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에 오르겔, '바람 피리의 꿈'

꽃자리의 사람 사람 사람’ (1)

트루에 오르겔, '바람 피리의 꿈'
- ‘파이프 오르간’을 짓는 사람, 홍성훈을 만나다 -

 

어릴 적 교회 예배당에는 성가대 자리 바로 옆에 피아노가 있었고, 반대편 저 멀리 한쪽 구석에 파이프 오르간이 외롭게 있었다. 그 큼지막한 나무 상자 뒤에는 반주하는 선생님이 숨어있었다. 그 속에서 무얼 하는지 늘 궁금했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가까이 가 보았던 오르간의 정체는 조금 더 큰 피아노 정도일 거란 예상을 깨고, 층을 이룬 건반들과 바닥을 뒤덮은 여러 개의 페달로 독특한 모양을 한, 이제껏 보지 못했던 괴상한 물건이었다. 예배 시간에 성가대의 찬양이 시작되면, 파이프 오르간은 그만의 신비하고 묵직한 소리로 예배당 공간을 온전하게 채우고 울렸다. 그때 내 몸을 진동시켰던 작은 울림이 바로, 내가 기억하는 파이프 오르간이었다.

일반적으로 파이프 오르간하면, 역사가 깊은 성당이나 교회에 붙박인 거대한 건조물이 떠오른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듣기에 앞서, 그것의 웅장한 생김새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신을 품은 건물과 영원히 운명을 함께 할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파이프 오르간을 만든 사람은 분명 오랜 전통의 기술을 잇는 유럽 어느 작은 마을에 사는 가문 대대로 이어지는 장인의 모습일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미지의 파이프 오르간 장인은 저 멀고 먼 유럽이 아닌,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의 어느 작은 마을에도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됐다.

경기도 양평에 파이프 오르간을 짓는 사람, 홍성훈이 있었고, 거기서 그를 만났다.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 한 귀퉁이에는 홍성훈 오르겔바우 공작소라 적힌 나무 현판이 붙어 있었다. 그 안으로 들자 갑자기 따뜻한 기운이 확 밀려 들어왔다. 눈앞에는 커다란 몸통을 가진 난로에 연결된 연통이 길고도 높게 뻗쳐 있고, 난로 옆 수레에는 작업하다 남은 고급 목재 자투리가 땔감용으로 쌓여 있었다. 실내 중앙에는 작은 구멍이 송송 뚫린 기다란 목판이 누워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나무 구조물이 서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밀한 기계들과 그 위에 오르간을 구성하는 작은 부품들이 놓여 있었다. 그의 열네 번째 파이프 오르간 작업이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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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에 스카프가 잘 어울리는 그는 난로 옆 간이탁자로 우리를 안내했고, 모두가 탁자에 둘러앉자 조용히 유리잔에 담긴 난쟁이 양초에 불을 붙였다. 어느새 그는 차를 내왔고, 찻잔을 들어 달큰한 찻물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으니, 추위에 움츠러든 몸이 기지개를 켰다. 다시, 반짝거리는 작은 촛불이 눈앞에 들어왔다. 작업장 안은 벌건 대낮 같은데, 굳이 작은 초 한 자루에 불 밝힌 그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1986, 스물일곱 살 청년의 저는 독일로 떠났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평화롭지 못했지요. 불안한 정치 상황 속에 대학생들의 민주화 열망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취업문은 지금보다 더 좁았고, ‘풍족이라는 건 기대하기 어려웠던 새마을운동의 시대였지요. 반면, 독일은 유럽 가운데서도 가장 풍족한, 말 그대로 선진국이었습니다. 당시 외국으로 나가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유학을 가려면 국가시험을 치러야 했고, 해외여행은 국가정보원에서 관리하는 중요한 사안이었어요. 그 엄혹한 시절, 북한과는 극도의 긴장 관계였을 뿐 아니라 주변 상황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러한 때에 자유의 나라 독일에 갔으니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생소한 모습에 충격 받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지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그는 독일인들의 생활습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건, 손님이 집에 방문하면 촛불을 켜는독일인들의 모습이었단다. 그들에게 있어 촛불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한 그들의 문화였다. 한국에서는 전기가 없어서 촛불을 켰는데, 우리와는 목적 자체가 달랐다. 뿐만 아니라 주5일제였던 독일인들에게 토요일은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이었단다. 당시 일주일 내내 뼈 빠지게 일해야 했던 한국인에게 5일제는 꿈같은 일이었다. 독일에서는 토요일마다 들어 선 교회 앞 장마당에서 줄지어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과일, 치즈, 생선 등 여러 가지 식료품을 팔았고, 여유롭게 쇼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에게도 토요일마다 열리는 장마당에서 장을 보는 것은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토요장터에선 여러 가지 물건을 팔았지만, 그중에서도 저의 눈에 들어온 건 이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꽃을 참 많이 사가더군요. 비싼 꽃을 왜 그리 많이 사는지 저로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꽃을 살 바에 차라리 연탄 한 장 더 사는 게 낫다는 게 저의 생각이었지요. 독일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는 곳마다 사람들로 붐비던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예술 작품을 통해 삶의 어떤 에너지를 얻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독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들이 누리는 문화적 향유의 깊음과 넓음이 부러웠습니다.”

언젠가 지리산자락의 민들레학교에서 만났던 그는 한 번은 이런 말을 전해주었다. 독일 고등학교에서는 예술, 체육, 작문, 라틴어와 영어까지 무려 다섯 가지를 얻는단다. 일석오조(一石五鳥). 그래서 독일에서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대부분이 자신만의 취미를 가지게 되고, 미술작품을 관람하거나 음악을 감상할 때 코멘트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어 문화를 즐기는 데 있어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느낀다. 어느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찾은 독일 관객들이 연주에 맞춰 자연스럽게 악보를 넘기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그가 말했지만, 어쩌면 그건 당연한 교육의 결과였던 셈이다. 일상에 면면히 여유가 흐르는 독일 사람들과 달리, 그의 눈에는 우리나라 사람의 삶이 참 메말라 보였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입학이 가장 큰 목표가 됩니다. 대학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 생활도 억울한데, 목표한 대학에 가서도 시간만 버리고 말지요. 결국 사회에 나와서 뭔가를 하려면, 그땐 또 사회의 룰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는 없고, 목표만 남고 마는 거지요. 우리 사회는 20대에는 공부해야 하고, 30대에는 결혼해야 하고, 40대에는 저축해야 하고, 50대에는 노후준비를 해야 하고, 60대는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사회에서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을 따라가다 보니 그걸 다 이루지 못했을 때는 자괴감이 들지요. 지금은 옛날보다 훨씬 풍족하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지수는 오히려 이전보다 급격히 줄어들었지요.”

 

인터뷰 도중에 그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뜻한 기운이 조금 식었는지, 기침을 한 번 하고는 장작 몇 뭉치를 난로에 부지런히 넣는다. “내가 이렇게 비싼 나무를 때워. 이건 순수한 오크(Oak). 이렇게 장작을 때면 이 겨울도 지나가는 거지.” 그가 자리로 돌아오자, 갑자기 라디오에선 우리 노래 가락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이와 함께 그는 열네 번째 파이프오르간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놓았다. 시작은 <십대들의 쪽지> 발행인 고 김형모(1956-2008) 목사의 꿈에서 비롯됐다.

김형모 선생님은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강연도 많이 했습니다. 어느 날 제게 트루에 오르겔을 만들 수 있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차에 싣고 시골, 산간벽지 어디든 가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픈 그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 저도 한국사람 누구나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듣게 된다면 참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결국 김형모 선생님은 주문만 하고 결과물은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그의 꿈이 밑바탕이 되어, 지금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트루에 오르겔은 모든 문을 통과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동형 파이프오르간으로, 무게는 대략 120kg, 가로세로 각 1m 정도 크기의 외형에 총 224개의 목관, 금관 파이프로 구성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파이프오르간이다.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그의 트루에 오르겔에는 어두운 소리의 퉁소 소리, 부드러운 흙냄새 가득한 훈의 소리, 당찬 향피리 소리 등의 한국적 음색이 담기고, 메탈파이프 전면에는 에밀레종의 비천상의 구름이 새겨져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게 된다.

지난 2, 그는 트루에 오르겔 다섯 대를 동시에 만든 적이 있다. 다섯 대의 트루에 오르겔은 각자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이번에 제작하는 트루에 오르겔은 목적 자체가 다른데, ‘바람피리의 꿈이란 이름의 문화펀드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그는 이번 트루에 오르겔을 기부자 모두의 것으로 만들고픈 거창한 꿈을 꾸고 있다. 지난 12월 초, 곽건용 나성향린교회 목사는 우연히 그의 양평 공작소에 들렀다가 문화펀드의 취지를 듣고는 선뜻 100불을 기부하기도 했다. 국내가 아닌 바다 건너 미국 땅에서 들어 온 첫 후원이라 그 의미가 더욱 크다. 곽 목사에 이어 후원의 손길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더 많은 관심과 후원의 움직임이 필요한 상황이다.

모두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입니다. 파이프 오르간을 기부 받아서 만드는 건 처음 있는 일일 겁니다. 이건 투자가 아닌 기부입니다. 모두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매개체가 파이프오르간이 되는 거지요. 파이프 오르간은 교회에만 설치되어 있고, 연주를 자주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지요. 더군다나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접하기란 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때, 이걸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면, 모두가 이 음악을 들을 수 있겠다고 깨달았지요.”

 

트루에 오르겔 제작펀딩 프로젝트 바람피리의 꿈

트루에 오르겔 제작펀딩 프로젝트 바람피리의 꿈은 오는 331일까지 진행되며, 제작비 675십 만원을 목표금액으로 잡았다. 문화펀드에 기부하는 모두에게 트루에오르겔 콘서트 초대권이 주어지며, 기부액에 따라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문화펀드 참여하기<<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그래서 제작을 넘어 정기적인 연주회를 열고자 하는 계획까지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다. 오는 328일 구 서울역사 갤러리에서 바람피리의 꿈, 실크로드를 위하여란 제목으로 오르겔&크로스앙상블첫 번째 콘서트가 열린다. 콘서트가 끝나면, 열네 번째 파이프 오르간은 통영에 둥지를 틀게 된다. 베이스캠프가 통영 옻칠미술관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곳이 관리 책임자가 되고, 지역 어느 곳이든 연주가 필요한 곳마다 찾아가는 연주회가 열리게 된다. ‘2차 오르겔&크로스앙상블이 시작되는 것이다. 공연 장소는 음악홀이 아닌 곳이 될 것이다. 미술관, 고궁, 한옥 대청마루, 갤러리, 심지어 마구간, 쌀 곳간까지. 첫 연주회는 통영국제음악당 로비에서 시작해 담양, 평창에서의 연주회 일정이 잡혔다. 펀드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연주회 초대권이 주어진다.

 

보통 파이프오르간은 벽장에 붙어 있어 이동이 어렵습니다. 이번에 제작중인 트루에 오르겔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파이프 오르간이지요. 그래서 1톤 트럭에 싣고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한라산 꼭대기에서 연주회를 가질 수도 있지요. 재밌는 이벤트를 많이 만들 수 있을 거에요. 많은 사람들에게 오르겔을 알리고, 새로운 음악문화도 만들어가고 싶은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네 번째 파이프오르간 바람피리의 베이스 캠프로 정해진 통영은 시인 유치환의 깃발이 날리고, 시인 김춘수의 꽃이 피는 예술의 도시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이기도 하다. 남북사이의 철조망을 음악으로 녹이자고 처음 제안했던 윤이상은 음악을 매개로 남북화해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그가 비무장지대에서 남북 음악인들의 합동연주회를 제안하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통일음악회를 열었던 건 그 누구보다 간절했던 그의 기도 때문이었다. 두 동강난 허리를 부여잡고 여전히 아파하는 한반도에서 그의 기도는 아직까지 유효하고, 한반도의 통일을 향한 간절한 염원은 바람피리의 꿈에 잇대어 있다. 파이프오르간 마이스터 홍성훈이 모두에게 들려주고픈 트루에 오르겔의 아름다운 피리 소리도 자유로운 바람을 타고 남한 구석구석을 돌고, 저 북녘 땅까지 고루고루 퍼지는 꿈을 꾸고 있으리라.

하늘과 땅의 축복으로
비와 눈과 바람의 축복으로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를 누리는 나라
노래와 춤의 나라
종교도 도덕도
예술도 문화도
모두모두 노동의 깃발 아래 모여 하나인
나라의 꿈
그래서 겨레사랑을 말로 하지 않고
얼싸안고 비벼대는 몸으로 하고
온몸으로 노래하는 나라.

- 윤이상이 작곡한 성악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My Land, My People!)’1악장 Die Geschichte(역사) 문익환의 시

 

성상현/꽃자리출판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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