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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50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건, 맑은 가난이더라 신동숙의 글밭(219)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건, 맑은 가난이더라-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의사라는 직업의 엄중함- 어느덧 처서가 지나고, 어둑해진 서녘 하늘에 초승달이 보이는 밤이면, 선선한 밤바람이 답답하던 가슴속까지 어진 손길로 슬어 주는 듯하여, 이대로 여름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가 싶더니, 이내 제주도에서 한반도로 북상하고 있다는 태풍 바비 소식에 비설거지라도 하는지 다들 분주한 목소리다. 사는 곳이 달라도 조심하자며 부디 건강하라는 인사가 어디서든 한목소리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마음들이 그렇게 한결같이 따뜻한 것이다. 검색을 하다가 올라오는 소식 중에, 창밖으로 거세게 비를 퍼붓는 제주도 태풍 영상을 보면서 조마조마해 있는데, 빕빕~ 문자 알림음이 깜짝 놀래킨다. 보나마나 코로나19 관련 .. 2020. 8. 27.
같이 한 숙제 한희철의 얘기마을(65) 같이 한 숙제 “목사님, 목사님, 속담 좀 가르쳐 줘요.”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학교에서 속담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내 준 것이다. 예배당 책장에서 (俗談大成)이라는 책을 찾아 꺼내 줬다. 잠시 후 아이들이 다시 달려왔다. “국어사전 좀 빌려줘요.” 낱말 조사를 스무 가지씩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장을 다 찾아봤지만 국어사전이 없다. 원래 없었는지, 누가 빌려간 것인지 기억이 희미하다. 서재에 있는 두 권을 뽑아들고 예배당으로 가 아이들과 숙제를 같이 했다. 책에서 잘 모르는 낱말을 찾아 밑줄을 긋고 두꺼운 사전을 뒤져 뜻을 찾았다. 어느새 스무 개. 어렵게 생각했던 숙제를 쉬 마친 아이들은 해방감에 좋고, 오랜만에 낱말을 찾으며 아이들과 어울린 나는 그 어울림이 좋았다. “.. 2020. 8. 26.
눈물로 얼싸안기 한희철의 얘기마을(64) 눈물로 얼싸안기 “제가 잘못했습니다.” 편히 앉으라는 말에도 무릎 꿇고 앉은 집사님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였고, 그렇게 말하는 집사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작은 일로 다른 교우와 감정이 얽혀 두 주간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집사님, 작실 속회예배를 드리러 나설 즈음 집사님이 찾아왔다. 사이다 두 병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전에도 몇 번 감정이 얽힌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찾아가 권면하곤 했지만 이번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잘못 버릇 드는 것 같아서였다. 빈자리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나올 때까지 참기로 했다. 그만큼 기도할 땐 그분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나오지 않는데도 심방해 주지 않아 처음엔 꽤나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2020. 8. 25.
부산을 움직이는 건, '정의'보다는 '정'과 '의리' 신동숙의 글밭(218) 부산을 움직이는 건, '정의'보다는 '정'과 '의리'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권고인 코로나19, 2단계 안전 수칙인 비대면 예배와 사회적 거리 두기를 대부분의 교회와 단체와 모임과 개인들까지도 지키고 있는데 반해서, 유독 부산에선 270군데 현장 예배를 선포, 강행한 실태를 두고 무엇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너그럽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신 분들 입장에서도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통탄해 할 개신교의 그릇된 단면일 것이다. 그렇지만 부산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필자의 입장에선 어렴풋이 아련하게나마 부산 사람들의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부산 사람들은 환경 태생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정'과 '의리'가 많은 사람들이다. 6·25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인한 .. 2020. 8. 25.
이상한 병 한희철의 얘기마을(63) 이상한 병 어떤 사람이 몸이 이상해 용한 의원을 찾았다. 이리저리 맥을 짚어 본 수염이 허연 의원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거 묘한 병이구먼, 말로만 듣던 그 병이야.” 의원의 표정과 말을 듣고 자기 병이 심상치 않음을 안 그가 다그쳐 물었다. “무슨 병입니까?”“한 걸음에 하루가 감해지는 병이라네.”“무슨 약은 없습니까?”“없네. 다만 자네 마음이 약이 될 걸세.” 의원을 만난 뒤 그의 삶은 달라졌다. 집안에 틀어박혀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한 걸음에 하루가 감해진다니 줄어드는 하루와 바꿀만한 걸음이 어디 쉽겠는가. 일도 다 그만두고 밥도 대소변도 방에 앉아 해결했다. 그의 몸은 점점 야위어 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몸져눕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생각.. 2020. 8. 24.
마스크와 침묵 신동숙의 글밭(218) 마스크와 침묵 요즘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진짜 바이러스는 코로나19가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뉴스에선 확진자 수십명이 다녀간 어느 가게에서 검사를 받은 직원들한테서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고 한다. 그럴 수 있었던 요인은 모두가 코로나19 안전 수칙인 마스크 착용을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천지 사태 이후로 온 국민이 정부에서 알려준 코로나19 안전 수칙을 대부분 잘 지켜왔기에 울산 지역만 해도 최근 100일 동안 확인자가 0명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어제 날짜로 확진자 70명이 되었다.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공공 기관 출입시에 발열 체크 등. 이 수칙들이 처음엔 약간의 불편함을 주었지만, 어느새 그것도 우리 생활의 일부가.. 2020. 8. 24.
나무 광이 차야 한희철의 얘기마을(62) 나무 광이 차야 허름한 흙벽돌 집, 광 안에 나무가 차곡차곡 가득합니다. “할머니, 나무가 많네요.” 심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할머니께 말했더니 “올 봄에 사람 사는 재워 놨어유. 나무 광이 차야 맘이 든든하지, 그렇잖으면 왠지 춥구 허전해서유.” 광에 나무를 재워두고 든든한 맘 가지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나무 가득한 광을 보면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할머니가 갖는 든든한 맘의 이유를 들으며, 노인이 갖는 삶의 단순함과 지혜를 배웁니다. 채울 걸 채워야 맘이 든든하다는 것은 삶의 지혜요, 그 채운 것이 나무였다는 것은 지극한 단순함입니다. 나도 텅 빈 광이 되어 그 단순함과 지혜를 배울 수 있었으면, 문득 마음이 간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1990년) 2020. 8. 22.
땀방울 한희철의 얘기마을(61) 땀방울 “빨리 빨리 서둘러! 늦으면 큰일 난단 말이야!” 하루 종일 내린 비가 한밤중까지도 계속되자 숲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점점 불어난 물이 겁나게 흘러 산 아래 마을이 위태로워진 것입니다.그칠 줄 모르는 장대비에 마을이 곧 물에 잠길 것만 같습니다. 깨어있던 나무들이 잠든 나무와 풀을 깨웠습니다. “뿌리로부터 가지 끝까지 양껏 물을 빨아들여! 빈틈일랑 남기지 말고.” 나무마다 풀마다 몸 구석구석 물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좀 더 많은 물을 빨아들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숨쉬기초차 어려울 만큼 온몸에 물을 채웠습니다.한밤이 어렵게 갔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개울물 소리가 요란했을 뿐 마을은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아침 햇살은 거짓말처럼 찬란했.. 2020. 8. 21.
텅빈 대형 교회당과 거룩한 성전 신동숙의 글밭(217) 텅빈 대형 교회당과 거룩한 성전 인도 여행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 한 자락이 생각난다. 코끼리 형벌에 대한 이야기다. 죄를 지은 신하에게 왕이 내리는 형벌 중에서 코끼리를 하사하는 형벌이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그게 무슨 형벌이 될까 싶었다. 언뜻 생각하면 형벌이 아닌 코끼리 선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토끼도 아닌 거대한 코끼리를 왕이 내려준다니 형벌보다는 오히려 선물이 아닌가.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코끼리를 굶어 죽게 해선 안되는 것이다. 코끼리를 팔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왕이 하사한 코끼리를 잘 먹여서 키워야 하는 형벌인 것이다. 코끼리 한 마리가 먹는 채소와 과일의 양은 하루에 100kg이 된다고 한다. 코끼리 한 마리를 먹여 살리다가 점점 집안.. 2020.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