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단강의 한해는 산수유로 시작해 산수유로 끝이 납니다. 이른 봄, 단강의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이 산수유입니다. 잎보다도 먼저 노란 꽃으로 피어나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한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가을철, 모든 이파리 떨어지고 나면 빨간 꽃처럼 남는 것이 또한 산수유입니다. 빨갛게 익어 가지마다 가득 매달린 산수유 열매는 열매라기 보다는 또 한 번의 꽃입니다. 콩 타작 마치고. 


마늘 놓고 나면 한해 농사도 끝나고, 그러면 사람들은 산수유 열매를 털어 집안으로 들입니다. 멍석에 널어 말린 산수유는 긴긴 겨울, 마을사람들의 소일거리가 됩니다. 씨를 빼낸 산수유를 잘 말려두면 장사꾼이 들어와 근수를 달아 산수유를 사 갑니다. 해마다 값이 다르긴 하지만 한약재로 쓰이는 산수유는 그런 대로의 값이 있어 단강에선 겨울 내내 유일한 부업거리가 되는 셈입니다. 


허석분 할머니 네도, 김천복 할머니 네도, 윤연섭 할머니 네도 방이며 마루며 광이며 산수유 천지입니다. 시간될 때마다 산수유 씨를 발려내는 그분들의 손끝은 벌써 산수유 붉은 물이 검붉게 들었고, 씨 빼내는 엄지손톱 그 투박한 손톱 끝이 움푹 패여 갑니다. 씨를 빼낸 만큼 손톱이 닳아가는 것입니다. 


세 분 모두가 혼자 살아가는 칠십이 넘은신 할머니들. 씨 빼내는 그 시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잘 마르라고 아랫목에 널어놓은 산수유를 보는 마음이 괜스레 퀭합니다.


단강의 또 한 해가 산수유와 함께 갑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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