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균 형, 그 우직함이라니



영진을 다녀오게 되었다. 강원도 영진에서 목회하고 있는 정균 형이 한번 예배를 같이 드리자고 불렀다. 임원헌신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꼭 찾고 싶었던 곳, 보고 싶었던 형을 그렇게 찾게 되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해송들 사이로 가까이 들려오는 곳, 영진교회는 바다와 잘 어울려 아담하게 세워져 있었다. 

 


저녁예배를 드리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도, 다음날 아침 이웃마을 사천에서 목회하고 있는 진하 형을 만나 같이 이야기 나눌 때도 난 내내 정균 형의 우직함과 묵묵함에 압도를 당하고 말았다. 


언젠가 기석 형은 정균 형을 두고 ‘소 같은 사람’이라 했는데, 그 말은 정균 형을 두고선 가장 어울리는 말이었다. 아직도 내 마음에 흔들림과 주저함으로 남아있는 막연함을 형은 흔쾌히 털어낸 채였고, 홀가분하면서도 무게 있는 삶을 묵묵히 살아낼 뿐이었다. 


이야기 중 안식년 이야기가 나왔다. 좋은 자리로 부르는 청을 마다하고 형은 첫 목회지인 영진에서 안식년을 맞고 있었다. 걷던 길로부터 잠시 벗어나 머리를 식히며 걷는 길의 소중함을 새롭게 새기는 안식년, 두어 달 쉴 계획이라는 형의 말에 그동안 무얼 할 거냐 다시 물었을 때, 형의 대답이 전혀 뜻밖이었다. 


오징어 배를 탈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영진 사람들 대부분은 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어부들이다. 형은 두어 달 시간을 내서 그들과 함께 고기를 잡아보고 싶다고 했다. 


안식년을 맞아 어떻게 ‘쉴까’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형의 말은 충격이었다. 안식년을 ‘채우면’ 어디 성지순례쯤을 당연시 하는 흔한 풍조 속에서, 이웃들의 삶의 자리 위험한 바다로 나가려는 형의 계획은 새벽 바닷바람처럼 신선했다. 


오징어 배를 두어 달 타면 돈도 꽤 모을 수 있을 거라고, 형은 너털웃음으로 자신의 치열함을 감추고 나섰지만, 돌아오는 먼 길, 난 형의 소 같은 걸음걸음에 내내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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