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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한나, 어머니 되기 위해 어머니 되기를 포기하다(2)

by 한종호 2015. 11. 8.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7)

 

한나, 어머니 되기 위해 어머니 되기를 포기하다(2)

 

 

1. 모정만리(母情萬里) 모로역정(母路歷程). 한나가 매년 실로 성소에 가서 소리 없는 통곡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길.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한나는 확신을 얻고 돌아왔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버텼다. 마침내 한나는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했다. 드디어 어머니가 된 것이다. 한나는 아이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다. 한나가 아이 이름을 그렇게 지은 까닭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는 의미를 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사무엘이라는 이름이 꼭 그런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울”이 그 의미에 더 가깝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들으셨다” 또는 표기에 따라 “그의 이름은 엘(하나님)이다”는 의미를 갖는다.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면, 한나는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신앙고백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는 게 좋겠다.

 

2. 한나는 어머니가 되는 순간부터 어머니이기를 포기하는 준비를 한다. 그래서 매년 올라가서 매년제사와 서원제사를 드리던 실로 순례를 그해에는 하지 않는다. 한나는 실로로 가는 남편 엘가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22절). 엘가나는 한나에게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23절)고 말한다. 성경기자는 한나와 엘가나가 나누는 대화를 꽤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존중하며 주님께 신실한 사람들인지를 보여주려 한다.

 

 

 

 

3. 본문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한나가 매우 치밀하고 단호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서 젖떼기까지 양육하고, 제사 예물(수소 세 마리, 밀가루 한 에바, 포도주 한 가죽부대)을 준비해서 실로로 올라간다. 이것을 보면, 한나는 제사 예법에 밝았던 듯하다. 그런데 성경기자는 “아이가 어리더라.”는 말을 일부러 한다. 이 간결하고 무미해 보이는 구절이 실상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독자들은 금방 눈치 챌 것이다. 아직 어린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는 어머니 심정을 이렇게 은근하게 보여준다.

 

4. 한나가 제사를 드리면서 엘리에게 하는 말에서도 그가 매우 치밀한 사람임이 드러난다. 한나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자초지종을 엘리에게 이야기한다. 먼저 한나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힌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26절). 그런 다음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27절). 마지막으로 한나는 자신이 아이를 데리고 성소에 온 까닭을 간명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28절). 한나는 매우 논리적이고 신앙적이다.

 

5. 성경기자는 이렇게 사무엘상 1장을 마무리하고 2장으로 넘어가는데, 여기에는 그 유명한 ‘한나의 노래’ 또는 ‘한나의 기도’가 나온다. 본문은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장면 다음에 나오기 때문에, 독자들로 하여금 그것에 연속해서 읽도록 요구한다. 본문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한나가 드디어 한을 풀었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독자들은 “브닌나에게 맺혔던 한을 드디어 풀었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본문에 여럿 나온다. 물론 어울리지 않는 어색스러운 구절들도 보이지만, 본문은 전체적으로 원수와 싸워서 이긴 것을 말하고, 하나님이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신다고 말하는데, 특히 자녀를 많이 낳은 여자와 무자한 여인이 정반대 결과를 맞는 장면에서 독자들은 브닌나와 한나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6. 이렇듯 본문이 별 무리 없이 앞 뒤 이야기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자들은 이 본문이 원래 한나가 출산 후에 드린 기도나 노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을 읽어보면, 출산 후에 산모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기도나 찬양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거창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7. 특히 10절(“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은 이 시가 파생한 맥락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데, 왕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은 나중에 사무엘이 보여주는 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과 다르다. 그리고 1장 28절과 2장 11절을 이어서 읽으면,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8. 이런 점에서 본문은 본디부터 한나가 부른 노래로 보기에 어려움이 많은데, 그렇다면 본문은 과연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졌을까? 어쩌면 본문은 왕의 군대가 승전 후에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찬양 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왕위계승자탄생에 대한 감사 찬양 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원래 한나의 기도와 무관하던 이 시가 나중에 ‘한나의 기도’로 본문에 삽입된 것은 사실이다. 이 노래가 한나의 기도로 삽입되면서 어떤 효과를 주는가? 사무엘서 기자는 왜 이 시를 여기에 삽입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 시를 한나의 기도와 찬양으로 읽게 하는가?

 

9.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국가건설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매우 사소하게 보이는 엘가나 집안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 사소한 가족 이야기가 이 본문을 통해서 가족 이야기라는 차원을 벗어나 국가적인 차원으로 나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의 노래는 사무엘서가 가족 이야기에서 국가 이야기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본문이 보여주는 이러한 기능적인 이미지는 구약성경이 말하는 가족 이미지와 일치한다. 구약에서 가족은 가족 차원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가족은 여전히 가족으로 존재하면서도 또 언제나 가족을 넘어서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사무엘서 2장 1-10절에 나오는 한나는 한 아이의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이스라엘의 모든 어머니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0. 10절까지 이어지던 거창 모드는 11절부터는 일상적인 분위기로 전환한다. 한나와 엘가나는 사무엘을 실로에 남겨 놓고 집으로 돌아간다.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사무엘상 2:11). 그 후로도 매년 엘가나와 한나는 실로에 올라가서 매년제사와 서원제사를 드렸다. 그때마다 한나는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사무엘에게 입혔다. 그리고 엘리는 그때마다 엘가나와 한나를 축복했다.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20절). 하나님이 돌보셔서 한나는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았다. 그리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1절). 이렇게 한나는 다시 어머니가 되었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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