을 뒤흔드는 파괴적 분노까지도 주님께 내보일 때 치유가 시작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가져갈 때 일상은 돌연 하나님의 마음과 만나는 현장이 된다. 굳이 유창한 언어가 아니라도 괜찮다.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언어면 어떤가? 우리가 기도를 바치는 대상은 땅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조차 기도로 들으시는 분이다.
매일 아침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쓴 짧은 기도문을 엮었다. 이것은 기도의 전범이 아니다. 일상과 말씀이 만나는 지점에서 저절로 터져 나온 짧은 신음인 동시에 질문이다. 길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이 작은 책이 누군가에게 기도를 시작할 용기를 북돋을 수 있으면 좋겠다.
김기석/청파교회 원로목사
'<꽃자리> 출간 책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와 저항과 공동체(1) (0) | 2024.12.04 |
---|---|
여성 설교의 현주소와 미래 전망 (0) | 2024.10.31 |
여성 신학자, 설교자들의 육성을 직접 들어본다 (3) | 2024.10.08 |
도무지 믿음의 걸음이 뭔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2) | 2024.09.08 |
김기석 읽기에서 배운 가장 큰 미덕 (6) | 2024.09.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