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취하게 하여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3)

 

모두를 취하게 하여

 

그러므로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병()이 포도주(葡萄酒)로 차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모든 병()이 포도주(葡萄酒)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 하리니 너는 다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땅의 모든 거민(居民)과 다윗의 위에 앉은 왕()들과 제사장(祭司長)들과 선지자(先知者)들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居民)으로 잔뜩 취()하게 하고 또 그들로 피차(彼此) 충돌(衝突)하여 상()하게 하되 부자간(父子間)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관용(寬容)치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13:12-14)

 

주님의 말씀이 싱겁게 여겨질 때가 있다. 너무 밋밋하게, 뻔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놀랍고, 마른하늘에 무지개가 걸리는 것처럼 오묘하고,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벼락처럼 두려운 말씀이 아닐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어느 날 주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당신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리신다. 그런데 그 전하라 하시는 말씀이 뭔가 밋밋하다. 너무도 당연한 것을 전하라 하신다. “모든 병이 포도주로 가득 찰 것이다라고 말하라니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의 반응도 주님은 예상하고 계시다. “항아리에 포도주가 담긴다는 것을 우리가 어찌 모르겠느냐?”(새번역) 병에, 항아리에, 술독에 포도주가 차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그게 무슨 주님의 말씀이냐고 반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주님이 하고 싶은 말씀은 따로 있다. 모든 병을 포도주로 채우겠다는 것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 모두를 취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모두를 취하게 하여 서로 충돌하여 서로 상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모든 주민과 왕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예루살렘 성 주변에 사는 예루살렘 주민들까지 예외가 없다. 심지어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서로 부딪쳐 서로 깨지게 될 것이라 하신다.

 

백성들과 통치자가 모두 취하여, 예언자와 선지자가 모두 취하여, 믿는 자와 안 믿는 자가 모두 취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취하여 피차 충돌하여 서로 상하게 하는 것, 서로 부딪쳐 서로 깨지는 것,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이들을 향한 주님의 심판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괜한 일이 아니다 싶다. 모두가 취한 상태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부터 백성들까지 모두가 취했다. 취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진다. 신앙의 지도자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취하지 않았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천하에 드러난다. 믿는 자와 안 믿는 자 모두가 예외 없이 취했다. 취하지 않았다면 어찌 믿는 자와 안 믿는 자가 구별되지 않을까. 부모가 자식을 죽이기도 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기도 하니, 취해도 아예 정신을 잃을 만큼 취한 것이 분명하다. 어디에서도 염치(廉恥)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필시 모두가 취했기 때문,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도 더 이상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모두가 취했기에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서로 부딪친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와 실망을 준다. 정치를 하는 이들이 백성들에게 큰 아픔을 주고, 신앙의 지도자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절망케 하고, 믿는 자들이 실망스러운 삶으로 신뢰의 둑을 무너뜨린다.

 

그러면서도 깨닫지를 못한다. 모든 병에 포도주를 채우겠다니, 그게 무슨 주님의 말씀이냐고, 항아리마다 포도주로 차면 좋은 것 아니냐고 주님의 뜻을 무시하거나 왜곡한다.

 

그런 이들을 두고 주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관용치 아니하며, 멸하겠다고 하신다. ‘멸망한 멸’()이라는 글자는 물 수’()불 꺼질 멸’()을 합한 글자로, ‘물로 불을 끄듯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주님은 주님께 등을 돌린 사람들을 모두 취하여 하여 서로가 서로를 쳐서 상하게 함으로 물로 불을 끄듯 소멸시키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끝내 사람들은 알아듣지를 못한다. 항아리에 포도주가 차는 것은 당연한 일, 오히려 좋고 감사한 일, 이 땅을 향한 주님의 뜻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항아리를 포도주로 채우기도 전에 이미 포도주 냄새에 취해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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