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종교, 나쁜 종교?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 사회(7)

좋은 종교, 나쁜 종교?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자세를 취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난 그러한 경직된 종교 담론 내지 종교에 대한 태도가 우리 사회를 유연하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종교하면 곧 진리를 떠올리고, 세속의 눈에는 감히 조망할 수 없는 저 너머 어딘가에 눈부시게 똬리를 틀고 있을법한 그 무엇. 바로 그런 것이 종교라고들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좀체 유쾌해지지 않는다. 인상 쓰고, 진지해지고, 납덩이처럼 무겁게 정교하고 진중한 단어들을 골라 써가며 문외한이 쉬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경향이 종종 보인다.

그러나 종교도 사람의 것이다. 사람이 없으면 종교도 무용지물이고 만다. 따라서 사람의 생활 세계에서 종교는 전혀 동떨어져있는 외딴 섬 같은 존재가 아니다. 종교도 사람 속에 있고, 사람들을 위해 있고, 사람들 때문에 이어가는 것이다. 그 점에서 종교는 속성상 지극히 현세 지향적이다. ‘지금’, ‘여기’를 책임지지 못하는 종교는 종교로서 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없다. 오늘 전하는 에피소드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보통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일이다. 그때도 변함없이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는 나는 서울행 KTX에 몸을 싣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열차야 늘 그렇듯이 장거리 출근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그러니 대부분 고개를 숙이거나 이어폰을 귀에 묻고 잠을 청하기 일쑤이다. 나 역시 그렇게 한 시간여 비몽사몽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동대구역에 정차함을 알리는 객실 방송이 나오고 이내 내리고 타는 승객들이 자동문 앞에 오가고 있었다. 그때 내가 있던 객실 안으로 서너 명의 장년들이 들어왔고, 마침 내가 앉아있던 뒤편의 빈자리를 가득 채웠다. 딱히 새로울 것이 없는 장면인지라 나른한 상태에서 동대구역의 분주함을 감상한 후 난 이내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긴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었다. 두런두런 뒤편쪽으로 억센 경상도 말씨가 반복되자 자연스레 선잠에서 깨어 뒤편에 있는 장년의 사내들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분들 차림새가 조금 달랐다. 모두 붉은색 조끼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 띠를 두른 이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상경 투쟁하려는 노동자였던가 보다. 그때가 봄날이었고, 아마도 그분들은 춘투를 위한 동원령에 응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상황 파악을 어느 정도 한 후 난 이내 이 분들의 대화 내용에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과연 상경 투쟁을 하려는 이들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분들은 바로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 열띤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예서 잠시 그분들의 이야기를 옮겨보자.

“야 니 어떤 게 참말로 좋은 종굔지 아나?”

“뭔데?”

“통일교 아이가!”

“우짜서?”

“통일교는 교인이 되믄 장가보내준다 아이가!”

“참말로?”

“하모. 그리고 장가가믄 집도 준다카더라!”

“집도??!!… 그 참말로 좋은 종교네.”

“그럼 기독교는?”

“음~ 그건 쪼매 애매하다. 교회 가믄 장가는 보내주는데. 뭘 좀 많이 내야 한다더라~”

“뭐를?”

“헌금내야 안카나! 교회는 기본으로 드는 돈이 장난이 아니라 카더라.”

“그래도 장가는 보내주나?”

“하모 그래도 장가는 보내주니 그나마 낫지!”

“집은?”

“… 집은 없다드라.”

“천주교는?”

“거그도 기독교랑 쪼매 비슷하다고 하더라.”

“근데 문제가 신부, 수녀는 결혼 안 한다 안카나~”

“내는 그게 좀 맘에 걸린다.”

“결혼을 안 해보믄 사람 속을 잘 모른다 아이가.”

“그래 그럼 다른 종교는 없나?”

“느그 대순진리회는 가지 마래이~”

“와?”

“거기는 장가도 없꼬, 집도 없꼬, 대신 들어갈 때부터 돈만 진탕 낸다 아이가!”

“참말이고?”

“하모!”

“음~ 그럼 문제구마”

그분들은 이런 유의 대화를 종교 학자를 뒤에 두고 열심히 하고 있었다. 상당히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기준 아래 여러 종교들의 특장점을 나름대로 풀어내고 있었다. 물론 그분들이 품평했던 종교론을 그대로 용인하거나 인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기준에 따라 나쁜 종교, 좋은 종교를 가르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생활 세계에서 보통 사람들이 대하는 종교의 얼개가 어떤 가에 대해서는 이 대화가 암시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것 정도는 제대로 기억해보자는 말이다. 그래야 생활 세계의 종교 담론의 자리를 제대로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유리되고 동떨어진 종교 담론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반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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