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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김기석의 새로봄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by 한종호 2021. 2. 4.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롬 15:13)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별고 없이 다들 잘 지내시는지요? 며칠 동안 제법 날이 추웠습니다. 건물 사이를 휘돌아 나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이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내곤 있지만 그래도 계절은 어김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입춘지절입니다. 24절기상으로는 입춘이 새해의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대문이나 주련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입춘첩立春帖을 써붙여 놓고 한 해 동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빕니다. 미신처럼 보일지 몰라도 각박하고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여러분의 가정마다 기쁜 일이 넘치시기를 빕니다.

이런 풍습은 서양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올해 주현절에도 사람들은 자기 집 현관문에 하얀 분필로 ‘20+C+M+B+21’라고 썼을 겁니다. 앞뒤에 나오는 숫자는 ‘연도’를 나타냅니다. 보통은 약자인 C,M,B가 예수님을 찾아왔던 동방박사의 이름의 첫 글자라고 말합니다. 카스파르(Caspar), 멜키올(Melchior) 발타사(Balthasa)가 그것입니다. 자기 집에 그런 귀한 손님들이 오기를 구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사실 C, M, B는 라틴어 문장인 ‘Christus Mansionem Benedicat’을 축약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여, 이 집을 축복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축원의 말과 동방박사 이야기가 결합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입춘 무렵이면 사람들은 오신채五辛菜를 먹지 않으면 몸에 귀신이 들어온다며 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 등의 자극성 있는 채소를 먹었다고 합니다. 위와 장이 연동작용을 돕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런데 그 오신채가 인의예지신의 다섯 가지 덕목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하는 일은 동서를 막론하고 대개 비슷합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무교병과 더불어 쓴나물을 먹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라는 역사적 기억과 농경문화권의 봄맞이 의식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것입니다. 감염병으로 인해 모든 집합 활동이 제한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속에 잠들어 있던 신명을 깨워야 할 때입니다. 우울과 어둠을 떨쳐버리고 다시금 삶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아직 진짜 봄이 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엊그제 효창공원을 걷다가 산수유 노란 꽃망울이 터진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계절의 봄도 봄이려니와 우리는 역사의 봄 또한 기다립니다. 이 맘 때가 되면 늘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이성부 시인의 ‘봄’입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봄’ 부분)

절창입니다. 봄은 꼭 산뜻한 바람과 함께 오는 것은 아닙니다. 봄은 ‘뻘밭 구석’이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느라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에 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봄조차 해찰하는 버릇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봄은 기어코 옵니다. 기다림에 지쳤던 사람들은 봄과 만나는 순간 두 팔을 벌려 껴안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시인은 봄을 의인화하여 말합니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역사의 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진창 같은 세상과 맞서 싸운 사람들을 통해 온다는 것입니다. 이 시를 암송하며 가슴 설렜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세상에는 정말 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슴의 얼음을 녹여주는 사람들 말입니다. 지난 주 중에 택배 하나를 받았습니다. 일 년에 한 두어 차례 거창에 있는 목사님 댁에서 보내오는 그 택배를 제가 반기는 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물품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노란 종이에 인쇄된 사모님의 편지 때문입니다. 택배 상자 안에는 수십 개의 종이봉투 안에 갖가지 곡물과 가공품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시래기, 들깨, 계피, 생들기름, 토란대, 현미차, 현미찹쌀, 쌀 뻥튀기 과자, 떡국 떡, 먹는 가래떡, 수수, 곶감, 호두, 토종 재팥, 토종 흰팥, 토종 붉은팥, 토종 콩나물 콩, 메주콩, 서리태, 쥐눈이콩, 강남콩, 토종쌀, 손바느질로 만든 컵 받침. 사모님은 각각의 물품을 어떻게 재배하고 수확했는지, 그 종자들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조리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내곤 합니다. 그 작물들을 심고 가꾸는 과정에서 경험한 자연과의 교감 이야기는 덤입니다. 종이봉투 겉면에 작물 이름을 적을까 했지만, 보물찾기하듯 열어보시라고 일부러 적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읽고는 빙그레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모님의 선선하고 따뜻하고 푸근한 마음과 표정이 읽혔기 때문입니다.

이 얄궂고 험난하고 난폭한 세상을 염려하며 비분강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세상의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있습니다. 가끔은 과도한 열정 때문에 다른 이들을 비난하고 혐오하고 냉소하기도 합니다. 그분들도 다 소중한 이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잠들어 있는 선의 열정을 조용히 깨우는 이들은 스스로 봄이 된 사람들입니다. 마음 씀이 따뜻한 사람, 누구를 만나든 정성스럽게 대하는 사람들과 자꾸 만나다보면 그들의 선함이 우리 속에 스며들지 않을까요? 이런 사람들과 자꾸 만나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에 골똘하다보니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와 만나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가슴에 나는 어떤 흔적을 남겼나?’ 이 질문 앞에 설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는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라고 말했습니다. 꽃들은 다가오는 이들에게 강제로 자기 향을 맡게 하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이들이 자기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자기를 개방할 뿐입니다. 다가오는 이를 밀어내지 않고, 멀어지는 이를 붙잡지 않습니다. 이런 홀가분함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요? 집착하는 순간 향기는 썩은 냄새로 바뀌기 쉽습니다.

주중에 철학자 김진영 선생의 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 진중한 철학 강의도 있었고, 묵직한 에세이도 있었고, 짧은 단상도 있었습니다. 그는 몇 해 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며 그는 문장을 통해 생의 의미를 묻고 또 물었습니다. 절제된 언어의 행간에 깃든 절실함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습니다. 암과 사투를 벌이며 적었던 글 가운데 두 대목을 함께 읽고 싶습니다.

“바울은 옥중 편지에 썼다. ‘내 마음을 고백하자면 저는 죽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 소망을 뒤로 미룹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언젠가 강의에서 말했었다. 나를 위해 쓰려고 하면 나 자신은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그러나 남을 위해 쓰려고 할 때 나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된다고.”(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한겨레출판, p.40)

김진영 선생이 자유스럽게 인용하고 있는 대목은 빌립보서 1장 20절 이하입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자기의 바람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지만, 성도들을 더 깊은 믿음의 자리로 인도하는 것을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누군가의 삶에 응답할 때 인간다워집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다른 이들을 위한 선물이 되고 싶어한 철학자의 마음과 바울의 마음이 오롯이 일치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의지가 굳어도 질병의 고통은 떨쳐버리기 어렵습니다. 김진영 선생은 흔들리는 자기 마음을 살핍니다.

“지금 나의 삶이 위기에 처한 건 의사가 말하듯 소화기관 하나가 큰 병에 걸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내 몸속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장기, 즐거움의 장기, 생의 기쁨만을 알고 있는 철없는 나의 장기가 그만 병들었기 때문이다. 이 병에는 근거도 없다. 소화기관은 병들어 사라져도 기쁨의 장기는 생의 마지막까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김진영, 앞의 책, p.73)

그는 기쁨의 장기가 병든 것이 아닌지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기쁨의 장기가 건강하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기쁨의 장기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을 초월하는 하나님에게 접속되어야 합니다. 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깃들기를 빕니다. 서 있는 자리가 어디든 그곳에서 봄을 선구하는 이들이 되십시오. ‘그대, 겨울을 이기고 돌아온 이들이여’, 여전히 겨울 한기에 갇혀 있는 누군가에게 봄소식이 되어 다가서십시오. 주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우리도 일을 해야 합니다. 샬롬!

2021년 2월 4일
김기석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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