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팽목항이 될 것이다

한종호의 '너른마당' 2015. 1. 20. 10:37

한종호의 너른 마당(6)

온 나라가 팽목항이 될 것이다

 

회색빛 바다의 팽목항, 바람은 여전히 거칠었다. 그건 인간이 겪는 고통과 슬픔에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투였다. 물론 어디 그럴 리가 있겠는가? 본래 잿빛 하늘과 흐린 날의 바닷바람이 다 그러한 것을….

문제는 이 거칠고 비정한 바람이 인간의 내면에 불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 1년이 다 되어가면서 겨우 만들어가는 조사위를 놓고 여당의 한 중진이라는 이는 “세금 도둑”이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규모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 규모의 여성가족부와 방송통신위와 비교하면서 거의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과거사 조사위원회보다 작은 규모인데다가 최소규모 부서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추악한 냄새가 난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 비상 사태였다. 3백여 명의 목숨이 몰살당한 일 앞에서 세금도둑 운운하면서 진상에 접근하는 노력들을 차단하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폭거 아닌가. 억울한 생명의 문제를 다루는 일에 세금을 디밀고, 규모 축소를 외치는 자의 목소리에는 팽목항의 바람보다 더 차갑고 거친 바람이 내내 불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왜 그런 사건이 생겼는지, 왜 구조가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대통령이 어찌해서 아무런 기능도 발휘하지 못했는지는 완전히 암전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과 우리 사회의 의지는 꺾어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똘똘 뭉쳐서 권력의 훼방과 언론의 책동을 모두 이겨낸 과정은 경이롭다. 어디 그 뿐인가? 이들이 사안마다 내놓는 논리와 행동은 이 비극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일깨우고 있다. 여기에 우리 사회 도처에서 나온 목소리와 움직임은 우리가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는 대단히 소중한 버팀목이다.

유가족들과는 달리 실종자들은 이미 유가족이나 실종자라는 미묘한 처지에 놓여 있다. 9명의 실종자들 영정 자리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의 애절함을 그 누가 알겠는가?

“현철아! 엄마 아빠는 숨 쉬는 것도 미안해”

“영인아! 배 올리자! 보고 싶어 미치겠다”

“여보!! 그립고, 보고 싶어요”

“여보! 배 좀 들어 올려요”

엄마를 찾아야 아들 가슴에 여한이 없죠“

“혁규야! 지연이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아빠!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은화야! 너랑나랑 바꿀 수만 있다면”

“내 사랑 다윤아! 엄마는 너를 끝까지 기다릴께”

그런 가운데 이들을 지원하고 위로하는 적지 않은 이름 없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세월호를 통해 발견하게 된 우리 사회의 고마운 면모이다. 하여 “마지막 한 명이 돌아오는 날까지 팽목항 가족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은 형형한 깃발로 나부낀다.

“하얗게 웃고 있구나 죄 없이 눈부시구나”

“너는 거기 함박꽃나무 희디 흰 얼굴로 앉아서”

“그대들 당도하지 못한 사월의 귀착지 거긴 꽃과 나비가 있는 곳”

‘이 생애 못다 한 말 자줏빛 꽃술로 품고“

“올해는 천 개의 꽃으로 피어나소서”

“아직은 모든 곳이 검은 바다 속, 여전히 세월호입니다”

“실종자 9명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말없이 이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을 도운 이들은 고통에 대한 공감을 온 몸으로 보여준 이들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개인으로 가족 단위로 단체에서 아파하는 유가족들과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위로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조사위를 향해 “세금 도둑”이라고 몰아세운 자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그렇게 말하는 자가 도리어 국민들의 세금으로 유가족들을 비난하고 있는 “세금 도둑”이 아닐까?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들의 정체에 대해 많은 것을 폭로해주고 있다.

세월호 조사위 내에 참여한 인사들을 자세히 보면, 아니 이런 사람이 왜 여기에 끼어 있지?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월호 참사 진상 조사에 대해 쌍수를 들고 가로막고 나선 자들이 여기저기에 박혀 있다. 이걸 보면 갈 길이 참 험난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방해를 뚫고 드러나는 것이 본래 진리의 숙명 아닌가.

이제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오면서, 자연스럽게 세월호 진상과 관련한 논쟁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또 얼마나 아파하게 될까? 하지만 그래도 그런 논쟁을 통해 우리는 진실에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게다가 4월 재보선이 겹쳐 있다. 세월호 문제가 어디로든 비켜나갈 도리는 없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리스트에 오른 이들과 비망록이 폭로되면서 신뢰도가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운명도 이런 상황과 맞물려 돌아가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조사와 수사의 권한을 주지 않고 덮고 나가려 했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본과 권력이 어떻게 인간의 생명을 유린하고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지난 해 4월 16일, 어찌해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물속에 잠겨 세상과 하직하게 되었던가? 우리의 구조 능력이 부족해서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국가의 최고 장비와 인원을 투입하고 작동하게 할 수 있는 조직의 의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핵심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 그 의지가 실종되었을까? 사람이 바로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필사적으로 구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건 아무리 좋게 봐줘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그 많은 수를 떠올리면 학살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무섭다. 아닌 게 아니라 팽목항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아이들이 죽었다”가 아니라 “아이들을 죽였다”고 믿고 있다. 허위사실 유포와 유언비어의 차원에서 생각할 일이 아니다. 현실은 그런 생각을 충분히 갖게 했기 때문이다. 아니, 해경이 구조 현장에 바로 들어가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지 못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절대적 책임을 진 정부는 지금까자 이에 대해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팽목항에는 노란 리본이 나부낀다. 어느새 그 노란 리본은 우리에게 정치적 구호처럼 되었다. 그래서 권력은 노란 리본을 경계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도 그건 경계의 대상이다. 이런 비정할 데가 잇는가. 사람이 죽은 아픔에 함께 공감하는 행위가 권력의 공격을 받는 사회가 정상일까?

그러나 노란 리본은 우리에게 이제 그저 리본이 아니다. 그건 깃발이다. 생명이 무엇보다 귀하고, 이를 지켜내는 일 앞에서 그 어떤 것도 우선권을 가질 수 없다는 확신에 찬 깃발이다. 2015년 4월 16일, 우리는 다시 팽목항에 올 것이다. 아니 그 전에도 갈 것이다. 온 나라가 팽목항이 될 것이다. 그래서 가라앉은 이 나라가 다시 떠올라 바다를 가르고 우리가 원하는 항구에 정박할 날을 꿈꾸게 될 것이다.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노래한 아이들의 저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여기는 팽목항, 우리는 세월호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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