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하고 싶거들랑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0)

 

자랑하고 싶거들랑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智慧)로운 자(者)는 그 지혜(智慧)를 자랑치 말라 용사(勇士)는 그 용맹(勇猛)을 자랑치 말라 부자(富者)는 그 부(富)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者)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明哲)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仁愛)와 공평(公平)과 정직(正直)을 땅에 행(行)하는 자(者)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9:23-24).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말 중에 ‘기자불립, 과자불행’이라는 말이 있다. 《노자》에 나오는 말로, ‘까치발을 하고서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서는 자기 길을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발뒤꿈치를 들어 까치발을 하고 서면 뒤꿈치를 들고 있는 만큼은 남들보다 돋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태로 오래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내 쥐가 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걸어가며 가랑이를 한껏 벌려서 걸으면 얼마든지 남들보다 앞설 것이다. 하지만 서너 걸음이면 모르겠거니와 그런 모습으로 먼 길을 걸어갈 수는 없다. 그러다간 이내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돋보이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자기자랑이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에게 있다. 우쭐하고 싶을 때, 허전할 때, 내 자신이 초라하다 여겨질 때 우리는 자기자랑을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 자기를 드러내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아무 티를 내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은연중에 까치발을 들고 보폭을 넓히기 마련이다.

 

 

 

 

자기를 자랑하는 것 중에는 지식이나 지혜가 있다. 남보다 더 배운 것과 더 아는 것을 자랑한다. 자랑하기 위하여 더 많이 배우는 이들도 있다.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불쑥 끼어드는 것은, 대화나 회의가 끝내 싸움으로 번지는 것은 대부분 내가 옳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재물을 자랑한다. 남보다 더 가진 것을 자랑한다. 더 많은 소유가 더 큰 행복을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헛헛하고 목이 마르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힘을 자랑한다.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자랑한다. 자신의 직함을 적기에 명함 앞뒷면이 모자를 때가 있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신이 어떤 유력한 사람을 알고 있는지를 거명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그런 이들을 두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직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이것을 자랑하여라. 나를 아는 것과, 나 주가 긍휼과 공평과 공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하나님인 것과, 내가 이런 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 만한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여라. 나 주의 말이다.” <새번역>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뜻을 깨치고 사랑과 법과 정의를 세상에 펴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기뻐하는 일이다. 야훼의 말이다.” <공동번역 개정판>

 

“자랑하려는 이는 이런 일을, 곧 나를 이해하고 알아 모시는 일을 자랑하여라. 나는 과연 자애를 실천하고 공정과 정의를 세상에 실천하는 주님으로 이런 일들을 기꺼워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성경>

 

“자랑을 하려거든 내 뜻을 알고 나를 아는 것, 오직 그것만을 자랑하여라.” <메시지>

 

인간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것, 그것뿐이다. 주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깨닫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뿐이다.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이와 묵묵히 그 뜻을 행하는 이는 굳이 그런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릴케가 <기도시집>에서 노래한바 ‘밀폐된 수도원의 골방마저도 웃음소리, 고함소리와 너무 가깝다고 여겨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 몸을 숨긴 이들’이다. 결국 자기를 자랑한다는 것은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다니는 교회를 자랑하고, 예배당 건물을 자랑하고, 교인 수나 예산을 자랑하고, 자신의 직분을 자랑하는 이들이 있다. 그 모든 것이 주님과의 거리가 한참 멀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임을 까마득히 모르는 채.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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