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저쪽 편이 부럽지 않은 사람들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8)

 

강 저쪽 편이 부럽지 않은 사람들

 

 

전철 교각 밑 포장마차에서는 튀김을 비롯해 익힌 어묵이 나무꼬치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습다. 빠르게 지나는 자동차의 먼지가 아랑곳없는 그곳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이 허기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파는 사람이나 사먹는 사람이나 모두 힘겨워 보입니다. 팔지 못하고 남은 것들은 다 어떻게 할까? 저렇게 잔뜩 만들어 놓고 손님이 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서글픈 염려에 사로잡힙니다.

 

다른 한편에는 길가에 내놓은 탁자들이 즐비한 채, 횟집, 고기집, 맥주 집 등이 서민들의 휴식처를 만들어 놓습니다. 강남 도심에는 그리도 흔한 카페 하나 없는 초라한 동네에 마을 사람들이 귀가를 잠시 늦추고 아쉬운 한잔들을 기울입니다.

 

서울 타워 팰리스 부근의 풍경은 미국의 어느 도시 모퉁이를 닮아 있었습니다. 미국의 식당 “다이너(Diner)”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곳에 들어가 보면 여기저기서 영어가 한국어처럼 들립니다. 분명 다른 세상입니다. 건물 사이로 들어가는 차들은 벌써 그 품새가 차이를 보입니다.

 

너무 넘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언제나 부족해 허덕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서로 같은 하늘 아래 지구별에 살고 있지만, 이 두 마을 사이에는 아주 크고 넓은 강이 흐르고 있는 듯합니다.

 

그 강을 가로질러 다리가 세워져 있지만 그렇다고 그 다리를 쉽게 통과하여 저쪽 마을로 가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강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TV에서는 빌 게이츠의 집이 6만평이 된다면서 그 성채 같은 집의 화려한 면모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그런 방송이 방영되는지 모르지만, 그 TV를 뚫어져라 보고 있어야 할 사람들은 더욱 고단해집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입에 은수저를 물고 나온 사람이 있고, 손에 삽을 들고 세상에 나온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 아닐 텐데 세상은 그렇게 둘로 쩍하고 갈라집니다.

 

 

 

서울의 타워 팰리스는 언젠가는 자신도 이루고야 말 빌 게이츠의 저택을 꿈꾸고, 전철 교각 밑 사람들은 있는 집에서나마 잘 버틸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상해의 중국 부자 집 딸은 다섯 살에 이미 골프채를 휘두르며 귀족수업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린 뉴욕 타임즈지를 펼쳐드니 공주가 된 아이의 사진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노동의 곤고함에서 겨우 풀려나 쉬는 이들에게 이런 소식들은 우울합니다. 주말이 되었지만, 살림살이 걱정에서 풀려난 것은 아닙니다. 빚지고 살지 않으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돈벌이가 여의치 않아 사람 구실 못하고 사는 걸 주위가 다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날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한 몸 누일 자리가 있다면 거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되지 않음이 행운이라고 여기는 이에게서 희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혹여 때로 불운하여 방랑하는 처지가 되었다 해도 뉘엿뉘엿 서산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일 또다시 태양은 뜬다고 기대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이는 패배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겁니다.

 

사람은 자유롭고 존엄하게 태어났지만, 도처에서 그 자유와 존엄이 상처투성이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집은 야전병원(野戰病院)이기도 합니다. 들판에서 격전(激戰)을 치루고 돌아온 이들은 모두 그 어디인가 보이게, 보이지 않게 부상을 입고 비틀거리며 어서 잠자리에 평안하게 드러눕고 싶어 합니다.

 

야전병원의 불빛은 꺼질 수 없고,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약품은 늘 제대로 구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집은 다시 격전의 전쟁터로 변하기도 합니다. 위로하고 치료하고 기운을 북돋아주어도 부족한 판에 피곤한 전투가 벌어지고 맙니다. 날카로워진 신경을 다독일 틈도 없이 서로가 적이 됩니다. 지친 자들의 싸움은 이미 싸움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병일뿐입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절망하고 어른들은 부질없게도 서로 더욱 늙어가게 만듭니다. 집에 있어도 집에서 쫓겨난 자들의 표정을 짓고 맙니다. 서로 상대가 자신을 쫓아냈다고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 표정이, 굳어버린 세월이 되어버리면 인생은 끝내 허탈해집니다.

 

자신이 매일 잠들고 일어나는 집이 자신을 포함한 서로를 구원해줄 수 있는 자리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구원을 바라는 것인가요?

 

세상을 갈라놓은 강이 아무리 크고 넓어도,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너는 일이 필사적인 사태가 된다 해도 언제나 반가운 얼굴로 자신을 맞아주는 이들이 있다면 그의 상처는 아물게 됩니다. 그의 흉터는 사라집니다. 그의 청춘은 다시 회복됩니다. 그의 마음은 너그러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일상이 정작 그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상으로 힘겨워진 삶을 껴안고 함께 일어나 줄 이가 없어서 그토록 고독하게 아픈 것입니다. 어떻게든 일어서보려 하는 그를 믿어 주는 이가 없어서 외롭게 흔들거리는 겁니다.

 

교각 밑 포장마차의 의자는 시간이 지나면 치워질 것이며, 거리에 나와 있던 탁자들도 밤이 깊어지면 임무를 마치고 가게 안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은 철수하지 않습니다. 전투에서 돌아온 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걸 확신하기에 남들이 보기엔 보잘 것 없는 마을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은 겁니다.

 

혹여, 돌아가도 반길 이 없는 이에게조차 오늘 쓸쓸하지 말라고 밤의 별이 빛납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무엇이든 평화롭게 일구어내는 집에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무엇이든 사랑으로 믿어주는 집에서 생명력 충만한 자신감이 자라납니다. 무엇이든 자기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집에서 꿈이 익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꼭 맞는 선택을 하는 지혜가 있는 사람들에게 운명은 축복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줄 겁니다. 그 지혜, 이 계절에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 그는 강 저쪽 편이 부럽지 않습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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