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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191

순환하는 하느님과 동행하는 자유로운 영혼 신동숙의 글밭(21)/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순환하는 하느님과 동행하는 자유로운 영혼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자연 곳곳에서 보이는 모든 움직임은 순환하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펄럭이는 돛, 흐르는 시내, 흔들리는 나무, 표류하는 바람, 이런 것들에서 우리는 건강과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나는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나무 그늘에서 건강하게 뛰놀고 장난치는 것만큼 더 품위 있고 신성한 건강과 자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죄에 대한 의심 따위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인간이 이를 알고 있었더라면 대리석이나 다이아몬드로 성전 따위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고, 성전 건축은 신성 모독 중의 신성 모독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낙원을 영원히 잃지 않았을 것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소로우의 일기] ,.. 2019. 12. 3.
흙 당근 할머니의 정성값 신동숙의 글밭(17)/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흙 당근 할머니의 정성값 제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의 장날입니다. 가까운 시골에서 모여든 농사 짓는 분들의 농산물. 부산에서 모여든 수산물 상인들. 마을의 텃밭에서 이웃들이 손수 가꾼 채소들. 그리고 나름의 장날 구색을 갖춘 옷가지, 이불, 생필품, 두부, 메밀 전병, 잔치 국수, 어묵, 떡, 참기름, 뻥이요~ 뻥튀기, 색색깔 과일들, 곡식들, 밤, 대추. 가을날 오일장은 풍성한 추수 감사날입니다. 한 해 동안 지은 수확물 중 가장 좋은 것으로 차려 놓고 손님을 기다립니다. 눈길 한 번, 멈추어 서는 발걸음 한 번을 기다리는 간절한 눈빛. 그 생을 끌어 당기는 눈빛들이 모여 햇살처럼 비추면 무겁던 하루살이에도 윤기가 돕니다. 땅바닥에 올망졸망 모양도 제각각인.. 2019. 11. 30.
무딘 마음을 타고서 고운 결로 흐르는 이야기 신동숙의 글밭(14) 무딘 마음을 타고서 고운 결로 흐르는 이야기 - 을 읽고 - 책을 펼친 후 몇 날 며칠이 흘렀는지 모른다. 책을 펼치면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되는 책도 있지만. 이 책은 그러기가 힘이 들었다. 한바닥을 읽다가 가슴이 멍먹해지면 고개 들어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가. 또 한 줄을 읽다가 눈물이 자꾸만 나와서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내다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어 눈물 콧물을 소매로 닦다가. 그렇게 가슴에 맴도는 울림이 쉬 가라앉질 않아 책을 덮고 마는 것이다. 편안히 앉아 눈으로만 읽기가 미안하고 염치가 없어서, 처음 글부터 필사를 하기로 했다. 하루에 한두 편을 적으면 크게 무리는 없겠다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농부와 목자의 마음을 내 무딘 가슴에 새기고 .. 2019. 11. 29.
엄마, 내 휴대폰 신동숙의 글밭(13) 엄마, 내 휴대폰 "엄마, 내 휴대폰!"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엄마, 내 휴대폰 놓고 내렸어요. 지금 내 친구 폰으로 거는 거예요." 매일 아침 7시50분이면 딸아이를 태워서 학교로 갑니다. 교문 앞이 붐비지 않도록 한 블럭 못 가서 내려 주는 것은 신학기 초 학교와의 약속입니다. "엄마, 영어 학원으로 좀 갖다 주세요.",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라도 해 줄 수 있는 상황. 잠시 대답을 미룹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마음이 듭니다. 하루 동안 휴대폰 없이 지내보는 것도 괜찮다 싶은. 그전부터 엄마 마음 속에 감춰 둔 한 생각이 선물처럼 주어진 우연한 기회입니다. 잠자리에 들기까지 딸아이에게 휴대폰은 떨어질 줄 모르는 분신이거든요. 휴대폰 자리를 대신하여 심심함으로.. 2019. 11. 28.
햇살이 앉으면 신동숙의 글밭(11) 햇살이 앉으면 흐르는 냇물에 내려앉은 노을빛이 연한 가슴을 흔들어 놓습니다. 물에 비친 모습 중에서 빛그림자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또 있을까요. 흐르는 물에 햇살이 앉으면 하얀 별빛이 보이고. 서로를 비추어 더 아름다운, 대낮에도 볼 수 있는 별빛이 되고. 그 모습을 눈앞에서 바라보며 저절로 터지는 감동은 그대로 자연 앞에 선 채로 드리는 숙연한 기도의 시간이 됩니다. 햇살이 앉으면 ... 흐르는 강물에 햇살이 앉으면 환한 대낮에도 하얀 별빛이 보여요 밤하늘 숨은 별들 여기 다 있네요 흐르는 내 마음에도 햇살이 앉으면 그리운 얼굴 보일까요 2019. 11. 27.
가을비와 쑥병차와 쓰레기 신동숙의 글밭(9) 가을비와 쑥병차와 쓰레기 온종일 비가 내립니다. 강변에 단풍잎은 아직 자기의 때가 남았다는데, 그 마음 아는지 조곤조곤 달래듯 어르듯 가을비는 순하게 내립니다. 축축한 땅. 가벼운 바람결에도 속절없이 날리던 낙엽이 몰아쉬던 숨을 비로소 고요히 내려놓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몸도 가라앉아서 내 마음 빗물에 젖은 한 잎 낙엽이 됩니다. 가슴이 시려 오는 것도 이제는 왠지 견딜 만하답니다. 창밖으로 바라본 하늘엔 회색 구름이 무겁습니다. 검도를 마치고 차에 탄 아들이 잠시 편의점에 들렀다 가자며 조릅니다. 복잡한 골목, 편의점 입구에 잠시 정차를 하고 카드만 주면서 꼭 필요한 것만 사오너라 했더니. 까만 비닐봉지에서 나온 것은, 옥수수 통조림, 모짜렐라 치즈, 컵라면, 초코과자, 버터맛 팝콘.. 2019. 11. 26.
주신 소망 한 알 신동숙의 글밭(7) 주신 소망 한 알 ... "우리 같이 점심 먹어요. 아구탕 맛있는 집 있는데, 아구탕 괜찮으세요?", "예!". 전화기 너머 아름다운 울림 소리로 청하는 따뜻한 초대에 어찌 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시노래 가수 박경하 선생님이십니다. 시와 노래는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한 마음이면서 두 개의 몸이 된. 끈끈한 끈으로 엮인 사이. 시는 노래를 그리워하고, 노래는 시를 그리워하는 서로가 서로에겐 그리움입니다. 만나면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을 전하고 싶었답니다. 예쁘게 포장된 빵을 사갖고 갈까, 예쁜 악세사리를 사갖고 갈까. 아직은 취향을 잘 몰라서 선뜻 결정을 못하고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었답니다. 약속한 날은 다가오는데, 그러다가 문득 당연하다는 듯 순간 든 생각이 있답니다. 시집. .. 2019. 11. 25.
기다리는 만남 신동숙의 글밭(5) 기다리는 만남 ... 걸레로 방바닥을 닦으시던 친정 엄마가 주말에는 이모님댁에 다녀오마 하십니다. 이모가 계신 진주 단성까지는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타고도 족히 세 시간은 걸리는 거리.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주무시지 않고 당일날 돌아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작년에 방문하신 얘기를 꺼내십니다. "두 노인네가 내가 왔다고 평소에는 틀지도 않는 기름 보일러를 때는데, 내가 마음이 미안해서 똑 죽겠고", 이번에는 주무시지 않고 그냥 오시겠다며 선언을 하십니다. 친정 엄마도 올해 74세를 맞이 하셨으니, 하루 동안에 오고 가는 버스를 여섯 시간이나 넘게 타신다는 것은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는 녹록치 않은 여정입니다. 게다가 아침마다 당뇨약도 드시니까요. 토요일 오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 2019. 11. 24.
떡볶이와 보혈 신동숙의 글밭(4) 떡볶이와 보혈 ... "엄마, 떡볶이 시켜주세요!", 폰 너머로 딸아이의 목소리가 간절합니다. 저녁답 영어 학원 하나만 든 날에는 6시면 일찍 집으로 오는 날. 이런 날은 된장국, 김치찌게가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떡볶이로부터 밀려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 떡볶이는 주로 아이들의 군겆질거리였답니다. 물오뎅, 꽈베기 도너츠, 군만두, 오징어와 고구마 튀김과 떡볶이. 간식 정도로 허기를 달래주던 떡볶이를 먹던 우리 세대가 성인이 되면서 떡볶이도 함께 성장한 것을 보게 됩니다. 매콤하고 얼큰한 각종 전골 요리에 쫀득한 떡볶이 떡은 빠질 수 없죠. 허름한 분식점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입가에 고추장을 묻혀 가며 오뎅 국물로 혀를 달래면서 먹던 간식. 어느 레스토랑에선 갖은 야채와.. 2019.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