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바퀴는 빼고요

by 한종호 2019. 12. 16.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2)

 

바퀴는 빼고요

 

마음의 청결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걸레와 행주 이야기에 이어 나온 이야기가 그릇 이야기였다. 자신의 마음 밑바닥이 청결치 못해 담기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고백이었다. 쉽지 않은, 정직한 고백이다 싶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오래 전 일이 떠올랐다.

 

단강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여름성경학교 강습회가 있었고, 하루 몇 대 없는 버스로 원주 시내로 나가야 했던 나는 제법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용한 찻집을 찾았다. 창문을 통해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2층 찻집이었다.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강의할 내용을 정리하고 있을 때, 뒤편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려 왔다. “아가씨!” 비명에 가까운 날카로운 소리였다. 돌아보니 중년의 아주머니였는데, 아주머니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서빙을 하던 청년이 놀라 달려갔을 때 그는 거칠게 항의를 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 만한 일이었다.

 


커피를 마시다가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마셨는데 뭔가가 입에 걸렸다는 것이다. 보리차로 커피를 끓여 보리가 걸렸나 싶어 꺼내다가 기절초풍, 손에 잡힌 것은 바퀴벌레였다. 커피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다니 심했다 싶고, 그걸 모르고 커피를 다 마셨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아주머니의 반응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당황함과 송구함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청년을 세워 놓고 아주머니의 거친 항의는 한동안 더 계속되었다. 아무리 해도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는 것 같았다.


다음날도 강습회는 이어졌고, 같은 시간 같은 찻집을 찾게 되었는데, 마침 어제 곤욕을 치른 그 청년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난 일부러 커피를 시켰고,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청년에게 잠깐만이요 하면서 한마디를 보탰다.


 “바퀴는 빼고요.”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더니 이내 말뜻을 알아듣고 청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예 주방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웃음을 참고 있었다. 전날 겪었던 무안함이 그런 웃음으로 지워졌음 싶었던, 그런 기억이었다.

 

그릇이든 찻잔이든 바닥에 죽은 바퀴벌레가 있다면 그동안 먹은 음식과 마신 차가 어찌 맛있다 할 수가 있겠는가. 내 마음 밑바닥에 죽은 바퀴벌레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우리 인생을 다 산 뒤에야 깨닫게 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삶일까, 우리는 그러기가 얼마나 쉬운 삶을 사는 것일까,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이 알싸했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개의 걸작품  (6) 2019.12.17
딴 데 떨어지지 않네  (4) 2019.12.17
걸레와 행주  (4) 2019.12.15
아찔한 기로  (4) 2019.12.13
링반데룽  (4) 2019.12.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