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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겠다 신동숙의 글밭(205) 춥겠다 여름방학 때서울 가는 길에 9살 아들이 문득 하는 말 "지금 서울은 춥겠다." 지난 겨울방학 때 서울을 다녀왔었거든요 파주 출판 단지 '지혜의 숲' 마당에서 신나게눈싸움을 했었거든요 2020. 8. 6.
보이지 않는 나 한희철의 얘기마을(46) 보이지 않는 나 “마음이 몸을 용서하지 않는다.” 티내지 말자 하면서도 입술이 형편없이 터졌다. 가슴은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서서히 가라앉았고, 덩그런 바위가 그 위에 얹혀 있는 것도 같았다. 거센 해일을 견디는 방파제 같기도 했다. 잠자리에 누워선 철컥 철컥 벽시계 소리가 가슴 밟는 소리로 들렸다. 시간은 어렵게 갔고, 옥죄이는 초라함에도 내가 보이질 않았다. - (1990) 2020. 8. 6.
물방울 하나 신동숙의 글밭(204) 물방울 하나 하나와 하나가 만나하나가 될 수 있다면 나 하나로 온전할 수 있다면 너 하나로충만할 수 있다면 나와 너가 만나우리가 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물방울은 하나로 맺히는 사랑 2020. 8. 5.
제비똥 한희철의 얘기마을(45) 제비똥 안속장님네 마루 위 천정엔 올해도 제비가 집을 지었습니다. 점점 그 수가 줄어드는 제비가 용케 옛집을 찾아 다시 한 번 집을 지은 것입니다. 집 짓느라 바지런히 오가며 때때로 흰 똥을 싸 내려 마루에 똥칠을 합니다. 깨끗하신 속장님 연신 마루를 닦다 이번엔 신문지를 널찍하게 펼쳐놓았습니다. 문을 닫아 놓아도 용케 들어와 집을 진다고, 똥을 싸대 일이라며 말투는 귀찮은 듯 했지만 그 말 속엔 온통 반가움과 고마움이 들었습니다. 한갓 미물의 변함없는 귀향, 사람이 그보다 난 게 무엇일까. 백발의 세월 두곤, 돌아온 제비가 섧도록 고마운 것입니다. 까짓 흰 똥이 문제겠습니까. - (1990) 2020. 8. 5.
새로운 오늘 신동숙의 글밭(203) 새로운 오늘 오늘 이 하루를 새롭게 하는 맑은 샘물은 맨 처음 이 땅으로 내려온 한 방울의 물이 오늘 속에 섞이어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기에 당신의 가슴 속 맨 밑바닥으로 흐르는 한 방울의 눈물이 눈동자 속에 맺히어바라보는 순간마다 새로운 오늘 2020. 8. 4.
가슴에 든 멍 한희철의 얘기마을(44) 가슴에 든 멍 영웅적인 고통이나 희생이 아니다.그저 잘디 잘은 고통뿐. 단 한 번의 주목받는 몰락 아니다.그저 서서히 무너질 뿐. 가슴에 든 멍을 스스로 다스리며또 다시 아픈 가슴 있지도 않은 가슴으로 끌어안을 뿐. 목회란 울타리, 그뿐 또 무엇. - (1990) 2020. 8. 4.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정은 한희철의 얘기마을(43)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정은 버스를 타러 신작로로 나가는데 길가 논에서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일을 하고 있었다. 반백이었던 머리가 잠깐 사이 온통 하얗게 셌고, 굽은 허리는 완전히 기역자로 꺾였다. 할아버지는 쇠스랑대로 논에 거름을 헤쳐 깔고 있었다.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는 “올해도 농사하세요?” 하고 여쭸다. 나이도 나이고, 굽은 허리도 그렇고, 이젠 아무리 간단한 농사라도 할아버지껜 벅찬 일이 되었다. 잠시 일손을 멈춘 할아버지가 대답을 했다. “올해까지만 짓고 내년에는 그만 둘 꺼유.” 할아버지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안다. 할아버진 지난해에도 그러께도 같은 대답을 했다. 아마 내년에도 같은 대답을 하실 게다. 올해까지만 짓고 내년엔 그만 두겠다고. 언젠가 취중에 ‘.. 2020. 8. 1.
도시락과 반찬통 한희철의 얘기마을(42) 도시락과 반찬통 도시락에 대해 물은 건 떠난 민숙이 때문이었다. 그나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학교를 졸업한 민숙이가 도시락을 챙겨줬을 터였지만 민숙이 마저 동네 언니 따라 인천 어느 공장에 취직하러 떠났으니 도시락은 어찌 되었을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일 오후 광철 씨네 심방을 갔다가 봉철이를 만난 것이었다. “안 싸가요.” 봉철이의 대단은 간단했다. “왜?”“그냥, 싸 가기 싫어요.”“그럼 점심시간엔 뭘 하니?”“혼자 놀아요. 혼자 놀다 아이들 다 먹고 나오면 같이 놀아요.”“도시락은 없니?”“도시락은 있는데 반찬통이 없어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반찬통이 없다니. 정말 없는 게 어디 반찬통일까. 재작년 엄마 병으로 하늘나라 가시고, 올 봄 누나 공장으로 떠나고, 술.. 2020. 7. 31.
먼지 한 톨 신동숙의 글밭(203) 먼지 한 톨 먼지 한 톨로 와서먼지 한 톨로 살다가먼지 한 톨로 돌아가기를 내 몸 무거운 체로하늘 높이 오르려다가땅을 짓밟아 생명들 다치게 하는 일은마음 무거운 일 들풀 만큼 낮아지고 풀꽃 만큼 작아지고밤하늘 홀로 빛나는 별 만큼 가난해져서 내 마음 가벼운먼지 한 톨로 살아가기를 높아지려 하지 않기를무거웁지 않기를부유하지 않기를 그리하여자유롭기를 2020.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