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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십브라와 부아, 목숨 걸고 아이들을 지키다(1)

by 한종호 2015. 5. 28.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0)

 

십브라와 부아, 목숨 걸고 아이들을 지키다(1)

 

 

1. 어머니들의 어머니. 오늘은 아이를 낳은 어머니들보다 더 어머니다운 그런 여인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 출애굽기는 <이름의 책>이다. 한글 개역성경은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출애굽기 1:1)로 번역하는데, 히브리어 문장은 “이것들이 이름들이다”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열두 아들 이름을 열거하는데, 이 이름의 책 출애굽기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이름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은 무엇인가?

 

3. “바로”(11절)는 이름이 아니고 왕을 가리키는 직함이다. 그리고 “모세”라는 이름은 2장 10절에 가서야 나온다. 성경기자는 모세가 출생하는 장면에서 모세의 부모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그리고 모세를 구해준 애굽 공주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름의 책인 출애굽기가 의외로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에 신중하다.

 

4. 출애굽기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이름은 십브라와 부아이다. 십브라는 “아름다움”이라는 의미이고, 부아는 “화려함”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히브리 산파들이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출애굽기 1:15). 히브리어 문장을 직역하면, “애굽 왕이 히브리인 산파들에게 말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십브라이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부아였다.” 1절에 나온 “이름”이 여기에 나온다. 그런데 성경기자는 왜 이들 이름을 맨 먼저 언급하는가? 출애굽기라는 이름의 책에서 이 두 사람을 제일 먼저 언급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이들이 존경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출애굽기 1장을 읽으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들을 얼마나 존경했을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Shiphrah and Puah, 출처: Sammy Williams>

 

 

5. 이스라엘 사람들이 산파들을 존중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이 바로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출애굽기 1:17). 이 구절을 보면, 십브라와 부아는 가치관이 분명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들이 바로의 지엄한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에 처형당할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있는 신으로 떠받드는 바로는 무서운 존재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바로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6.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바로는 두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바로가 명령을 내린 후에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들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은 죽은 목숨들이라는 점에서 “호모 사케르”이다. 그들이 태어나는 것은 그야말로 “사형수 입장”(“Dead Man Walking”)이다.

 

7. 그러나 그들은 바로가 내리는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명확하게 알았다. 그리고 바로에게 저항했다. 물론 지혜로운 대답(“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으로 위기를 넘기고 목숨을 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정말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아이들을 살렸다.

 

8. 바로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사람들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독자들은 바로가 진정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을 눈치 챌 것이다. 진정 강한 것은 산파들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졌고(20절), 산파들은 흥왕했다(21절).

 

9. 바로가 두려워하는 까닭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하지 않았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번성하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좋은 일이지만, 바로에게는 위협적인 일이었다. 이삭이 농사를 지어서 백배 결실을 얻었을 때, 이것은 이삭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위협적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내친다. 출블레셋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는 동일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서 애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번성하는 것, 그리고 그들을 애굽에서 내보내는 것, 둘 다 바로에게는 감당할 수 없이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10. 성경기자는 산파들을 통해서 왕에 대한 두려움과 신에 대한 두려움을 대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데, 산파들은 신에 대한 두려움을 왕에 대한 두려움보다 앞세우는 선택을 한다. 그들은 살리는 일과 죽이는 일 중에서 그들에게 본연의 임무인 살리는 일을 선택한다. 그들이 아이들을 죽인다면, 그들은 더 이상 산파가 아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기자는 산파들 이름은 밝히면서 애굽 왕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데, 이런 점에서 바로는 산파들보다 못하다. 십브라와 부아, 진정 위대한 여인들이다. 이름 그대로 아름답고 화려하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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