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서울>, 그 부푼 꿈을 안고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

 

<럭키 서울>, 그 부푼 꿈을 안고

 

 

퀴즈 하나.

다음의 가사는 어느 노래에 나오는 것일까?

 

타이프 소리로 해가 저무는

빌딩가에서도 웃음이 솟네.

 

오늘날 우리가 키보드라고 부르는 자판의 원조는 타이프 라이터였다. 일제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해방이 되자, 미군정의 영향 아래 영어 타이피스트 수요가 늘면서 곳곳에서 타자학원이 생겨난다. 타이피스트는 당대 최첨단 직종이었다. 1948년, 현인이 부른 <럭키 서울>은 “서울의 거리는 태양의 거리. 태양의 거리에는 희망이 솟네”라고 시작한다. 그 다음 이어지는 구절이 바로 퀴즈의 대목이었다. 일제 식민지와는 결별하고 미제(美製)인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 근대화”에 대한 기대가 가득 담긴 노래였다. 그래서 제목도 “럭키(lucky) 서울”이라 했고, 가사의 마지막은 서울을 영어로 표기한 에스(S) 이(E) 오(O) 유(U) 엘(L)로 마친다. 2절 가사는 “서울의 거리가 청춘의 거리”라며, “청춘의 거리에는 건설이 있다”고 내세운다. 그 건설의 방향은 결국 미국을 따라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울에는 이와 또 다른 면모가 존재하기도 했다. <럭키 서울>을 부른 현인이 1950년에 선보였던 <서울 야곡>은 서울을 애타는 사랑과 시적 낭만의 도시로 그려낸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그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이슬처럼 꺼진 꿈속에는

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

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 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

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이 거리에 버린 담배는

내 맘같이 그대 맘같이

꺼지지 않더라

네온도 꺼져가는 명동의 밤거리엔

어느 님이 버리셨나

흩어진 꽃다발

레인코트 깃 쓸어 올리며

오늘 밤도 울어야 하나

내가 본 듯 맘이 아픈

서울 엘레지

 

충무로, 보신각, 명동이라는 한자로 된 거리이름에 쇼윈도 그라스, 마로니에, 네온, 레인코트, 엘레지라는 영어 단어가 하나로 묶여 펼쳐진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감수성은 이렇게 <럭키 서울>에 등장하는 “타이프”와 “빌딩”을 거쳐, 풍경과 내면을 그려내는 외래어를 통해 조형되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서울이 60년대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엄청나게 넘치기 시작했다. 인구가 촌에서 서울로 유입되는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서울은 야망과 미래가 약속된 곳이었고, 촌놈과 서울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생겨나는 현장이었다. 일단 서울이라는 도시에 발을 들여놓으면, 촌에서 맺었던 인연은 깨끗이 잊어야 할 과거지사가 되어야 했다. 아니면 계속 촌놈 취급을 받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갔다.

 

서울역사박물관 전차 (출처: Jinho Jung (https://www.flickr.com/photos/phploveme)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며 서울 간 오빠는 소식도 없다”던 1925년의 동요 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 <오빠생각>의 오빠는 항일투쟁에 나선 것을 암시했던 반면에, 럭키 서울로 떠난 임은 전혀 다른 처지가 된다. 서울로 떠난 오빠인 사랑하는 남자는 변심남이 된다. 1967년 이시스터즈가 부른 <서울의 아가씨>가 “서울의 아가씨는 멋쟁이 아가씨”라고 하는 판국에 촌 아가씨는 서울 아가씨와 경쟁이 되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그 이듬해인 1968년 이미자가 불렀던 <서울이여 안녕>은 이런 사연을 담고 있다.

 

안녕 안녕 서울이여 안녕

그리운 님 찾아 바다 건너 천리 길

쌓이고 쌓인 회포 풀려고 왔는데

님의 마음 변하고 나 홀로 돌아가네

그래도 님 계시는 서울 하늘 바라보며

안녕 안녕 서울이여 안녕

안녕 안녕 서울이여 안녕

아득한 옛날 어려운 일 이기고

백년을 같이하자 맹세를 했는데

세월이 님을 앗아 나 혼자 울고가네

그래도 님 계시는 서울 하늘 바라보며

안녕 안녕 서울이여 안녕

 

서울은 백년 맹세고 뭐고 없는 그런 매정한 도시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패티 킴의 <서울의 찬가>가 곧바로 반격에 나선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봄이 또 오고 여름이 가고 낙엽은 지고 눈보라 쳐도

변함없는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

헤어져 멀리 있다 하여도 내 품에 돌아오라 그대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서울은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 곳이 된다. 이곳에서 이루어진 사랑은 촌색시가 울고 돌아가는 사랑이 아니다. 변함없고, 멀리 있어도 돌아와야 하는 그런 사랑이다. 안녕이라고 할 필요가 없는, 야무진 이들이 악착같이 살고자 하는 도시인 것이다. 나 혼자 울고 가네 어쩌네 하며 궁상떨지 말고 어떻게든 여기서 살겠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로 가는 길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김민기가 작사, 작곡을 하고 양희은이 불렀던 1972년의 <서울로 가는 길>은 가난한 집안을 살리기 위해 도시로 떠나야 했던 이들의 아픔을 전해준다.

 

우리 부모 병들어 누우신지 삼년에

뒷산에 약초뿌리 모두 캐어 드렸지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병드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뒷산에 약초뿌리란 뿌리는 모두 캤지만 그것도 별무효과였고 돈이 없으니 병환을 구할 길이 없으며, 그렇다고 아무 대책도 없는 촌구석에 그대로 있는 것도 방도가 아니다. 그러면 홀로 남게 되는 병든 부모를 누가 돌보겠는가? 이렇게 가슴에 비애를 안고 떠난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냈을까? 1992년에 나온 드라마 <서울의 달>은 시골에서 상경해 제비, 퇴물제비, 꽃뱀, 작은 회사의 경리직원, 백수 등으로 지내는 이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건 꿈과 좌절, 사랑과 고통이 혼재된 도시의 현실이었다.

 

그런 고된 서울살이에 지친 이들은 1994년 방실이가 부른 <서울 탱고>를 듣고 따라 부르며 위로를 얻는다.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이름도 묻지 마세요

이리저리 나부끼며

살아온 인생입니다

고향도 묻지 마세요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서울이란 낯선 곳에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세상의 인간사야 모두다

모두다 부질 없는 것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

그냥 쉬었다 가세요

술이나 한잔 하면서

세상살이 온갖 시름

모두 다 잊으시구려

세상의 인간사야 모두다

모두 다 부질없는 것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같은 것

그냥 쉬었다 가세요

술이나 한잔 하면서

세상살이 온갖 시름

모두 다 잊으시구려

 

고향을 잃고 부평초처럼 떠다니는 인생을 살면서 더는 악다구니로 살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냥 쉬면서 시름 잊고 사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며,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의 술잔을 권하고 있다.

 

그럼 지금의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그건 여기 소개한 노래와 드라마의 이야기를 합친 전부이기도 하면서, 새롭게 더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은 여전히 야망의 거대한 용광로이자 권력과 돈, 그리고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무섭게 작동하는 곳이다.

 

그러나 고층건물과 녹지대가 날로 더욱 어우러져 가고 정치적 열기와 문화적 상상력이 시험되는 현장이며 미래를 향한 세대의 희망이 일구어지는 터이기도 하다. 이걸 더욱 발전시켜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서울이라는 도시가 세계적으로 뛰어난 도시들에 비해 뒤지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지적 향연의 부재다. 런던과 파리, 피렌체와 뉴욕, 북경과 도쿄, 암스테르담과 베를린이 이끌어온 지성의 역사를 돌아보면, 서울의 자리가 훤히 드러난다. 책을 읽지 않는 도시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책 읽는 소리로 해가 저무는

서울의 거리마다 웃음이 솟네.

 

이런 가사로 노래하는 <럭키 서울>을 꿈꾸고 싶다. 그러다보면, <서울 야곡>이 이렇게 시작되는 날이 분명, 오겠지?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책방마다에 인파가 흘러 넘쳤다

 

 

김민웅/성공회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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