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가난한 사랑

by 한종호 2020. 12. 9.

한희철의 얘기마을(168)


가난한 사랑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뭐가 그리 바쁜지 밖으로 돌아치기 일쑤고, 그나마 집에 있는 날은 뭔가를 읽고 쓴다고 방안에 쳐 박히곤 하니 같이 어울릴만한 시간이 부족한 것입니다. 하루 종일 두 녀석이 마당에서 노는 걸 보면 은근히 마음이 아프면서도 함께 하는 시간은 많지 못합니다. 그걸 잘 알기에 한가한 시간이 주어지면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애써 노력을 합니다.


그중 쉽게 어울리는 것이 오토바이입니다. 혼자 타기에도 벅찬 조그만 오토바이지만 앞쪽에 규민이 뒤쪽에 소리를 태웁니다. 두 녀석은 오토바이 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규민이는 오토바이를 탄다면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이고 어서 떠나자고 아무나 보고 손을 흔들어 댑니다. 떨어지면 어떡하나 싶었던 처음과는 달리 백미러 막대를 앙증맞게 꽉 잡고, 뒷자리의 소리도 아빠 허리를 꼭 껴안습니다. 



천천히 작실 마을로 올라 몇 분 할머니들을 만나기도 하고, 염태 고개로 가 아름답게 피어난 들꽃과 저녁 해 지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때론 다리 하나 사이로 충청북도 땅이 시작되는 덕은리로 가 얼음과자를 사기도 합니다 천상 덕은리에 가야 얼음과자를 살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녀석들은 은근히 오토바이가 덕은리 쪽으로 향하길 기대합니다.


지난 얼마 동안은 산딸기를 따는 것이 재미였습니다. 염태고개 쪽으로 가다보면 곳곳에 산딸기가 탐스럽게 매달려 있곤 했습니다. 한 알 한 알 작은 알맹이들이 빼곡히 모여 빨간 송이로 익은 산딸기는 한눈에 보기에도 침이 돕니다. 


어쩜 산딸기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이 일부러 만드신 나무인지도 모릅니다. 잎에도 줄기에도 온통 가시투성이인 나무에 그리도 깨끗하고 탐스러운 열매가 달리는 건, 아무리 가시 같이 저주받은 삶이라도 그가 맺어낼 아름다운 열매 있음을 일러주기 위한 하나님의 남다른 배려인지도 모릅니다.


손끝이 따가운 가시를 피해 딸기를 따면 손바닥 가득 빨간 딸기가 쌓이고, 그러면 언덕배기 풀밭에 앉아 소풍 나온 듯 딸기를 먹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뒷자리 흥얼대는 소리의 노래가 저녁놀과 어울려 정겹습니다.


그뿐입니다. 시골 목사인 내가 자라나는 내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란 그런 가난한 시간들뿐입니다.


-<얘기마을> (1992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머니의 거짓말  (0) 2020.12.11
겨릿소  (0) 2020.12.10
불 하나 켜는 소중함  (0) 2020.12.08
공부  (0) 2020.12.07
성지(聖地)  (0) 2020.12.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