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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두 개의 걸작품

by 한종호 2019. 12. 17.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4)

 

두 개의 걸작품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목양실 탁자 위에는 두 개의 소품이 놓여 있다. 소품이라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장인이 만든 걸작품으로 여긴다.

 

하나는 등잔이다. 흙으로 만든 둥그런 형태의 작은 등잔이다. 등잔은 그냥 보기만 하는 액세서리가 아니어서 실제로 불을 켠다. 누군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면 등잔을 켜곤 한다. 맑게 타오르는 불은 마음까지를 환하게 한다.


등잔은 지난해 초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구입한 것이다. 포틀랜드에서 말씀을 전하며 만난 목사님이 이후 이어질 일정 이야기를 듣더니 한 수도원을 소개했다. 켄터키 주에 가면 겟세마니 수도원을 꼭 방문해 보라는 것이었다. 1848년에 설립된,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수도원 중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마침 기회가 닿아 수도원을 방문했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비에 젖은 수도원은 더욱 고즈넉했다. 수도자로 살다가 수도원 곁에 묻힌 사람들, 수도원 입구의 허름한 묘지가 수도자의 길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었다.


겟세마니 수도원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은 <칠층산> <선과 맹금> <명상의 씨> 등을 쓴 토마스 머튼이 수도자 생활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한 사유를 길어 올렸던 분위를 마음 한 구석에 담고 싶었다. 마침 수도자들이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함께 참여할 수가 있었는데, 찬송 한 소절을 부르고 나서, 성경 한 구절을 읽고 나서 땅에 닿을 듯 허리를 굽혀 경배를 드리는 모습이 숙연하게 다가왔다. ‘경외’란 말로 설명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수도원에서 나오기 전 기념품을 파는 곳을 들렀다. 겟세마니 수도원을 기억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까 들렀는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지금 목양실 탁자 위에 있는 그 등잔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수도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흙으로 빚은 뒤 불에 구워 만든 것이었다. 등잔을 보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엇으로 등잔불이 탈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데, 등잔의 중심에 있는 심지가 달린 작은 뚜껑을 열면 파라핀 액을 넣을 수가 있다. 후배가 전해준 예루살렘에서 구한 감람유가 있어 섞어서 쓰는데, 불을 붙이면 맑게 타오른다. 탁자 위 등불은 겟세마니 수도원 수도자들의 시간처럼 타오른다. 그런 점에서 내겐 걸작품이 된다.

 

 

 

또 하나, 등잔 옆에 놓인 것은 나무 조각이다. 이 조각을 만난 것은 영월에 있는 한 음식점이었다. 곤드레밥을 맛있게 하는 곳이 있다며 선배가 안내한 식당은 읍내에서 제법 떨어져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곤드레밥이 무엇 다를까 했지만 아니었다.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담기자 맛도 향도 달랐다.


그런데 그 음식점은 곤드레밥으로만 기억에 남은 것이 아니다. 식당 곳곳에 나무로 만든 작품들이 놓여 있어 물었더니, 주인이 목공예를 하는 분이었다. 눈에 띄는 작품 중에는 산을 빼닮은 작품도 있었다. 산에서 구한 나무를 켜서 만든 작품이라고 했는데, 산에서 자란 나무로 산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모양 자체가 산을 닮아 ‘山’처럼 보였다.


나중에 다시 식당을 찾게 되었을 때, 비슷한 작품을 의뢰할 수 있을지 주인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주인은 비슷한 나무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해보겠다고 했다. 주문 제작을 하는 건 아니니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지는 말아달라는 조심스러운 부탁이 있었지만, 서로의 손을 맞잡아 십자가를 이루고 있는 작품과 나무를 켜서 산을 형상화한 작품을 의뢰할 수가 있었다.


나중에 작품을 찾으러 들렀을 때, 십자가는 제작을 한 것으로, 산은 전에 보았던 그 작품을 건네주었다. 비슷한 나무를 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고맙긴 했지만, 그럴 순 없는 일이었다. 시간은 괜찮으니 언제라도 작품을 만들면 그 때 가져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인의 마음은 달랐다. 자신이 그 몫을 맡겠다고 했다. 나중에 눈에 띄면 자신이 새롭게 만들겠다며 굳이 본래의 작품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런 산이 탁자 위에 놓여 있으니 내게는 어떤 작품보다도 걸작품인 셈이다. 흙으로 만든 등잔과 산을 닮은 나무를 켜서 만든 산, 비록 작은 소품이지만 내게는 더없이 의미 있고 멋진 걸작품, 탁자에 앉을 때면 그래서 마음이 넉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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