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노’와 ‘강강수월래’

한종호의 '너른마당' 2015. 2. 17. 22:21

한종호의 너른 마당(9) 

니나노강강수월래

 

사람은 먹어야 산다. 지당한 말이다. 사람은 놀아야 건강하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은 사랑과 정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면서 일만 하면 그건 결국 인생을 시들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놀 줄 모르는 인생과 사회는 그만큼 흥도 없고 신명도 나지 않는 현실을 의미할 뿐이다. 어디 그래가지고서 사람 사는 것 같을까?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가슴 속에 흥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라는 구호는 분단의 군사적 긴장을 망각하지 말라는 국가의 요구였다. 청소년들은 입시 지옥에서 헤맸고 성인들은 집단적인 노동 윤리에 묶여 그 압박감을 제대로 분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무지해져 갔다.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공동체적인 순수한 놀이 문화는 아득히 잊혀져가는 구시대의 풍습인 듯 여겨지고 말았다.

무엇이든 누르면 당장에는 어떨지 모르나 결국에는 터져 나오게 되어 있는 법이다. 학업의 부담이나 노동의 강도가 강해지면서 우리 사회는 일탈과 비행, 그리고 향락과 음주 문화의 발달을 목격하게 되었다. 건강한 놀이 문화는 생각하기 어려웠고, 도덕적 타락으로 유도하게 되는 향락주의가 주도권을 잡아갔다. 일을 열심히 했던 세대일수록 그런 유혹에 쉽게 빠졌고 그것은 우리 사회의 대세를 지탱하는 풍속이 되어갔다.

아이들이 이런 성인들의 세계를 배우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노는 풍속은 우리의 생명력을 돋우는 흥이나 신명과는 상관이 없는, 욕망의 분출일 따름이다. 그러한 방식은 욕망에 대한 끊임없는 탐닉으로 인간을 일그러지게 하며, 뒤끝이 좋지 않은 모습을 남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다만 개인적 차원의 윤리나 문제로만 국한시켜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건강한 생명력을 회복하기 어렵다. 함께 머리와 가슴을 맞대고 어떻게 하면 흥겨운 현실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희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놓고 생각을 모아야 한다.

과거 농경사회는 마을 전체가 서로 너나 할 것 없이 섞여서 신분과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얼싸안고 놀며 즐겼던 잔치가 있었다. 이 축제의 힘은 그럼으로써 하늘의 축복을 비는 자리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하늘에서 신이 내리는 제의이기도 했고, 그간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긴장을 푸는 기회였으며 하나로 마음이 모아져서 새로운 힘이 충만해지는 그런 현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서 불려지는 후렴구 니나노란 말은 우리 민중의 흥겨움을 집약하는 가락이었다. 그 말의 뿌리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듣기에 따라서는, “()하고 나하고 같이 놀자라는 말의 준말 같기도 하다. 놀면서 서로 갈라지는 법은 없다. 소원했거나 서먹서먹했던 사이도 놀면서 친해지기 마련이다. “니나노는 대동(大同)의 구호인 셈이었다. 너와 내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함께 덩실덩실 섞여 놀면 어느새 그간의 미운 정, 고운 정 모두 녹아나면서 새로운 너와 내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여기에 모아졌다.

신이 난 나머지 얼싸하고 소리치는 것도 얼, 즉 그 정신을 온통 다 상대에게 쏟아 붇듯이 싸고 남을 만큼 충만해진 상태의 감탄사가 아니겠는가? 얼싸안는 것은 그래서 그냥 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과 정신 모두가 상대를 내 몸과 구별할 수 없이 감싸듯이 안는 것을 뜻한다. 얼이 하나가 되어 서로 싸고도는 순간,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힘을 주는 그런 관계가 된다. 한 사람 속에 백 사람의 기운이 차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강강/수월래는 또 어떤가? ‘(가앙)(가앙)’은 악기 소리를 입으로 내는 것이고, ‘수월래는 이에 맞추어 이어졌다 맺어졌다, 풀렸다 감겼다 하면서 춤추는 몸의 동작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수월래의 뜻은 그냥 내는 소리가 아니다. 수월하다는 것은 쉽다는 것 아닌가? 수월을 줄이면 술, 즉 술 술 내 인생과 모든 일이 매끄럽게 풀려라는 것이다. 인생이 신이 나는 가락에 맞추어 맺힌 데 없이 술술 풀려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도대체 누가 있겠는가?

 


(진도의 강강수월래)

그래서 강강수월래는 악기 소리에 맞추어 흥을 돋우면서 만사가 형통하게 해달라는, 마을 공동체 전체의 하늘에 대한 기원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을 잔치에 참여하는 모든 이에 대한 서로 서로의 축복이기도 했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합동기도이다. 박 서방네도, 김 초시네도, 언년이네도, 그리고 안성 과부댁도 모두 차별 없이 다 잘 살아가는 그런 세월에 대한 흥겨운 복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함께 논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축복이 넘치는 자리에 대한 갈망을 의미한다. 이기고 지는 경쟁논리가 함께 더불어 지내는 대동의 깃발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그래서 꺾였던 의기가 새로 일어나고 좌절했던 마음도 희망으로 벅차게 되는 그런 현실을 일구어내는 것이 바로 이 축제의 목표이다. 그것은 결국 생명의 잔치가 되는 것이다.

생명을 얻어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온”(요한복음 10:10) 예수님 자신도 무질서하게(?) 잔치에 참석했기 때문에 극심한 비난을 받았다. 가난한 이, 눈먼 이, 죄인, 세리 등 함께 해선 안 될 사람들과 어울리며(마태복음 9:9-13, 누가복음 6:33, 7:36-50), 손도 안 씻고(마가복음 12:38-40) 마음대로 먹고 마시며 즐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잔치의 모습(이사야 25:6-8)을 보여 주셨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재산으로가 아니라 자신을 바쳐 생명의 잔칫상을 차려 주셨다(마태복음 26:17-30, 요한복음 10:11-18).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이 곳에서 생명의 잔칫상을 차려야 한다. 예수처럼 자신을 나눠 상을 차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누가복음 14:13)도 부르고, 나를 모욕하는 이들도 불러 품어 안고, 북녘 동포도 불러 신명나는 잔칫상을 마련하는 일은 꿈같은 일일까.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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