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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시스라의 어머니, 모든 어머니는 존중받아야한다(2)

by 한종호 2015. 8. 16.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1)

 

시스라의 어머니, 모든 어머니는 존중받아야한다(2)

 

 

1. “시스라의 어머니는 도대체 언제 등장하는가?” 조금만 기다려보라.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와 그 군대를 전멸시키고 야빈을 눌러서 결국 야빈과 그 세력을 진멸한다(사사기 4:24). 사사기 4장은 이렇게 끝난다. 그런데 이 사건이 얼마나 극적이었던지 옛 시인은 31절에 이르는 꽤 긴 서사시로 만들었다. 그것이 사사기 5장이다. 성경기자는 드보라가 노래하는 것으로 설정하는데, 드보라는 자신이 사사로 부름받기 이전, 즉 삼갈과 야엘 시대를 매우 곤궁한 시절로 정의한다.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사사시 5:7). 하지만 성경기자가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사사기 3:21)고 말하기 때문에, 드보라가 하는 말은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기 위한 극적인 대비로 보는 게 좋겠다.

 

2. 그런데 모정천리 때문인지, 드보라가 자신을 “이스라엘의 어머니”라고 칭하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드보라가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게 어색해 보이지만, 어쨌든 이것은 위대한 칭호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외적이 쳐들어오는 위급한 상황에서, 사만 명의 군인들 가운데 방패와 창을 든 사람이 하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한 것이 바로 드보라 자신이라고 스스로를 높인다. 그러면서 드보라는 자신이 이룬 업적(물론 드보라는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라고 노래한다.)을 세세하게 이야기한다. 드보라와 바락을 따르는 사람들을 열거한 다음, 스불론과 납달리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것을 칭송한다.

 

 

 

3. 사사기 4장은 드보라와 바락이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인 시스라와 싸웠다고 하는데, 사사기 5장은 “왕들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19절)고 한다. 사사기 5장이 전투장면을 더 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4. 드보라는 비록 이스라엘 군사들이 용맹하게 싸워서 대적들을 물리치긴 했지만, 신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승리했음을 말한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20-21절).

 

5. 드보라는 메로스 사람들과 야엘을 대비하는데, 그 전투에서 이스라엘을 돕지 않은 메로스 사람들을 저주하고(23절), 야엘을 칭송한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24절). 이렇게 메로스 사람과 야엘을 대비하면서, 야엘을 높인다.

 

6. 드보라가 야엘을 칭송하는 까닭은 그가 적장 시스라를 죽였기 때문이다. 드보라는 시스라의 최후를 꽤 상세하게 서술한다(25-27절). 야엘이 한 손에 방망이를 든다. 그리고 끝이 뾰쪽한 장막 말뚝을 다른 손에 든다. 그리고 시스라에게 다가가서 그 관자놀이에다 방망이로 말뚝을 박는다. 야엘이 얼마나 힘이 좋던지 말뚝이 시스라의 머리를 꿰뚫는다. 4장은 누워 잠자는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야엘이 말뚝을 박아서 그 말뚝이 땅에 박힐 정도였다고 한다(21절). 참 대단한 용기와 힘이다. 시스라가 발 앞에 고꾸라진다. 그렇게 쓰러져서 죽는다. 성경기자는 시스라가 고꾸라지고 쓰러져 죽는 것을 세 번 반복한다(27절). 이렇게 야엘이 시스라를 용맹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성경기자는 하드고어 영화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성경기자는 에훗이 모압 왕 에글론을 암살하는 장면도 아주 살벌하게 서술했다(사사기 3:21-22).

 

7. 시스라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이야기한 다음, 드보라는 시스라의 어머니를 언급한다. 드보라는 시스라의 어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는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드보라가 설정하는 장면을 맘속으로 그려보라. 장소는 시스라 어머니가 거주하는 저택이다. 나이든 시스라 어머니가 창문, 더 자세하게는, 창살 틈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다림에 지쳤는지, 아니면 무슨 낌새를 챘는지, 시스라 어머니가 울부짖는다.

 

8.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그의 병거들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28절). 시스라의 어머니가 말하려는 것은 아마도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천하무적인 우리 아들이 이렇게 늦을 리가 없는데… 그 군사들을 얼마나 용맹스러운데…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돌아왔을 시간인데… 이거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럴 리가 없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는 시스라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9. 그렇게 울먹이면서 부르짖는 시스라의 어머니를 수종하는 “지혜로운 시녀들”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을 것이다. “주인어른은 분명히 다른 때 보다 더 많은 전리품을 갖고 승전가를 부르면서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치도 걱정 마시고 맘을 편안하게 하십시오. 잠시 후면 저쪽에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시스라의 어머니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애써 달랜다. “그래.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거지? 내 아들이 누군데, 전투에서 질 리가 없지. 전리품을 갖고 반드시 돌아올 거야. 용사들이 아리따운 처녀들을 한 둘은 데리고 올 게 분명해. 그들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내 아들 시스라가 특별한 전리품으로 채색 옷을 가져 올 거야. 암 그렇고말고.” 하지만 그들이 바라던 것과는 정반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락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사들이 그곳에 들이닥쳐서 시스라의 어머니를 비롯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재물을 약탈했을 것이다.

 

10.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하루 내 서성이며 기다리는 어머니.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 그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심히 불안하고 두려운 어머니의 처절한 울부짖음. 그리고 서로 위로하며 맘을 달래려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을 시인은 정말 실감나게 묘사한다. 그런데 이것은 “조롱”이다. 이미 아들은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그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머니를 비웃는 것이다. 드보라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31절). 우리도 그러기를 원한다. 폭력적인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자. 그렇다고 꼭 이렇게 적장의 어머니를 조롱해야 했을까?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가나안의 어머니”를 말이다. 이스라엘의 승리를 더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문학적인 장치인 것은 알겠는데, 이스라엘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모정을 난도질하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한 행위가 아닐까?

 

이종록/한일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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