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와 나태

사진/김승범


“우리가 낙태 되지 않게 지켜 주옵소서.”


안갑순 속장님은 당신 기도 차례가 되면 한 주를 어렵게 보냅니다. 희미해진 기억력, 순간순간 끊어지는 생각들, 갈수록 기도의 책임이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똑똑 드물게 떨어지는 물을 받아 병 하나 채우듯 새벽녘 깨어 그나마 정신이 맑을 때 한 두 줄 기도문을 적고, 그 한 주 분의 기도를 모아 제단에 섭니다.


속장님의 기도 속에 자주 들어가는 내용이 ‘우리를 낙태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낙태는 나태의 잘못된 표기일 것입니다. 쓰기도 그렇게 쓰고, 읽기도 그렇게 읽지만 속장님이 드리는 기도의 뜻은 ‘나태’일 것입니다. 


그런 단어의 혼돈쯤이야 너그러우신 하나님께서 바로 잡아 들으시겠지요. 나태를 낙태로 써서 읽는 속장님의 기도를 들을 때마다 사실 가슴이 찡해옵니다. 낙태, 한 생명이 생명으로 태어나기도 전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지워져버리는 끔찍한 죽음. 우리가 한 생명으로 서기 전 우리를 지우지 말아 달라는, 어쩜 쉬 생각하기 어려운 간절한 바람을 속장님은 자신도 모르게 드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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