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던지는 메시지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5)

 

메르스가 던지는 메시지

 

 

바이러스. 그 이름은 ‘독’을 뜻하는 라틴어 비루스(virus)에서 왔다. 그런데 사실 바이러스는 그렇게 해롭고, 있어서는 안 될 존재만은 아니다. 늘 있어왔고,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리고 실제로 지구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유기물질이 바로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묘하다. 독립 세포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 구성체라고는 일정한 유전물질과 단백질, 그리고 그것을 담고 있는 껍질 정도이다. 바이러스는 생명체라 부르기도 애매한 것이 독립적으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기에 반드시 숙주를 필요로 한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세포에 있는 핵산을 통해서만 자신의 고유한 유전정보를 복제하여 증식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생존 방식 때문에 바이러스는 적당한 선에서 숙주와 공생해야 한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자신의 유전정보를 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매우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존재방식 덕분에 바이러스는 지구라는 혹성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거의 무소편재하다. 세포로 이루어진 유기체라면 동물이든, 식물이든 가리지 않고 기생한다. 전자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극히 작은 크기이지만, 지구상의 바이러스를 쭉 줄 세운다면 수십억 광년의 길이로도 모자를 것이다. 매일 마시는 한 컵의 물에도 수백억 개의 바이러스가 요동치고 있고, 깨끗한 척 유난을 떠는 우리의 몸에도 언제나 바이러스는 똬리를 틀고 있다. 바이러스는 그렇게 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숙주 모르게, 숙주와 더불어 살아간다. 그러니 바이러스 연구가들이 노래처럼 읊조리는 “신은 바이러스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 숙주로 인간을 만들었다”라는 말이 지나치게 들리지 않는다.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 원출처

 

 

암튼 이런 성격의 바이러스는 속성상 숙주와 잘 지내야 한다. 허나 몇몇 경우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숙주마저 파괴하는 폭주 형 바이러스가 생기곤 한다. 그래서 복제하려 들어온 숙주를 죽게 만들어 결국 자신도 파멸하는 어리석은 운명이 되곤 한다. 2002년의 사스가 그렇고, 2012년의 메르스가 그렇다.

 

그런데 2015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메르스란 이름의 바이러스는 아주 묘한 구석이 있다. 치사율 40%에서 알 수 있듯이 일단 이 녀석은 매우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메르스를 치유할 수 있는 백신은 아직까지 개발이 안 된 상태이다. 아무리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라 하더라도 3년이나 지났는데 왜 백신이 없는 것일까? 2009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신종플루만 해도 ‘타미플루’라는 치료약이 곧바로 개발되었는데 메르스의 백신은 왜 없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이 안 되는 이유는 강한 독성을 지닌 이 바이러스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전파력에 있다. 신종플루는 공기 중 감염이 이루어지기에 순식간에 많은 이들에게 확산되는 반면, 메르스는 사람 사이 밀착접촉에 의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다보니 주로 병원 안에서, 그리고 생활공간이 밀착되어있는 가족 간 감염이 주를 이루게 된다. 그러니 속도와 파급도가 다른 공기 중 감염되는 바이러스에 비해 눈에 띄게 낮다.

 

이런 상황이니 구태여 이 바이러스를 위한 백신에 천문학적 연구비를 들일 이유가 없다. 밀착 접촉형 감염이다 보니 적절한 방역망이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첫 발원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곤 확진자의 숫자가 현저히 적다는 것을 통해서도 쉽게 드러난다. 확진자 수로 보자면, 영국이 4명(3명 사망), 독일 3명(1명 사망), 프랑스 2명(1명 사망), 미국 2명 정도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한국에 들어와서는 예상과 달리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상당한 수준의 의료 환경을 구축한 나라치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메르스에 융단 폭격을 당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당국의 미숙하고 안일한 초기 대응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헌데 그것만으로 탓하기에는 한국 사회 메르스 확산의 이유가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요소는 없는 것인가? 이에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한국 사회가 보이는 매우 독특한 의료 서비스 환경을 꼽고 있다. 바로 ‘병원 쇼핑’이다.

 

‘병원 쇼핑.’ 사실 우리 사회에서 소문난 병원이나 의사를 찾아 유랑하듯 헤매는 사연자를 찾아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니 한 병원에 진득이 눌러 앉아 질병의 진원지를 찾아내려하기 보다는 빨리 차도를 불러낼 수 있는 용한 명의에게 진료 받으려 하는 것이 우리네 정서이고, 의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병원도 가까운 동네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물건 싸게 파는 대형 할인마트를 찾는 것처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주저하지 않는다. 마치 쇼핑하듯이 우리는 병원도, 의사도 손쉽게 바꿔 탄다. 그래서 이 병원에서 차도가 없으면, 곧바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간다.

 

일방적인 목적 지향적 에토스가 만들어낸 사회적 질병이다. 이 질병에는 기다림이나 인내는 사치이다. 차분히 묻고 따지며 원인과 이유를 살피기보다는 즉각적인 몸의 반응과 차도를 요구하기에 침상을 옮겨 다른 병원을 찾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리고 옮겨간 병원에서 보다 빠른 치료의 대상이 되기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전하는 데 크게 힘을 쏟지 않는다. 다만 이런 저런 관계와 라인을 통해 빨리 무언가 차도가 있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힘을 다하고 압력을 가한다. 그러니 손쉽게 수술을 하고, 주사를 주입하고, 강도 높은 항생제가 처방된다.

 

급하다. 묻고 따질 시간이 없다. 질병에도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을 텐데.. 언제 그것을 묻고 자시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빨리 떼어버리고,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하고, 빨리 내 목적을 달성해야만 한다. 그것이 지상과제이고, 최선의 목적일 될 뿐이다. 과정은 번거롭고, 진단은 구차하고, 설명은 비루하다. 빨리 수술을, 어서 주사를, 더 많은 약을 얻고, 받아 째고, 맞고, 먹으면 될 뿐이다! 이처럼 메르스는 반성 없고 성급한, 제대로 따져묻지 않는 우리 사회의 허술한 면역 체계를 적확히 노리고 파고든다. 적잖은 희생과 아픔을 치르면서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면역체계의 문제점을 진단받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병원 쇼핑이라는 독특한 한국의 의료 환경이 메르스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헌데 어디 우리사회가 병원만 쇼핑하고 있던가. 종교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단, 종파를 가리지 않고 제 맘에 드는 공동체를 찾아내기 위해 방랑하듯 유랑하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러니 누구 설교가, 아무개 강론이, 어떤 이의 법설이 좋다면 천릿길도 단숨에 오가는 것이 지금 종교계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니 차분히 앉아 자신에게 찾아온 체험의 비밀을 음미하거나 되묻는 반성의 시간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그런 사유와 명상, 그리고 반성을 촉구하는 이들은 어디서든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 그저 당장의 결과와 축복만이 절실하고 갈급할 뿐이다. 그러니 어느 종단을 막론하고 우리의 실존을 제대로 진단해낼 수 있는 신학적 결과물은 요원하다.

 

예까지 생각이 미치니 우리 몸에만 메르스가 덮친 것이 아닌 것 같다. 반성 없고, 사색 없는, 그래서 신학(교학)마저 영혼이 빠져버린 한국의 종교계는 이미 오래전에 메르스에 점령당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니 병원 쇼핑 못지않게, 종교 쇼핑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주제라 하겠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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