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하신 하나님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그래도 살아 볼려구 들에 나가 곡식을 심었는데, 어제 나가보니 때 아닌 서리로 모두 절딴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먹을 게 없습니다. 이번 추석만 지나면 어디론가 나가야 되겠습니다. 식모살이라도 떠나야지요.”


새벽 기도를 하던 한 성도가 울먹이며 기도를 했다. 그의 기도는 늘 그런 식이다. 미사여구로 다듬어진 기도와는 거리가 멀다.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다 말할 뿐이다.


한 여름 내내 비로 어렵게 하더니, 이제는 뜻하지 않은 서리로 농작물을 모두 태워 죽이다니, 두렵지만 하늘이 야속하다.


땅에 곡심 심고, 그리곤 하늘 바라고 사는 사람들, 더도 덜도 없는 땅의 사람들.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지고 밤사이 서리가 내린 것이 도시 사람에겐 그저 뉴스거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생존과 관계된다. 식모로라도 떠나야겠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아찔함이 지난다.


기도가 끝난 후 매일 새벽 그러했듯 요한복음을 읽었지만 더듬더듬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던 예수님, 그리고 들려주신 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말이 오늘 기도한 교우에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어쩌겠냐고, 새벽예배 마치고 나오며 한 성도가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 뒤에 남아있는 체념의 앙금이 아리다.


“하나님. 큰 잘못 범하고도 떵떵거리며 사는 놈들 지천에 많은데 무엇 큰 잘못했다고 흙과 함께 욕심 없이 사는 사람들 괴롭히십니까? 일찍 내린 서리 하나로 생계가 막힐 수도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시는 겁니까. 굽어 살피소서.”


그래도 그 교우는 새벽예배에 빠지지 않는다. 멀리 자식 네 다니러 간 적 외에는 빠진 적이 없다. 아직 하나님께 할 말이 많은 것이다.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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