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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단강까지의 거리

by 한종호 2021. 8. 18.



어렵게 한 주일을 보내고 맞은 부활절이다. 예수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절, 연례행사 치르듯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절기.


글쎄, 뭘까. 부활란을 먹고, 특별헌금 드리고 부활에 대한 설교 듣고, 뭐 그렇게 끝나는 날은 아닐 텐데.


‘기대가 무너진 그 자리에서’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농촌의 현실을 인정하며, 오늘 이 농촌에서의 부활의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부활 후 갈릴리에 나타나셨던 예수는 오늘 이곳 단강엔 어떤 모습으로 찾아와 어떤 말씀을 하실지.

설교가 끝나갈 즈음 조용히 문이 열렸고 생각지 못한 분이 들어오셨다. 이진영 집사님. 서울 미아중앙교회를 연으로 만나게 된 늘 형님같이 친근한 분, 그 우직한 성품으로 하여 동화 ‘엿장수 아저씨’의 이미지를 전해 주신 분. 웬일인지 반가움보다도 고마움이 앞섰다. 


자가용이긴 했지만 새벽에 떠나셨으리라. 9시에 시작하는 낯선 이곳의 예배시간에 맞추기 위해선. 점심을 먹곤 강가로 나가 많은 얘길 나눴다.


‘나’를 지키며 살아가기엔 분명 받아들이기 어려운 삶의 여건들, 직장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갈등을 얘길 하셨지만 오히려 난 그 얘기들 속에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보라, 마침내 모든 것을 내 발로 딛고 서리라’는 담담한 자신감을, ‘그리고 모두를 비웃어 주리라’는 듯싶은.


집사님의 방문만이라도 내겐 기쁜 부활절이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며 난 맘 속으로 집사님에게 물었다. 


‘집사님, 서울부터 단강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죠?”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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