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응급실

사진/김승범



주보를 만들고 늦은 밤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잤을까, 전화벨 소리가 울려 놀라 깼다. 부인의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 급히 병원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한 교우의 전화였다. 


확 잠 달아난 눈으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이럴 땐 차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비가 쏟아져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한 새벽. 한치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손으로 숲속 나무를 헤치듯 어둠과 안개 속을 달려야 했다. 


응급실은 그 시간에도 번잡했다. 온갖 환자들의 고통스런 모습과 피곤 가득한 얼굴이면서도 긴박하게 돌아가는 의료진, 수속 밟으랴 간호하랴 분주한 환자의 가족들,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넓은 응급실 병실과 복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었다. 약간의 응급처치가 있은 후 어느 샌가 아주머닌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희미하게 한날의 첫 꺼풀이 벗겨올 무렵, 같이 나갔던 선아 아빠와 먼저 병원을 나섰다. 


병원 문을 나설 때였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쪽 구석 벽에 얼굴을 대고는 흐느껴 우는 이가 있었다. 우리가 응급실에 도착한 얼마 후에 들어온 사람이었는데, 젊은 여인이었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남편을 데리고 급히 달려온 여인은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괴로워하는 남편의 손을 눈물로 감싸 쥔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외상은 별로 없는데도 남편은 의식을 못 찾고 있었다. 곁에 서서 손을 안타깝게 잡을 뿐, 사랑하는 이가 사경을 헤매는데도 아무 것도 도움이 될 수 없는, 인간이란 그렇게 약한 것이었다. 


뇌를 찍었지 싶은 사진을 보여주며 의사가 설명할 때 여인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고, 끝내 회생하지 못한 채 자신의 눈앞에서 마지막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 거짓처럼 숨을 거둔 남편을 두고, 여인은 밖으로 뛰쳐나와 쓰러졌던 것이다. 한순간 들이 닥친 슬픔이 바라보는 내게도 몹시 아프고 아렸다. 


추적추적 찬비 내리는 새벽 응급실 앞에 쓰러져 우는 여인의 울음소리는 비수처럼 가슴을 가르며 들려왔다. 괜찮다면 가만히 안아주고 싶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너무 버거운 슬픔이었다. 더더욱 짙어진 안개와 그칠 줄 모르는 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아 아빠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지만 머릿속엔 온통 조금 전 보았던 슬픔뿐이었다. 비와 안개가 섞여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새벽길, 그게 결국 우리 삶의 여정이었다. 그 길을 걸으며 때로 우리들의 생은 얼마나 대책 없이 어이없는 것인지.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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