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말, 몸 글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2015. 2. 15. 08:25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5)

몸 말, 몸 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생각한다.” 서체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은 안상수 선생과의 대담에서 듣게 된 이야기였다. 손과 뇌는 직결되어 새로운 상상력과 시도를 하는 일종의 수단이자 작업의 현장이기도 하다는 논지다. 우리의 화제는 이내 우리말과 글로 옮아갔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말과 글은 몸 말과 몸 글이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만들어지는 부터 등 입술소리에 이르는 구강구조의 흐름에 따라 그 체계가 잡힌 자음은 물론이고, 음과 양의 구조를 확연히 보여주는 등은 생명의 기운이 어디에서 비롯돼 어디로 가는지를 일러준다. 이를테면 몸의 인문학과 생명철학이 우리말과 글에 그대로 담겨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운이 위로 오르면 우리는 구친다고 한다. 그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면 ''이라고 표현하며, 그것이 아주 절멸하면 이 좀 더 강한 으로 변해 '죽다'가 된다. 땅의 기운이 바다로 뻗쳐나가면 그곳은 ''이 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땅 위에 피어나면 ''이 된다. 우리는 마음도 먹는다고 말한다. 언어의 육화를 주시하는 것이다. ‘뱃속의 시커먼 생각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배우다’ ‘에서 나온 말이다. '아이를 배다'도 그렇고, 뭔가를 배우는 것도 다 ’, 즉 몸 안에서 뭔가 깊숙이 꿈틀거리며 새로운 생각과 지혜의 씨알이 태어나는 과정이 된다. 겉으로 슬쩍 지식이 되는 것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일깨움이다. ‘알다’, 즉 생명의 근원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뜻한다.

파주에 세워진 안상수 선생의 디자인 학교(파주 타이포 그래픽 인스티튜트·PaTI)에서는 학생들을 배움이’, 그리고 교장은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준다고 날개라고 부른단다. 알에서 시작해 뱃속에 새로운 생각을 태어나게 하고, 그래서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가는 청년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이내 그려진다.

몸과 생명, 그리고 생각과 말과 글은 우리에게는 서로 따로 떨어져 분리된 존재들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많은 말들과 글이 허공에서 부서져 사라지거나, 종이에만 박혀있는 물체로 그치고 있는 것만 같다. 몸이 되지 못하는 말, 땀 흘린 손에서 태어나지 않은 생각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음도 품고 생각도 기르는 몸을 만드는 훈련이 절실해진 시대가 아닐까?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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