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섬뜰속 속회인도를 부탁받았다. 새로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용자 할머니 네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예배를 드리곤 부적을 떼어 달라는 것이었다. 부적을 떼어 달라는 부탁이 하나님을 보다 확실하게 섬기려는 할머니의 뜻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할머니의 믿음은 충분히 본받을 만하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럴듯한 부적을, 부적이라 부르지는 않지만 부적의 의미를 가진 것들을 거리낌 없이 소유하는 이도 적지 않으니까.


부적을 잘못 떼면 부적 뗀 사람이 되게 앓게 된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기억하기 때문이었을까, 부적을 뗀다는 말을 듣고 드리는 예배는 왠지 모를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찬송도 그랬고 기도도 그랬다. 더욱 힘찼고 더욱 간절했다.


예배를 마치고 부적을 뗐다. 기다란 것 하나, 그보다 작은 것 두 개, 나란히 붙어있는 세 개의 부적을 조심스레 뜯어냈다. 잘못 뜯어서 한 조각이라도 남으면 그만큼의 귀신이 안 떠나고 남아 안 좋은 힘을 쓸까 싶은 마음으로.


“그걸 8만원 주고 사왔어요.”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잘 생각하셨어요. 이젠 하나님이 돌보실 거예요.”


함께 예배를 드린 교우들이 혹 부적 떼어낸 할머니의 마음이 불안할까 싶었던지 권면의 말을 계속 건넸다. 부적 떼어 낸 자리에 십자가나 예수님 그림이라도 사다 걸어드리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분간 그만 두기로 했다. 그것을 또 하나의 부적으로 여기시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할머니, 늘 기도하세요. 하나님께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그게 기도에요.”


백발의 할머니, 할머니는 네 명의 손주를 키우고 계신다. 작년에 젊은 나이의 아들이 죽고 며느리는 어디론가 돈 벌러 나갔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늘 눈물일 게다. 삶이란 이런 것인지, 안개 낀 듯 퀭하니 눈물일 게다.


“할머니,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그저 어린아이가 응석 떨 듯 할머니께 이름을 물었다. 새삼스러운 듯 눈을 크게 뜨고 부끄러운 듯 대답하시는 할머니. 


“안숙자에요.”


안숙자라는 말에 김정옥 집사님은 “이숙자랑 이름이 똑같네,” 하며 크게 웃는다. 이숙자 씨는 끽경자에 살고 있는 교우 중 한 분이다. 모두들 용자 할머니로 알고 있을 뿐, 그리고 그렇게 부르고 있을 뿐 할머니 이름이 안숙자 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으리라. 할머니는 ‘안숙자’란 당신의 이름을 누군가 불러준다는 것의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소중한 경험을 오늘 새롭게 맛보리라. 


꼬깃꼬깃 호주머니에 넣어온 부적을 집에 돌아와 불에 태운다. 손에 들고 하나씩 태운 부적, 여느 종이와 다름없이 쉽게 타고 말았다.

 - 그래. 쉽게 불 타 없어지는 건 신앙이 아니야.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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