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앙다방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1)

 

국제중앙다방

 

이 다방 이름 정말 좋지요?”

.”

여자는 수줍게 손으로 입을 가리며, 대답한다. 학송은 그녀의 웃는 모습이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다. 오늘로 겨우 세 번째 만나는 이 여성에게 벌써 프로포즈를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사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아직은 서투르기만 하다.

 

두 사람이 맞장구치듯이 좋다고 한 다방 이름은 국제중앙다방이다. 이 대목은 이제 갓 40대인 박동훈 감독이 2010년에 만들었던, <계몽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박 감독의 2005년 작품인 <전쟁영화>라는 제목의 20분짜리 독립영화 확대판으로, 일제부터 3대에 걸친 가족사와 우리 역사가 서로 만나는 이야기다.

 

영화 속의 이 장면이 담고 있는 시기는 1960년대 초반에서 중반이었는데, 당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선호도를 지닌 상호는 국제중앙이었다. “국제중앙다방은 이 두 개를 하나에 담아 쓰고 있는 셈이었다. 그 다음 순위가 제일이었다는데, 사실 이 세 단어들은 모두 당시 한국사회의 갈망과 그 정신사를 지배하다 시피 한 목표이기도 했다. “제일만 쳐도, 제일모직, 제일교회, 제일무역, 제일학원.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해방이 된 조선은 드디어 국제적인 위치를 갖게 되었다. 더는 식민지가 아니었다. 이 시절 국제신사라는 말은 근대의 첨단에 서 있는 인물을 가리키는 단어였으며, 우물 안의 개구리를 벗어난 차원의 삶을 연상시켰다. 중화(中華)가 세계의 전부였던 시대를 지나, 일본제국주의 체제 아래 사는 것이 영원한 질서처럼 여겨졌던 때도 과거가 되었는데 미국이 중심인 세계질서 속에서 국제라는 단어는 선진(先進)”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국제시장, 국제극장, 국제상사.

 

영화의 다방 장면에서 학송은 커피에 설탕과 프림을 미리 넣지 말라고 주문한다. 8군 카츄사로 군대생활을 했던 그는 커피 타는 것도 이미 국제적이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다방커피가 아니라, 과테말라니 예가체프니 하는 식으로 원두커피의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여자 앞에서 커피 전문가처럼 광을 내는 수준이다.

 

한편 나라가 식민지였던 시절, 조선은 변방이었다. 지금은 변방에서 중앙으로 이동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그러니 모두가 중앙을 향해 돌진해야 하는 판이다. 학송은 결혼한 뒤 태어난 딸이 소풍을 갔다가 찍은 사진에서 가장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불호령을 내린다. “, 다음부턴 꼭 가운데 서서 찍어야 한다.” 그렇게 중앙에 대한 열망은 뜨거웠다. 중앙시장, 중앙교회, 중앙일보, 중앙극장, 중앙대학.

 

(출처: 계몽영화 공식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enlightenmentfilm)

 

 

국제중앙다방은 바로 이런 당대의 현실과 의지가 압축된 이름이라고 하겠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상호다. 이걸 오늘의 현실에서 영어로 번역해본다면, 국제니까 인터내셔널(international), 중앙은 센터(center), 다방은 커피 숍(coffee shop)정도로 하면 될까? 아니다. 이것도 이젠 낡아 후지다는 인상을 준다. “글로벌 허브 카페(Global Hub Cafe)” 쯤으로는 해야 이른바 먹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줄기차게 세상의 중심을 향해 온 사회가 에너지를 쏟았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알고 보니 국제화는 미국화였고,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로 동일시되면서 우리 안에는 중앙, 또는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이 구조적으로 대량생산되어왔다. 이들은 우리 내부의 식민지이기도 하고 변방이기도 하며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로 전락했다. 이들에 대한 차별과 능멸은 하나의 사회적 구조가 되었고, 권력은 자신을 중앙에 배치하고 나머지는 모조리 주변으로 몰아냈다.

 

비정규직의 생존기반을 끊임없이 흔들고, 노동자들에 대한 쉬운 해고와 노인들에 대한 복지축소를 제도화하고 있는 정책이라는 괴물은 우리가 살고 있는 국제중앙다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만의 다른 이름이다. 분단과 냉전의 굴레는 더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 다방이 글로벌 허브 카페로 바뀐다 한들 상황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2014년은 비통함과 분노로 압축된다. 새해는 이 참담했던 세월을 극복하는 숙제를 안고 시작했다. 절망에 저항하고, 정의를 강처럼 흐르게 하는 세상을 만드는 기원과 의지가 곳곳에서 불타올라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고, 진정 존중받아야할 존재들의 삶을 지켜내는 우리로 변모해나갈 때 세상은 살만해지는 곳이 될 것이다.

 

이젠 다방이라는 이름도 없어진 시절이다. “국제중앙다방자리에 뭐가 들어서면 가장 좋을까?

이 다방 이름 정말 좋지요?”

.”

천대받고 짓밟혔던 이들이 기쁘게 .”할 수 있는 이름, 어디 없는지, 우리 모두가 감독이자 배우인 <계몽영화 2>를 올 한해 기대해본다.

 

김민웅/성공회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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