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대로 따스하게 맞는 시간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 하고 싶은 것을 행하라(Ama! et quod vis fac)! 입을 다물려거든 사랑으로 침묵하라. 말을 하려거든 사랑으로 말하라. 남을 바로잡아 주려거든 사랑으로 바로잡아 주라. 용서하려거든 사랑으로 용서하라. 그대 마음 저 깊숙한 곳에 사랑의 뿌리가 드리우게 하라. 이 뿌리에서는 선 외에 무엇이 나올 수 없거니….”(아우구스티누스, 요한 서간 주해 7.8)

주님의 은총이 교우 여러분의 가정마다 넘치시기를 빕니다.

설 연휴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 권고 때문에 조금은 쓸쓸하게 보낼 수밖에 없는 명절입니다. 저도 그냥 집에만 머물고 있을 예정입니다. 어느 댁은 떨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줌(zoom)으로 새해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세배하는 영상을 찍어서 제게 보내준 분들도 계시네요. 덕담을 건넬 수도 없고, 세뱃돈을 줄 수도 없으니 그저 ‘허허’ 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설’이라는 단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낯설다’라는 말에서 온 것이라는 견해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간은 사실 ‘낯선‘ 시간이지요. 낯섦 앞에 설 때 우리는 머뭇거리게 마련입니다. 머뭇거림 혹은 삼가는 것이 새로움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설을 신일(愼日)이라고도 하지요? 새로울 신(新)이 아니라 삼갈 신(愼) 자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허겁지겁 살다가 잠시 멈춰서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라니 얼마나 좋습니까?

연휴의 첫날인데도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집에 앉아 있자니, 어린 시절의 설날 풍경이 떠오릅니다. 지게에 쌀 부대와 함지를 짊어진 아버지의 뒤를 따라 방앗간에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신명났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얀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는 상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어른들이 윗목에 가래떡을 가지런히 펼쳐 놓으면 굳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안달을 했습니다. 부엌에서는 어머니와 누나들이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두부를 만들 때도 있었고, 엿을 고느라 밤새 불을 때기도 했습니다. 찹쌀가루로 반죽을 하고 말린 후 꿀이나 조청을 발라 기름에 튀겨낸 강정에 눈독을 들이다가 부지깽이로 맞기도 했습니다. 늦은 시간 설핏 잠이 들었다가 방구들이 너무 뜨거워 깨보면 아버지는 가래떡 써는 작두로 떡을 썰고 계셨습니다. 지금도 명절이면 음식을 정성스럽게 차리는 집도 있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예전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작고한 김남주 시인은 ‘설날 아침에’라는 시에서 텅 비어 가는 농촌 마을의 스산한 설날 풍경을 조금은 쓸쓸하게 노래했습니다. 싸락눈이 밤새 내린 설날 아침 풍경을 시인은 아주 적막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무심코 내리는 싸락눈은 ‘뿌리 뽑혀 이제는 바짝 마른 댓잎’에도 내리고, ‘허물어진 장독대 금이 가고 이빨 빠진 옹기그릇’에도 내리고, ‘소 잃고 주저앉은 외양간’에도 내립니다. 다 떠나고 아무도 없는 그곳에도 설이라고 까치가 날아와 지저귑니다. 시인은 까치에게라도 말을 걸어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나 봅니다.

“까치야 까치야 뭣하러 왔냐
때때옷도 없고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
이제 우리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
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

 


그런데 김종길 시인은 똑같은 제목의 ‘설날 아침에’라는 시에서 사뭇 다른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시인은 무심히 오고 가는 세월이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보낼 일’이라고 말합니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시인은 아침에 한 잔 술과 따뜻한 국을 대했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고 생각하자고 말합니다. 세상이 험하고 각박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곳임을 잊지 말자고 신신당부합니다. 어려운 시절을 지나다 보니 시인의 이런 당부가 어르신의 다독거림 같아 마음이 말랑해집니다.

살다 보면 속상한 일이 참 많지요? 로빈손 크루소가 아닌 바에야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많은 이들을 만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도 사실은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질 때가 많습니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는 일이 우리 삶 전체를 뒤흔들곤 합니다. 그만큼 우리 감정의 토대가 부실하다는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 가끔 희떠운 태도로 자기 감정을 숨길 때가 있습니다. 누가 건드리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애써 안으로 갈무리하고 있는 감정들 말입니다. 부끄러움일 수도 있고, 상처의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관심이랍시고 우리들의 감정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우리를 휘어잡기도 합니다. 누구를 대하든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악의 없는 관심이라 해도 다른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베드로의 가르침이 적실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성을 더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신도간의 우애를 더하고, 신도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벧후 1:5-7)

앞에서 인용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훈도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입을 다물든, 말을 하든, 남을 바로잡아 주려 하든, 용서하려 하든 그 모든 일을 사랑의 바탕 위에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떠올려야 할 가르침입니다. 이번 명절이 가족이나 친지들 사이에 이런 사랑을 연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편지를 쓰고 있는 2월 10일은 스콜라스티카 축일입니다. 낯선 이름이지요? 스콜라스티카는 서방 수도원 운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베네딕도(480-543) 성인의 쌍둥이 누이동생입니다. 어릴 때부터 경건한 삶을 살았던 스콜라스티카는 오빠가 이탈리아의 중앙에 있는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에 수도원을 설립하자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피우마롤라(Piumarola) 수도원을 설립하여 수녀들을 지도했다고 합니다. 그레고리오 대종이 쓴 <베네딕도 전기>에는 성인을 통해 나타난 많은 기적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스콜라스티카와 관련된 기적도 하나 소개되고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동생은 오빠를 만나러 갔습니다. 베네딕도는 제자들을 대동하고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 동생과 한 나절을 보냈습니다. 함께 하나님을 찬미하고 성스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식탁에 앉아 거룩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도에게 청합니다. “오빠께 부탁드립니다. 이 밤에 저에게서 떠나가지 마시고 아침까지 천상 삶의 기쁨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눕시다“. 스콜라스티카는 진리의 향연이 펼쳐지던 그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베네딕도는 수도원 밖에서 밤을 지샐 순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제정한 수도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마침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이었습니다. 낙심한 스콜라스티카는 식탁에 머리를 수그린 채 전능하신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잠시 후 갑자기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그 세찬 비 때문에 아무도 문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콜라스티카의 청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베네딕도와 제자들은 할 수 없이 그곳에 머물며 온 밤을 지새우며 영적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그레고리오 대종, <베네딕도 전기>, 이형우 역주, 분도출판사, p.219-221). 그레고리오 대종은 더 많이 사랑한 동생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규칙을 깨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설 명절 기간 누구를 만나든 베네딕도와 스콜라스티카의 만남이 그러했듯 기쁨과 감사의 시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모든 가정마다 넘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21년 2월 11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 추신: 먼저 이 편지를 읽어본 아내는 스콜라스티카 이야기가 집합금지 권고를 어겨도 된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여지면 어떡하냐며 웃네요. 그럴 일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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