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메르스, 그리고 희생양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4) 

 

페스트, 메르스, 그리고 희생양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중동호흡기 증후군)의 침입에 한국 사회가 휘청거리고 있다. 치사율 40%라는 공포의 수치가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고 차갑게 만들었다. 그래서 정부가 제 아무리 공기 중 감염은 희박하다고 강조를 하여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이런 지경이니 평소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들이 한산해진다. 각종 쇼핑센터, 대형 할인마트, 백화점, 영화관, 음식점 등에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졌고, 각종 학교의 휴교령으로 대중교통도 여유로워졌다. 다만 주택가 근방의 PC방들은 학교를 가지 않는 학생들로 성업 중이라고 한다. 모여 있지 말라고 내린 휴교령인데, 결국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밀착 접촉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메르스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형에 속한다고 한다. 몇 년 전 강력한 감염력으로 세계인을 공포에 떨게 했던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도 이 코로나 계열의 독감 바이러스이다. 사스는 200211월 중국 남부 광둥 지역에서 시작되어 20037월까지 대략 8천여 명을 감염시켰고, 그 중 774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이번 한국을 강타한 메르스는 2012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주로 중동지역에서 발생하였고, 대략 감염자 천여 명에 사망자가 400명에 이른다. 대략 9% 정도의 치사율을 보인 사스에 비해 메르스가 보인 치명적인 위력(?)은 상당하다. 그러니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메르스나 사스와 같은 감염병에 대한 인류의 공포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14세기 유럽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페스트의 광풍을 생생히 기억한다. 페스트는 같은 이름의 균이 숙주로 삼은 쥐로부터 기인한다. 페스트는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균에 감염된 뒤 사람을 물어 옮기게 된다. 이 병은 죽은 자의 몸에 검은 반점을 남겨 흑사병이라고도 불렸다. 지중해 지역에서 시작된 이 병은 이후 100여년에 걸쳐 진행되며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유럽인의 3분의 1, 혹은 4분의 1이 이 병으로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망자의 수는 적게는 2,600만에서 많게는 6,000여 만 명에 이른다.(사망자 수의 편차는 기록별로 계수한 연도와 지역의 범위가 다른 탓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디작은 세포 덩어리 하나에 수천만의 인류가 당한 것이니 황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유럽의 의학 수준으로는 이 악마의 병이 왜 생겨났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앉아서 당하고 시신을 치우기만 할 뿐이었다. 때론 공포에 떨며 오직 신만이 이 병을 떨쳐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여 함께 모여 기도하기에 열중하기도 했다. 허나 이런 집단적 행위는 오히려 페스트의 빠른 감염을 불러와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빌미만 제공하였다. 급속한 속도로 늘어가는 희생자들을 지켜보며 유럽인들은 절망했고, 공포에 떨었고, 또 낙심하여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눌러 있을 수만은 없는 일. 그들은 이 신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열쇠가 필요했고, 결국 그것을 찾아냈다.

 

그 열쇠는 바로 유대인이었다. 무방비로 페스트의 공격에 당하고 있던 유럽 땅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바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도들을 없애기 위해 식수원이 되는 우물과 샘에 독을 풀어 이 병을 유행시켰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렇게 유대인이라는 희생양을 통해 페스트가 몰고 온 공포를 넘어서고자 했다. 생각보다 소문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유럽 곳곳에서 유대인에 대한 테러가 멈추질 않았다. 신의 저주인줄 알았던 질병이 인간 유대인에 의한 조작으로 주장되는 순간, 이제 공포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얼굴을 바꾸었다.

 

그러나 사실 페스트와 유대인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일설에 의하면 페스트는 14세기 몽골군이 제노바(Genova, 이탈리아 북부의 항구도시)를 침입했을 때 페스트로 죽은 시신을 성곽 안으로 쏘아 떨어뜨림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11세기 말부터 시작된 십자군 원정대에 의해 아시아 지역으로부터 한센씨병과 페스트를 옮겨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경로를 통했든 본디 유럽에는 없었던 이 질병이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로 열악하기 그지없던 당시의 위생 환경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화장실이 그 다시 유럽에는 없었다. 그러니 큰 도시들은 사람과 가축의 배설물이 거리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제대로 된 화장실과 하수시설이 없었기에 급하면 지나가던 길 위에 그냥 배설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그나마 사람들이 적은 한적한 농촌이라면 자연 정화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많은 이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의 배설행위는 매우 열악한 위생환경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역으로 이런 환경은 쥐를 통해 전파되는 페스트로서는 최상의 조건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 한번 번지기 시작한 페스트는 가뭄 끝 산불처럼 순식간에 유럽 대륙을 뒤덮어 버렸다. 그리곤 수천만 명의 희생자가 생겼다.

 

중세의 페스트 이후에도 인류는 엄청난 감염병의 공포를 또 맛봐야만 했다. 바로 20세기 초 전 세계적으로 2,500여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스페인 독감이다. 스페인 독감의 공포는 한반도도 비껴가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도 740여만 명 정도가 감염되었고, 그 중 14만 명 정도가 사망하였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이런 대규모 감염병의 위세가 꺾이게 된 것은 바로 하수도의 정비와 제대로 된 대중적 비누의 등장에 빚진바 크다. 상수도와 하수도의 정비는 사람들의 생활세계에서 오물과 폐수를 비껴가게 하였고, 대신 양질의 식수원을 확보하여 대규모 수인성 감염이 생기지 않도록 만들었다. 거기에 비누의 대중화는 평소 개인위생을 관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 각종 세균들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해 주었다. 이처럼 인류의 힘으로 일으켜 세운 인공적 위생 환경 덕에 우리는 중세의 페스트나 20세기 초반 스페인독감 같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규모 감염병의 공포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은 피해가고 있으나 공포와 불안은 성숙하게 이겨 넘기기는 못하는 것 같다. 중세인들이 페스트의 공포를 유대인 죽이기로 상쇄하려 했던 것처럼, 지금의 우리 사회도 메르스가 가져온 불안을 누군가를 공격함으로 무마시키려 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공격의 대상들은 사회의 약자들이다. 안 그래도 소외되고, 배척받고, 그 때문에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사회의 다수가 날카로운 침과 바늘을 사정없이 찔러댄다. 찌르는 이들은 이는 정당한 지적이며 기껏해야 심리적 안정을 위한 사회적 행위라 변명해댈 수 있을지 모르나, 당하는 이들에겐 그저 피하고 싶은 폭력일 뿐이다. 21세기에도 이런 모습의 폭력을 만나니, 중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희생양 찾기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감염병의 문제는 의학과 그에 기반을 둔 정책과 시스템으로 풀어야 한다. 이를 신앙으로 섣불리 해석하려드는 것 자체가 우리가 넘어서야 할 또 다른 감염병일 수 있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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